“설계가 도면에서 컴퓨터로 전환된 것이 컴퓨터지원설계(CAD) 혁신입니다. 이제는 수많은 시험을 대체하는 컴퓨터지원엔지니어링(CAE) 시대입니다. CAD를 활용하는 산업이라면 무조건 CAE를 적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생산기간 단축과 설계 예측은 제품 혁신을 앞당기는 필요조건입니다.”
최근 현대자동차가 내수·수출용 차량 안전도 비교를 위해 차량 두 대를 충돌시켰다. 안전 확인을 위해 완전품 두 대가 부서졌다. 안전뿐만 아니라 차량 한대를 생산하기 위해 다양한 테스트가 필요하다. 부품이 제대로 움직이는지 디자인은 속도 향상에 최적화됐는지 등을 예측하기 위해 많은 시제품을 만든다. 제품화를 통한 테스트는 비용이 많이 든다. 매번 시제품을 만들어 충돌시킬 수 없는 노릇이다.
강병식 현대기아차 자동차부문 연구개발본부 상무는 CAE를 통해 이 과정을 컴퓨터로 구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이미 선진국에서는 CAE를 도입해 개발 효율을 높이고 제품 품질을 향상하는 데 활용한다”며 “차량 개발 과정에서도 CAE를 접목해 개발 기간을 단축하고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CAE는 다양한 산업에서 제품 성능을 향상시키기 위한 컴퓨터 시뮬레이션 기술이다. 성능 개선과 제품 특성을 시뮬레이션으로 미리 확인할 수 있다. 연구개발(R&D) 과정 최적화를 지원한다.
특히 제조 산업에서 CAE에 주목한다. 모든 R&D와 생산 과정을 실물 시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컴퓨터로 설계 결과를 미리 예측할 수 있다면 시제품 만드는 노력이 줄어든다.
“CAE가 아직 100% 실물 시험을 대체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시험은 시제품 제작이라는 단점이 있습니다. 자동차는 그나마 실물 시험이 가능한 분야지만 항공·조선은 시제품 제작이 어렵습니다. 작은 모형으로 대체하긴 하지만 정확성을 기대하기 쉽지 않습니다.”
CAE는 아이디어 기획부터 생산까지 전 분야에 적용된다. 핵심은 해석이다. 김 상무도 구조 역학 해석을 시작으로 CAE 산업에 뛰어들었다. 미국 등 CAE 활용이 높은 산업 현장에서 얻은 경험을 십분 발휘한다. 우리나라가 CAE 선진국이 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게 강 상무 생각이다.
“해외에서는 정부와 제조사가 앞 다퉈 CAE 인력을 양성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CAE 관심이 예전보다 커졌지만 선진국 대비 역량은 부족한 상황입니다. 선행 연구와 적극적 투자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물론 CAE가 만능은 아니다. 과거 미국에서도 CAE 신뢰성 문제가 대두됐다. 컴퓨터 해석결과가 실제 시험과 다르게 나타난 것이다.
강 상무는 “이런 배경으로 국내 CAE가 급성장하지 못하고 있다”며 “과거에는 기술 한계 등으로 신뢰성이 80%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90% 이상으로 향상됐다”고 설명했다. 전체 제조 과정에는 못 미치지만 부품 단계에서는 이미 99%를 달성했다는 주장이다.
강 상무는 “슈퍼컴퓨터를 활용하면 CAE 전 분야 신뢰도를 99%까지 끌어올린다”며 “다양한 연구와 생태계 조성이 필요한 이유”라고 덧붙였다.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