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 에너지저장장치(ESS) 구축 사업이 자칫 대기업 줄 세우기 또는 제품 독식 구조로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한전이 중소기업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지난해 첫 사업 때와 달리 입찰 기준을 대폭 낮췄지만 특정 대기업 배터리 선정 확률은 더 높아졌다. 입찰에 똑같은 대기업 배터리로 참여한 비 제조사 사업자가 70%(9개)나 됐다.
16일 한국전력에 따르면 최근 마감한 200㎿(출력량 기준) 규모 주파수조정(FR)용 ESS 구축사업 배터리 분야 입찰에 13개 기업이 참여했다. 이중 LG화학·삼성SDI 배터리로 입찰한 업체가 11개나 됐다. 자기 제품으로 입찰한 곳은 삼성SDI와 LG화학을 제외하면 한국 중소기업 코캄과 독일 르클랑셰SA 두 곳에 불과했다. LG화학 배터리로 입찰에 응한 업체는 LG화학을 포함해 LG CNS·GS네오텍 등 6개사, 삼성SDI배터리 사업자는 삼성SDI·삼성에스원을 비롯해 5개 기업이다. 사업자는 달라도 삼성SDI나 LG화학 배터리가 선정될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다.
사업은 전국 8개 변전소에 전력변환장치(PCS)와 배터리 분야로 나눠 올해만 1700억원을 투입하는 대규모 사업이다. 투입되는 배터리만 60~70㎿h 규모로 약 700억원에 해당한다. 사업자 선정은 기술평가(80점)를 거쳐 가격평가(20점)를 더해 최종 결정한다. 한전은 오는 18일 중복 사업자를 포함해 8개 업체를 선정할 방침이다
한전은 평가 비중 80%를 차지하는 기술평가 항목별 배점 변별력을 지난해 절반 수준으로 내렸다. 최소 0.4점에서 최고 2점이던 배점 간격이 올해는 0.2에서 최고 1점으로 줄었다. 다섯 구간(매우만족·만족·보통·불만족·매우불만족)으로 구분된 배점에서 지난해 평균 보통(중간점수) 수준 평가를 받았다면 48.8점이지만, 올해는 합격점(68점)에 근접한 61점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기술평가에서 떨어질 확률이 크게 줄었다. 결국 대기업에 유리한 가격평가 점수가 최종선정에 유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전 관계자는 “배터리 완제품을 보유하지 않았더라도 ESS용 배터리관리시스템(BMS)이나 설치 등에 중소기업이 참여할 수 있도록 기술평가 변별력을 낮춘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기업 제품 낙찰 가능성이 높아진 데 대해선 “대기업 제품을 그대로 가져와서 이름만 걸어 납품하는 업체를 걸러내기 위해 현장심사 등 엄격한 평가로 비전문기업을 가려낼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는 중소기업이 낙찰되더라도 결국 대기업 배만 불리는 사업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배정 사업비 700억원을 기준으로 BMS나 각종 설치비용을 제외하더라도 대기업에 돌아가는 매출이 70~80%로 압도적으로 많다.
중소기업 관계자는 “대기업 배터리로 사업에 선정되더라도 한전이 제시한 입찰 예가(㎿h당) 13억5000원 중 최소 10억원 이상은 대기업에 돌아가는 배터리 비용”이라며 “중소기업은 국가 전력망 ESS 사업에 일부 참여했다는 것 말고는 메리트가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입찰 참여업체 한 고위 관계자는 “우리도 대기업 배터리로 입찰에 참여했지만 평가 점수 변별력을 낮춘 게 오히려 대기업 배터리 선정 확률만 높이게 됐다”며 “미국 등 해외에선 배터리나 PCS 등 개발 제조능력이 없는 기업이 입찰에 참여하는 경우를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미국은 배터리나 PCS 업체가 직접 참여하는 EPC(설계·조달·시공)형태로 사업자를 공모하거나 ESS용 에너지관리시스템(EMS) 등 운영 기술을 확보한 시스템엔지니어링 업체가 입찰하는 게 일반적이다.
【표】‘2015년 한전 주파수조정용 ESS 구축 사업’ 배터리 분야 입찰 참여 기업(자료 : 업계)
자료:한국전력
【표】2014·2015년 기술 평가 항목 별 배점격차 비교
자료:한국전력
박태준기자 gaiu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