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필호의 실크로드 속으로] (4) 실크로드의 중국문명·위구르와 티벳 문명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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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국문명

실크로드는 길이가 길고 광대한 유리시아 지역을 여러 갈래로 관통하고 있다. 우선 동쪽에서 서쪽을 향하여 살펴보면 제일 동쪽에 위치한 문명 및 문화권인 중국의 정체성에 관하여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항들이므로 특별히 따로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즉, 중국의 문명과 역사는 하, 은(상), 주(춘추전국시대 포함)를 거쳐 최초의 통일제국 진, 한, 위진남북조, 수, 당 등등으로 이어져 오늘에 이르렀다는 것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들은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끝에 자리잡고 있는 지리적 이로움과 농사짓기에 유리한 기후와 수자원 등의 자연조건을 가지고 있었고 노동력도 풍부하므로 긴 역사를 거쳐 많은 곡절을 겪는 동안 중국문명과 문화라는 그릇 속에 살게 된 기회를 가졌을 뿐이다. 이 말은 그들이 다른 민족들 보다 더 우월하기 때문에 그들이 중화문명이라는 문명을 창조하였다거나 그런 우월성을 바탕으로 어떤 정신사조를 만들어 다른 문명보다 더 우수한 문화를 창조했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말해 중국문명이라는 것은 지리적 잇점의 소산이지 일부 중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처럼 민족적 우월성의 소산은 아니라는 것이다.

2. 위구르와 티벳 문명

현재의 중국 영토인 티벳과 위그르 지역 등 서부의 광대한 지역이 중국의 영향권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불과 수세기 전에 중국민족과는 다르게 취급받던 여진족(만주족)의 청나라 시절부터이다. 청의 멸망이후 잠시 혼란의 시절을 거쳐 지금으로부터 반세기가 조금 넘은 시기에 중국 공산당이 내전에서 승리하면서 그들 지역이 정식으로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에 편입되기는 하였으나 문화적으로는 중국의 일부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들은 지난 수천년간 중국과는 다른 별개의 문화권을 형성하고 있었고 인종적으로 보나 언어로 보나 현재의 중앙아시아 지역에 사는 사람들과 가까웠다. 그들은 천산산맥과 파미르 산맥을 넘는 험준한 실크로드를 개척했고 그 길을 통해 끊임없이 중국과 현재의 중앙아시아 지역을 연결해 주는 역할을 수행한 실크로드 역사에서 대단히 훌륭한 문화공동체였다.

최초에 그들이 어느 곳에서 왔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기원전 2세기에 장건(張騫; Zhang Qian; BC 200 – 114) 이 중앙아시아로 갈 때에는 흉노족이 주로 그 일대를 장악하고 있었고 그 이후에 토카리안(Tokharian), 위구르인(Uyghurs) 등이 현재의 중국 서쪽 지방을 지배하고 있었다. 위구르인은 중국 북방에 살던 돌궐족의 일파로 서기 9세기 경에 현재의 위치로 내려와 그곳의 원주민에 해당하는 인도-유럽피안 언어를 쓰는 사람들과 혼합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버어마 계통과 중앙아시아계 등의 혼합으로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하는 티벳 사람들의 문화권도 긴 세월 동안 중국 문명의 본류와는 별개의 문화권을 형성하고 있었다. 18세기에 중국의 한족들이 수천년간 오랑캐라고 업신 여기던 여진족의 후예들인 만주족이 청나라가 서쪽의 위구르 지역과 서남쪽의 티벳지역을 모두 장악하고 원래 여진족의 기반인 만주까지 모두 통합하는 대제국을 건설해 놓았는데 그것을 결국 중화인민공화국이 모두 물려받아 오늘날 중국이 티벳을 포함한 거대한 영토를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여진족(만주족)의 그런 성과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중국 영토는 아마도 너댓개로 나누어진 별개의 국가들로 구성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중국인들에게 행운을 가져다 주어 현재는 그들 지역이 모두 중국의 영토로서 중화인민공화국의 행정체제 안으로 편입되었으므로 실크로드를 현대사적 시각에서 불 때에는 위구르인이나 티벳트인들을 중국과 분리시켜 생각해 볼 여지는 거의 없게 되었다. 다만 역사적 배경을 알고 있음으로서 현대사를 이해하는데 다소 도움을 주는 역할은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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