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장비 산업 활성화 토론회]"통신장비 중국산 대공세…한국기업 고사 위기"

◇하성호 SK텔레콤 CR부문장

◇조창길 LG유플러스 상무

◇남민우 한국네트워크산업협회 회장

◇고재목 GSI 대표

◇김봉태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박사

*사회=노종선 한국통신학회 회장

‘국내 통신장비 산업 활성화 및 미래를 위한 토론회’가 20일 국회에서 열렸다.

토론회에 참가한 통신장비 업계 대표들은 국내 통신장비 업계가 고사하면 결국은 해외 사업자 제품을 쓸 수밖에 없는 만큼 10년 후를 내다보고 투자를 해달라고 정부와 이동통신사에 요구했다.

반면에 이동통신사는 가격뿐만 아니라 품질, 기술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무조건 국산 장비를 사용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밝혔다. 국내 업체도 가격과 품질 경쟁력을 갖추도록 노력해줄 것을 당부했다.

남민우 한국네트워크산업협회 회장(다산네트웍스 회장)은 “세계 통신장비 시장은 에릭슨, 노키아 등 서구 중심에서 화웨이, ZTE 등 중국 중심으로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있다”며 “이들의 중저가 공세 속에 해외 시장뿐만 아니라 국내 시장에서도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상황에서 3~4년 후면 국내 통신장비 업계는 고사할 수밖에 없다며 우리 텃밭을 외국에 내주지 않고 지켜내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 됐다고 토로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10년 이후를 내다본 이통사 투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부가 소프트웨어뿐만 아니라 통신장비도 유지보수요율 현실화 정책을 마련해줄 것을 요구했다.

남 회장은 “소프트웨어 분야는 유지보수 요율 현실화를 위한 구체적인 노력이 진행되는데 통신장비도 결국엔 소프트웨어 기반으로 돌아가고 있다”며 “현재 국내 통신장비 유지보수요율은 1%에 미치지 못하고 있어 업계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고 말했다.

고재목 GSI 대표는 “우리나라 국민 80% 이상이 중소기업에 다니는데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중소기업 지원을 늘리는 게 당연한 일”이라며 “중기 간 경쟁제품 지정 등 정책 지원과 함께 대기업에서 ‘함께 가야 한다’는 생각을 가져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통사는 중소 장비업계의 어려움에 공감했다. 하지만 그동안 국산 장비를 사용하려는 노력을 꾸준히 진행해왔으며 기업 환경을 여러 측면에서 고려해 장비를 선정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조창길 LG유플러스 상무는 “이통 3사 투자가 일어나려면 선순환이 돼야 하는데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매출 성장은 어렵고 이익은 줄 것으로 우려된다”며 “투자 여건이 녹록지 않은 상황에서 전국망 품질을 유지하기 위한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국가엔 흑자정책, 적자정책 등 재정정책이 있지만 사기업은 반드시 생존해야 하기 때문에 외국업체의 파격적 제안엔 흔들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중계기는 국산을 쓰다가 가격 경쟁력 면에서 외산 RRH(RU, 무선부문) 비중을 늘린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상생을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으며 재난망 등 국가 사업에서 수요가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조 상무는 “장비를 선정할 때는 기술과 품질 등을 다 고려하지만 어려운 상황에서는 비용에 비중을 조금 더 둘 수밖에 없다”며 “장비 업계가 가격 경쟁력을 갖춰 달라”고 주문했다. 또 최근 집선장비 도입을 위해 시장조사를 했는데 국내 업체는 없었다며 기술 개발도 힘써달라고 말했다.

하성호 SK텔레콤 CR부문장은 “장비 업계가 바로 앞만 내다보지 말고 먼 미래를 생각해 국산 장비 사용을 주장하는 데 만일 그 주장이 맞는다면 그렇게 하는 게 당연하다”며 “하지만 구매부서 등 내부에서 국산 장비를 써야 하는 이유에 공감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공감과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남민우 회장은 화웨이 제품을 도입한 해외 기업 사이에서 불만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화웨이가 저가를 무기로 시장을 장악한 이후 유지보수 비용을 올리는 전략을 펴고 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국내에서도 몇 년 안에 이런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남 회장은 “중국 기업이 판을 바꾸기 위해 저가 공세를 펼치는데 이를 구매하는 것은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다”라며 “얼마의 차이 때문에 국내 통신장비 시장을 궤멸시키는 것이 현명한 일인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봉태 ETRI 박사는 중국 기업에 대한 지나친 우려를 경계했다. 산·학·연·관이 협력해 우리가 잘할 수 있는 아이템을 발굴한다면 충분히 경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김 박사는 “현재 정부 정책은 7년 전 수립한 네트워크 발전 전략을 계속해서 업그레이드해서 쓰고 있다”며 “이를 점검해 우리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부분을 다시 살펴보고 이 영역에 중소기업이 우선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객석에서는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도 있었다. 한 국책기관 연구원은 “지난번 발표한 정부 K-ICT 전략의 5대 미래융합사업은 IoT, 클라우드, 빅데이터, 모바일 등 ICBM 중심이고 통신장비는 전혀 없다”며 “ICBM도 결국은 네트워크 인프라를 근간으로 하는데 정부는 나무는 안 가꾸고 당장 열매를 따는 데만 집중하겠다고 한다”고 지적했다.

이날 토론회를 주최한 권은희 새누리당 의원은 “과거 KT가 공기업일 때는 더더욱 그랬지만 업계가 힘을 합해 통신시장 발전 로드맵을 마련했다”며 “하지만 지금은 각사가 경쟁구도를 갖추고 있어 공감대 형성이 잘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네트워크 없이는 K-ICT 전략의 5대 미래융합사업이 추진될 수는 없다며 정부와 통신학회, 이통사, ETRI가 미래 정책 마련에 적극적으로 힘을 모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안호천기자 hca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