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량은 ‘울면서 마속을 베지만(읍참마속)’ 이 일의 화근은 유비 때 있었다.
유비는 제갈량에게 마속을 의탁하며 ‘말이 실제보다 지나치니(馬謖言過其實), 크게 쓰는 데는 유의하라’고 이른다.
이후 마속은 제갈량의 영을 어기고 멋대로 전투를 벌이다 패주해 제갈량 칼을 받는다. 그래서 지금까지 말이 실제보다 앞서거나 부풀려지는 것을 경계하란 뜻에서 ‘언과기실(言過其實)’이란 가르침이 내려고 오고 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논란이 식지 않고 있다.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은 합병 반대를 선언하고 외국계 주주를 중심으로 반대표 결집에 돌입했다.
여러 말이 많지만 결국 합병은 기업 활동을 위해 무수히 일어나는 결정 중 하나다. 다만 해당 회사의 장래와 성장성에 투자한 주주들이 있으니 이런 ‘사단’이 벌어지는 게다.
불난 데 기름을 끼얹은 것은 국민연금공단이다. 그간 많은 기업에 돈을 눙쳐놓고 주주로서 역할은 등한시 해온 국민연금이 이번엔 다른 모습이다. SK와 SK C&C 합병엔 양쪽 다 지분을 가지고 있으면서 공식으로 반대의사를 표명해 어느 한쪽 회사 결정은 반대하고, 반대쪽 회사 경영방침은 찬성하는 듯한 이상한 꼴을 연출했다.
삼성이 잔뜩 긴장하고 나선 건 당연하다. 국민연금이 보유한 삼성물산 주식은 10.15%로 단일 기관 최대다. 엘리엇이 판을 깔고, 국민연금까지 가세한다면 삼성의 오랜 작업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번엔 주주로서 자격 자체가 SK와 다르다.
국민연금이 SK와 SK C&C 지분을 양쪽 다 가졌기 때문에 합병에 따른 주주가치 산정에서 문제제기를 한 것은 오히려 공정성이 인정될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번엔 삼성물산 지분만 갖고 제일모직 지분 없이, 합병이 주주가치를 훼손한다며 반기를 든다면 제일모직 주주들의 가치는 어찌할 것인지가 문제로 남는다.
국민연금은 명칭 그대로 국민이 낸 연금보험으로 자산을 운용하는 기관이다. 자기 돈이 아니다. 단순 보유지분으로 얻는 주주가치도 중요하지만 우리 경제와 산업에 미치는 영향 분석이 우선이다.
우리나라는 금산(金産) 분리 원칙에 따라 금융자본과 산업자본 활동 범위를 엄격히 구분하고 있다. 예전 론스타가 우리 헌정 질서를 악용해 거금을 사실상 탈취에 가깝게 가져간 경험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국민연금 의사 결정권은 국민연금 경영진이 아니라 국민과 국가경제가 쥐고 있다. 국민연금 주주가치 극대화란 것도 사실은 국민연금 자체의 자산 상승이 아니라 국민에게 돌아갈 기금 규모와 안정성 보호라고 해야 정확하다.
이는 말을 앞세운 국민연금의 책임이다.
SK 사례가 그랬지만, 국민연금이 합병에 반대한다고 선언을 할 만큼 주주가치 훼손이 극심했는지 되묻고 싶다. 국민연금 지분이 공공성과 사회·국가적 가치를 높이는 방향으로 쓰여야지 그것 자체가 권력으로 작용해선 안 된다.
‘언과기실’은 향후 일어날 일에 대한 사전 경계의 의미가 가장 강한 고사성어다.
이진호기자 jho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