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오사카 중심부 우메다 ‘한큐백화점’은 서일본 고급 백화점 대명사다. 도쿄가 있는 동일본에 미쓰코시, 다이칸야마가 있다면 한큐는 간사이의 상징이다. 서일본에서는 같은 물건일지라도 ‘한큐에서 샀다’고 하면 받는 이가 더 좋아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콧대 높은 간토(도쿄권) 미쓰코시가 한큐 아성을 무너뜨리기 위해 수차례 ‘서일본 공략’을 펼쳤지만 점유율은 한큐가 앞선다.
한큐가 서일본에서 지속적으로 사랑받을 수 있던 배경에는 ‘소스라이스’ 일화가 있다. 1930년대 대공황 시절 한큐백화점 식당가 최고 인기 메뉴는 ‘카레라이스’였다. 하지만 불경기에 서민들은 카레 소스 값이 아까워 맨밥만 주문하고 그 위에 ‘우스터소스’를 듬뿍 뿌려 소스라이스를 먹었다. 우스터는 쉽게 구할 수 있는 저렴한 돈가스 소스다.
직원들은 이를 달갑지 않게 여겼다. 매출은 줄었고 무료 제공인 우스터소스 비용만 나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큐 창업주 고바야시 이치조는 신문에 “우리 백화점은 맨밥만 주문하시는 분도 환영합니다”는 광고를 내며 반대 행보를 펼쳤다. 그는 직원에게 “맨밥만 시키는 손님도 미래의 우량 손님”이라며 항상 웃으며 맞이할 것을 지시했다.
고바야시는 부동산, 스포츠, 유통, 철도 등 다방면에서 사업을 벌이던 대재벌이었다. 단기수익에 집중할 수 있었지만 그는 미래를 중시했다. ‘맨밥 혜안’은 훗날 한큐의 서일본 유통망 장악 원동력이 됐다. 가장 어려운 시절에 함께한 추억은 영원하기 때문이다.
이재용 ‘삼성생명공익재단 이사장’의 사과문이 화제다. 이 부회장은 끝까지 책임지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두 번이나 허리를 굽혔다. 그날은 그의 생일이기도 했다.
메르스발 삼성 개혁을 기대한다. 맨밥도 웃으며 팔았던 고바야시처럼 ‘신뢰받는 삼성’으로 거듭나기 바란다. 삼성에 ‘메르스 극복기’로 남을지, ‘메르스 악몽’으로 남을지는 이 부회장과 삼성에 달렸다.
서형석 전자자동차산업부 기자 hsse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