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서비스라는 용어조차 생소하던 1985년. 직원 26명, 자본금 2억원 규모로 시스템통합(SI)과 소프트웨어(SW) 개발을 주력으로 하는 회사가 설립됐다. 삼성데이타시스템이다. 오늘날 연매출 8조원을 바라보는 삼성SDS 전신이다. 삼성SDS는 지난 30년 동안 IT서비스 산업 선구자, IT사관학교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며 대한민국 IT산업 발전 역사와 맥을 같이했다.

삼성SDS는 초기 삼성데이타시스템으로 설립됐다. 1997년 테헤란로 시대를 열면서 지금의 삼성SDS로 재탄생했다. IT서비스 기업으로 대한민국 정보서비스 시대 문을 연 삼성SDS는 정보화 기반으로 삼성그룹을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대외적으로는 전자정부 등 국민이 편안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인프라 마련에 기여했다.
◇초일류 삼성그룹 경쟁력 뒷받침
삼성SDS는 지난 30년간 삼성그룹 정보인프라 시스템 개발과 운영을 담당했다.
1995년 삼성그룹 사내 정보인프라 시스템인 ‘싱글(SINGLE)’을 개발했다. 현 마이싱글까지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삼성그룹 임직원이 빠르고 편리하게 업무를 볼 수 있도록 지원했다. 싱글과 마이싱글은 삼성그룹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데 핵심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평가된다.
삼성전자가 세계 TV시장에서 부동의 1위 소니를 밀어내는 데도 삼성SDS가 기여했다. 삼성SDS는 삼성전자에 공급망관리(SCM) 시스템을 공급, 공급망을 혁신할 수 있는 발판을 제공했다. 당시 삼성전자는 기술력과 품질, 디자인 경쟁력을 높이면서 혁신적 SCM을 도입한 것이 주효했다. SCM으로 재고를 줄이고 판매 현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해 비용절감은 물론이고 고객과 거리를 좁혀 소니를 앞지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최근에는 삼성SDS가 개발한 물류솔루션 ‘첼로(Cello)’를 기반으로 삼성전자 해외 물류를 혁신한다. 삼성전자 해외 물류망에 첼로를 적용해 세계 시장에 적시 상품을 공급,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뒷받침했다. 삼성SDS는 현재 30개국에 39개 공급망물류(SCL) 거점을 두고 있다.
삼성SDS는 삼성그룹 계열사 글로벌 물류 시스템을 운영하며 쌓아온 다양한 노하우로 관련 사업을 대외사업으로 확대한다. 1000건의 프로젝트로 쌓은 검증된 컨설팅과 IT역량도 사업 경쟁력을 높인 배경이다. 전동수 삼성SDS 사장은 지난 3월 주주총회에서 “물류업무 프로세스 아웃소싱(BPO) 사업 거점을 공격적으로 확충하고 성공적 상장도 이뤘다”고 말했다.
◇전자정부 밑거름·IT사관학교 역할
삼성SDS는 대한민국을 세계 1위 전자정부 우수 국가로 만드는 데도 일조했다.
지난해 10월 ‘UN 전자정부 글로벌 포럼’에서 우리나라 전자정부시스템이 ‘글로벌·지역·온라인 참여’ 등 3개 부문에서 1위를 달성, 대상을 수상했다. 격년제 평가에서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과 2012년에 이어 3회 연속 세계 1위를 달성하는 쾌거를 올렸다.
삼성SDS는 대한민국 정부가 행정 서비스를 이용하는 국민 편익을 증진하고 부처 간 소통과 협력을 강화하는 정부3.0을 지원한다. 2000년 이후 시행된 대한민국 전자정부 구축 프로젝트 50% 이상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삼성SDS는 국내 전자정부시스템 구축 경험 기반으로 해외에서 IT한류 바람을 일으켰다. 코스타리카와 베트남 등 여러 국가에 진출해 전자정부시스템을 구축했다. 2014년 공공사업 철수 후에도 삼성SDS의 성공적 수행 사례는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밑거름이 되고 있다.
삼성SDS는 벤처 열풍 주역이기도 하다. 대표적 성공사례로 꼽히는 네이버는 삼성SDS 사내 벤처로 출발해 오늘날 굴지 IT기업으로 성장했다. 삼성SDS는 네이버 출범 당시 국제통화기금(IMF) 시기로 시장 환경이 침체된 상황에서도 사내 벤처에 대한 지원을 줄이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탄생된 독립벤처 1호가 네이버다.
네이버를 국내 대표기업으로 성장시킨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 한게임부터 카카오까지 성공신화를 쓴 김범수 다음카카오 의장 등 벤처열풍 주역 모두 삼성SDS 연구소 출신이다. 1993년부터 1997년까지 삼성SDS를 이끈 고 남궁석 사장은 정보통신부 장관을 역임했다. 이외 다수 IT기업 CEO를 배출하는 등 IT사관학교로서도 자리매김했다.
신혜권기자 hksh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