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디스플레이 산업 움직임이 심상찮다. 디스플레이 산업은 중국 정부가 보호·육성을 주도해온 대표 산업이다. 지난 2012년 처음 매출액 기준 일본을 추월하며 세계 3위 생산국으로 등극했고 이제는 우리나라 디스플레이 산업 최대 경쟁국으로 자리 잡았다.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지속된다면 2~3년 내 액정표시장치(LCD) 생산 능력은 우리나라를 추월할 것으로 전망된다.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분야에서도 우리나라를 제외하고는 현재 중국이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턱밑까지 추격해온 중국 디스플레이 산업이 최근 흔들리고 있다. 중국 정부 최대 수혜 기업으로 손꼽히는 BOE가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해 10세대 LCD 신규 공장 설립이 계속 지연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성숙기에 접어든 LCD 산업을 대신해 OLED로 투자 방향을 돌렸지만 진척이 더디다. BOE 네이멍구 오르도스 OLED 공장 생산 수율은 답보 상태라 일각에선 공장 폐쇄설까지 나돌았다.
중국 디스플레이 산업은 12차 5개년 규획에서 신흥 산업에 편입됐지만 올해가 마지막인데다 지난해 중국 중앙 정부가 반도체 산업 육성 전략을 발표하면서 디스플레이에서 반도체 산업으로 투자 중심이 크게 기울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BOE 등 일부 디스플레이 제조업체는 반도체 시장 진출까지도 꾀하고 있다. 정부 지원에 의존해 왔던 중국 디스플레이 산업이 더 이상 한계에 다다른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중국 디스플레이 산업 신화는 여전히 ‘진행형’
중국 디스플레이 산업은 중국 TV, 휴대폰, PC 등 전자기기의 최대 수요시장을 지렛대로 삼아 급속도로 성장했다. 지난 2005년부터 2013년까지 연평균 성장률이 20.1%로 한국 7.7%, 대만 4.3%, 일본 1.5%와 큰 격차를 보였다.
중국의 LCD 설비 투자는 계속 확대돼 시장 불황 속에도 급성장했다. 지난 2014년에는 설비 투자가 절정에 이르렀다. 올해도 세계 총설비투자의 9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무섭게 확대하고 있다.
산업연구원(KIET) 자료에 따르면 8세대 기준으로 지난 2013년 우리나라와 중국 생산능력은 60% 대 20%로 세 배 정도 차이가 났다. 하지만 내년 말쯤이면 42% 대 41%로 바뀌면서 향후 2~3년 내 LCD 생산 규모 면에서 중국이 한국과 대등한 수준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선두 자리를 위협받자 우리나라와 대만 업체들은 중국 현지 생산 강화를 통해 시장 대응에 나섰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지난 2013년 말 8.5세대 쑤저우 공장을 가동했고 LG디스플레이도 지난해 광저우에 8세대 LCD 공장을 가동했다.
중국 디스플레이 산업 추격은 OLED 부문으로도 빠르게 전이되고 있다. 중앙 정부가 LCD 산업 육성과 비슷한 시나리오로 힘을 보태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중국 업체들이 가세하기 시작하면서 올해 GVO(GoVisionox), BOE 등이 양산을 시작해 본격적인 경쟁 체제가 구축될 전망이다.
유비산업리서치가 최근 발표한 ‘OLED 디스플레이 연간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중국 패널업체들이 모바일용 OLED 패널 양산을 시작해 오는 2017년부터는 대면적 양산도 가시화될 것이라 전망했다. 올해 1~2% 수준에 불과한 중국 OLED시장 점유율이 향후 5년 뒤에는 40%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에 국내 점유율은 48%대까지 떨어질 것이라 관측했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급성장은 정부의 강력한 지원책에 힘입은 보호육성의 산물이지만 추격 속도를 보면 놀라운 성과”라며 “우리나라가 지속적으로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선 선제적 기술력 확보와 함께 지속적으로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지원줄에 좌우되는 중국 디스플레이 산업, 추가성장 여력은?
세계 디스플레이 시장은 TV 패널 수요 정체로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다. 2년 넘게 LCD 패널 가격도 약보합 또는 하락세다.
시장조사업체 위츠뷰에 따르면 TV용 LCD 패널 평균 가격이 올 1월 203달러에서 이달 들어 184달러까지 내려갔다. 게다가 중국 TV 제조업체 중소형 패널 재고량이 늘어나면서 공급과잉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가 지속되자 최근 중국 정부는 LCD 패널 설비 투자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으로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LCD보단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평가되는 OLED로 투자 방향을 선회했지만 OLED 시장은 아직 LCD 대비 한 자릿수 수준에 불과한데다 기술 벤치마킹도 어려워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초기 투자 단계만큼 투자 대비 효과가 크지 않자 중국 정부가 디스플레이 산업 전체 투자금을 축소할 여지가 커졌다. 최근 중국 정부는 디스플레이 산업과 유사하다고 판단되는 반도체 산업에 천문학적 투자금액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중국 정부의 이 같은 변화가 예상되면서 세계 디스플레이 업체 투자열기도 한풀 꺾이는 모습이다. 8세대 이후 LCD 패널 경쟁에서 BOE가 정부 지원을 추가로 확보하지 못해 사업 추진에 브레이크가 걸리면서 국내 디스플레이 업계도 한숨 돌리고 있다. BOE가 최근 반도체 사업으로 눈을 돌리면서 디스플레이 산업에 대한 집중도도 다소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정부 지원을 받고 OLED 설비 투자에 나선 중국 패널 업체는 수율 개선에 진척이 없는데다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소재 수급도 쉽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 전문가는 “막대한 예산 투자 대비 디스플레이 산업 분야의 내수 진작 효과가 크지 않을 것으로 예측되는데다가 정부 보조금 지원으로 수요 확대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고려해 앞으로 투자 방향에 변화가 많을 것”으로 전망하며 “국내 디스플레이 업계는 중국 성장 여력 둔화에 따른 반사이익 효과도 일부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현희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