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출연연구기관 연구원들은 요즘이 가장 바쁜 시기다.
사업이 종료되고 평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향후 연구개발을 위한 기획도 한창이다. 사업을 평가받다 보면 사업기간 내 구입한 연구기자재, 장비를 두고 인정하는지 마는지 하는 일로 곤욕을 치르기도 한다.
국정감사 단골 메뉴 중 하나가 바로 유휴장비 공동 활용 방안이다. 참 어려운 얘기다. 출연연마다 핵심업무나 사업구조가 다른데 내가 연구하던 장비를 옆 연구소에 빌려주고 심지어 중소기업에까지 빌려주란 것이니 연구원들 입장에선 그리 달갑지만은 않다.
최근 미래창조과학부와 국가과학기술위원회가 이에 대한 해답을 내려 동분서주하고 있다. 미래부 차원에서는 연구장비의 예산투자 효율화를 위해 애쓰고 있다. 연구회는 연구회대로 1억 원 이상의 연구기자재 및 장비에 대해 적정성 검토를 위한 사전심의위원회를 민간전문가 중심으로 만들고 있다. 또 3000만원 이상의 장비에 대해선 국가과학기술지식정보서비스(NTIS)에 의무등록을 명시화했다.
출연연마다 고가의 장비 구입 시 장비구입 심의위원회를 열어 다각적인 검토를 거친다. 하지만 감사의 잣대를 들이대면 연구원들은 한없이 작아지게 마련이다.
정부출연연구기관이 한 해 쓰는 예산은 출연금 4조원을 포함해 6조원가량 된다. 국가R&D 예산 18조9000억원의 30% 정도에 해당한다. 매번 R&D 예산이 “많다, 줄여야 한다” “GDP 대비 OECD 국가 중 1등”이라는 식으로 말들이 많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그리 녹록지 않다. 세계 최고의 장비를 구입하기 위한 예산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연구비는 인건비, 직접비, 간접비 등으로 나뉜다. 인건비를 제외하면 과제별 예산이 그리 많지 않다. 심지어 과제를 수행하면서 직접비에 포함돼 있는 연구시설, 장비 및 재료비에 포함돼 있는 연구기자재비는 눈치를 봐가며 구축하거나 사야 하는 때도 있다.
전체 예산이 적다 보니 과연 이 장비를 과연 사야 하는지를 묻는 관리기관이나 평가자들이 ‘현미경’을 들이대기 때문이다.
장비의 효율적인 사용에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대부분 정해진 프로젝트가 끝나면 장비는 자리만 차지하는 골칫덩이로 전락한다. 그렇게 길게는 4~5년이 흘러 사용 연수가 끝나면 불용처리를 해야만 하는 현실도 안타깝다.
출연연 간, 또는 중소기업과의 공동 활용에도 애로가 많다. 계측장비는 매번 서비스 업체를 부르거나 소속기관의 연구원이 세팅을 해줘야 하는 등 번거로운 일들이 있고 빌려주고 난 뒤 고장 시에는 하소연할 데도 없다.
최근 연구회가 융합연구를 주도하고 있다. 적게는 3~4개에서 많게는 10여개 기관이 공동으로 연구를 수행한다. 이때 구입한 장비만큼은 과제 종료 시 풀(Pool)제로 운영하는 방안은 어떨까.
나노종합기술원은 연구장비 구입 시 전문가단 운영과 클린룸을 활용한 시설 공동 활용방안 등을 검토 중이다.
나아가 우주 발사체나 위성발사 계약, 슈퍼컴퓨터 도입 등 큰 예산이 들어가는 프로젝트는 민간 CEO가 주도하는 ‘전문가단’을 꾸려 계약이나 구매를 추진하는 것도 예산절감 측면에서 한 방법이다.
예산 5%만 줄일 수 있어도 올해 정부승인 장비비 1800억원 대비 90억원을 절감할 수 있다.
과제 제안서(RFP)에 장비 공동 활용 방안을 명시하면 평가에서 가점을 주는 방안은 또 어떨까?
대전=박희범기자 hb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