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5일 광주테크노파크에 노조원들이 하나 둘 모였다. 이들은 이날 민주노총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 광주테크노파크지부원 일동 명의로 성명서를 발표하며 “광주시는 지역경제와 광주테크노파크 미래 비전을 진정으로 고민하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전문성 있는 원장을 채용하라”고 요구했다. 지난해 10월 말 전임 유동국 원장이 사퇴해 원장이 공석인 가운데 윤장현 시장의 개인적 친분이 있거나 캠프 출신 인사 등이 원장 후보로 거론되자 정치색을 배제한 전문가의 원장 선임을 요구한 것이다.
#신동식 울산테크노파크 원장이 지난해 11월 말 갑자기 퇴임했다. 아직 임기가 2년여 남았지만 돌연 사직한 것이다. 배경에는 울산시가 있었다. 울산시가 산하기관장을 물갈이하면서 신 원장에게도 사퇴 압박을 한 것이다. 이에 중앙부처 공무원 출신인 신 원장이 시의 눈치를 보고 미련 없이 사표를 던진 것이다. 울산TP는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해 실시한 ‘2013년도 테크노파크 경영실적’에서 최우수 등급(A)을 받았기에 지역산업계가 받은 충격은 더 컸다.
지역산업의 대표적 혁신기관인 테크노파크(TP)가 정치 바람에 휩쓸리면서 휘청이고 있다. 새 지자체장을 맞아 원장들이 임기를 미처 채우지 못하고 낙마하는 사례가 속출했다. 원장 공백에 따른 업무 차질은 물론이고 지자체장 측근의 비전문가가 새 원장으로 거론되면서 지역산업계가 크게 우려하고 있다.
1일 산업통상자원부와 테크노파크(TP)에 따르면 전국 18개TP 중 광주, 울산, 대전, 인천 4개 TP에서 원장들이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물러났다.
울산을 제외한 세 곳 모두 공통점이 있다. 기존 시장과 다른 당의 사람들이 시장으로 선출됐다. 이에 따라 시장 측근들이 새 원장으로 올 것이라는 설이 파다하다.
유동국 전 광주TP 원장은 지난해 10월 말 물러났다. 지난해 연말 연임에 성공해 2016년 12월까지 임기가 연장됐지만 사퇴했다. 강운태 전 시장의 최측근으로 분류돼 현 윤 시장 측으로부터 직간접적으로 사퇴 압력을 받아오다 물러났다. 원장의 갑작스런 퇴임으로 광주TP의 조직 사기는 크게 떨어졌다. 설상가상으로 광주시의 강도 높은 감사가 진행됐고 기관 경고를 받았다.
새 원장에 시장 측근이 내정됐다는 설이 도는 등 광주TP는 정치풍에 휩쓸리면서 조직이 크게 동요하고 있다. 노조 직원들이 성명서를 발표한 이유다. 광주TP는 이르면 이달 중 이사회를 열어 새 원장을 선임한 후 산업부에 승인을 요청할 계획이다.
울산TP 역시 중앙공무원 출신인 신동식 원장이 중간 사퇴함에 따라 지난달 30일까지 새 원장을 공모했다. 2011년 제3대 울산TP 원장으로 취임한 신 원장은 전국 18개 TP 중 가장 많은 흑자를 내는 등 큰 성과를 거뒀기에 TP 안팎에서 충격이 컸다. 울산TP는 1차 서류 심사(4일) 2차 면접(10일)을 거쳐 이사회(24일)를 열어 원장을 선임한 후 산업부에 승인을 요청할 예정이다. 대전TP도 중앙부처 실장 출신의 전의진 원장이 시의 사퇴 압박을 받아 임기의 절반도 채우지 못하고 지난해 11월 미래부 산하 정부출연연 상임감사로 옮겼다. 원장 공석이 2개월째 이어지면서 대전TP는 내부 조직개편이 늦어지는 등 부작용이 나타났다. 내부에서는 하루라도 빨리 원장이 선임돼 조직개편을 마무리하고 올해 사업 체제를 갖춰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전TP는 1차 서류심사(4일)와 2차 면접(11일)에 이어 2월 말이나 3월 중 이사회를 열어 원장을 선임할 방침이다. 인천TP도 지난해 2월 원장으로 취임한 서태범 인하대 교수가 3년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중간에 물러났다. 지난달 23일 원장 공모를 마감한 인천TP는 지난달 30일 2차 면접에 오는 4일 이사회를 열어 원장을 선임한다.
이처럼 TP원장들이 정치 바람에 휘말려 중간에 낙마하는 사례가 잇따르자 지역산업계는 “신임 원장은 기업 지원 경험이 있는 전문가가 와야 한다”며 “인사청문회 등 인사 검증시스템 강화를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일각에서는 “지자체장 측근 인사를 ‘낙하산’으로 내려 보내더라도 경험이 있는 전문가를 선임해야 한다”며 “전문성 없는 캠피아는 TP 본연의 임무를 망각, 지역산업 활성화를 저해하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간절함을 전하고 있다.
현재 TP 원장 요건은 △대학(연구소)에서 정교수(최고 책임자)로 5년 이상 근무한 경력이 있는 자 △대기업 이사급 이상으로 근무한 경력이 있는 자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고위공무원(3급이상)으로 근무한 경력이 있는 자 △정부(지자체) 출연 및 투자기관에서 이사급 이상으로 3년 이상 근무한 경력이 있는 자 △기타 테크노파크 경영에 도움이 되는 경력이 있다고 원장추천위원회에서 인정되는자 등이다. 지난해 12월부터 고시로 확정, 법정 요건이 됐다.
한편 산업부는 이 고시에 지자체가 TP 원장을 해임할 경우 산업부와 협의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아 지자체의 TP원장 일방적 해임을 막을 수 있는 안전장치를 마련했다.
<◇원장이 공석중인 지역TP 현황>
방은주기자 ejb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