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초반 인터넷 세상이 열렸다. 실리콘밸리에 리눅스, 야후, 라이코스, 구글이 있었다면 한국에는 엠파스, 드림위즈, 네띠앙, 다음, 네이버가 있었다. 1997년 외환위기가 닥치자 돈이 인터넷 벤처기업으로 대거 몰렸다. 인터넷전화, 지식검색, 소셜 네트워크 등 한국은 실리콘밸리와 맞먹을 정도로 창의력이 넘쳐났다.
한국의 정보기술(IT) 역시 이때부터 가히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인터넷 트래픽 속도를 감당 못해 글로벌 네트워크 장비업체가 국내 시장에서 쏠쏠한 재미를 봤다. 지금도 글로벌 1위를 하고 있는 반도체·디스플레이, 휴대폰은 그때 만들어진 경쟁력이다.
하지만 외환위기 극복 이후 등장한 인터넷실명제는 사회를 보수로 만들었다. 대기업과 통신사, 포털 위주의 정책이 규제로 포장되면서 사회는 창의력과 도전정신을 잃어가는 모양새가 됐다.
국내 금융 시장에 핀테크 열풍이 불고 있다. 2000년 초반 인터넷 붐이 일었던 모습과 묘하게 닮아 있다. 당시 스마트한 세상이 열릴 것에 대한 기대감과 달리 시장이 어떻게 바뀔지 전혀 예측이 불가능했다. 원론만 있고 각론은 없었다. 다양한 포럼이 등장했고 일부 전문가들은 스마트폰이 등장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의 핀테크 산업도 비슷한 상황이다. 금융권은 ‘핀테크를 해야 한다’는 필요성엔 공감하지만 어디서, 어떻게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야 할지 방향을 못 잡고 있다. 은행과 카드사들은 스마트금융을 하겠다며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인터넷 전문은행 설립을 준비하고 있지만 금융당국의 불호령에 할리우드 액션만 취하는 모습이다. 정부 정책에 보조를 맞추고 있지만 진정성은 없어 보인다. 이달 중순 한동우 신한금융지주 회장은 기자간담회를 통해 “인터넷은행은 준비가 되면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얼핏 보면 신한금융이 핀테크에 적극 나서는 것처럼 보이지만 언제,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하겠다는 세부계획은 없다. 한편으로는 ‘남이 하는 것으로 보고 결정하겠다’는 것으로도 해석된다.
세계 지급결제 시장에서 강자로 부상한 알리페이나 페이팔과 달리 우리나라 핀테크 상황은 ‘통제와 복종’이라는 갑을 문화가 만들어낸 ‘일방적 소통’으로 갈지자 걸음이다. 금융은 IT를 모르고 IT는 금융이 생소하다. 핀테크가 IT와 금융의 융합이라고 말을 하지만 정착 어떻게 해야 할지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는 이유다.
최근 금융위원회가 핀테크 육성을 위한 ‘IT·금융 융합 지원방안’을 내놨다. 관치금융을 깨겠다는 정책은 분명 진일보했다. 하지만 기대에는 못 미친다. 삼성전자 등 비금융권이 금융업에 진출하기 위한 금산분리 해소 문제는 온데간데없다. IT와 금융을 결합하겠다며 내놓은 정책이 벽은 못 허물고 쪽문만 조금 열어 놨다. 너무 서두른 탓에 급조한 티가 역력하고 허술한 구석이 곳곳에 보인다.
규제나 계획이라는 틀 안에 기업과 소비자를 맞추기보다 시장이 자율적으로 커나갈 수 있도록 정부가 조력자 역할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핀테크 벤처기업에 투자자금이 투입될 수 있도록 정책을 바꾸고 규제를 풀어야 한다. 돈만 있으면 지금에라도 사업에 나설 수 있는 핀테크 창업 아이디어와 기술이 시장의 무관심으로 사장될 위기에 처했다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2000년대 초반 인터넷 세상이 열리면서 좌고우면 했던 우를 지금의 핀테크 산업에서는 범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동석 성장산업총괄 부국장 ds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