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신뢰 잃은 소재부품 지원 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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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려가 현실이 됐다. 핵심 소재부품 연구개발 정부 지원 예산이 애초 계획보다 크게 줄었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분야 모두 쪼그라들었다. 지난해 말 업계가 조심스럽게 내비쳤던 불안한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감축설이 나돌 때마다 “노력하고 있다. 늘어날 수 있다”고 안심시켰던 관계 당국은 양치기 소년이 됐다.

축소 우려가 가장 컸던 디스플레이 분야 신규 연구과제 예산은 기획 단계보다 60% 가까이 줄었다. 연구 과제 수도 절반 이상 날아갔다.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나 플렉시블 등 혁신제품에 해당하는 소재 개발 과제가 대부분 백지화됐다. 엄청난 정부 지원을 등에 업고 파상 공세에 나선 중국 업계에 대응할 신무기 개발이 예산 부족이라는 벽에 막힌 꼴이다.

곧이어 나온 반도체 지원 예산 결과는 사정은 더 열악하다. 모바일 중앙처리장치(CPU) 코어 국산화 사업 예산이 계획보다 3분의 1토막 났다. 기간도 2년이 줄었다. 5년간 정부가 250억원, 민간이 100억원을 투입한다는 기획안이 예산 심의 과정에서 깎여 매년 30억원씩 3년간 지원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이번 사업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의 핵심인 코어를 국산화하는 게 목표다. 이를 기반으로 팹리스 기업들이 사업화할 수 있도록 연계해 국내 시스템반도체 산업을 육성하는 것이 골자다. 하지만 이번 감축으로 해외 업체에 매년 수천억원씩 지불하는 로열티를 줄이고 미래 먹거리 산업의 중심에 세우겠다는 정부의 야심찬 포부는 출발부터 바람 빠진 풍선이 됐다.

기획 단계에서 달성하겠다는 결과나 목표는 그대로 놔두고 지원 예산은 크게 줄었으니 제대로 된 성과가 나올지 의심된다. 5년 동안 350억원을 들여 지을 수 있는 건축 설계도를 제출했더니 90억원을 주고 3년 만에 완공하라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설계가 잘못됐거나 과도하게 부풀렸다면 설계를 변경하든지 사업 자체를 아예 접는 게 맞다.

관련 예산을 시장에서 콩나물값 깎듯이 쉽게 줄여버릴 문제인지 짚어보자. CPU 코어는 특정 업체가 수십년간 천문학적인 자금과 인력을 투입해낸 성과물로 우리에게는 대표적인 기술 종속 품목이다. 수년 만에 수십억원으로 대체 기술을 개발할 것이라는 발상 자체가 무리수다. 모형 비행기나 제작할 수 있는 돈과 시간으로 위성을 띄울 수 있는 발사체를 만들라는 격이다.

불가능에 가까운 상황을 이겨내고 개발했다고 쳐도 그 이후가 더 문제다. 코어 기술 개발은 시작에 불과하다. 상용화가 이뤄져야 성과가 드러난다. 국내 기업들이 오랜 세월 시장을 선점해온 글로벌 기업과 경쟁하려면 전폭적인 정부 지원은 필수다. 연구개발보다 몇 곱절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정부 지원을 발판으로 우리를 빠르게 추격한 중국기업들이 이를 방증한다.

기술 종속이 오래돼 뚜렷한 성공을 장담하기도 어려운 마당에 정부의 쥐꼬리 지원으로 업계는 더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거친 중국 바람과 거대한 글로벌 기업들에 맞설 총과 칼, 군량미가 부족한 상황에서 지원을 기다렸던 업계의 기대는 실망으로 변했다.

실망이 반복되면 불신이 된다. 정부가 아무리 좋은 미래 구상을 내놔도 업계가 믿고 따르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이다. 산업계에 믿음을 줄 수 있는 정책을 기대해본다.


서동규 소재부품산업부장 dkseo@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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