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현지르포/`메이드 인 재팬`의 부활

‘메이드 인 재팬(Made in Japan)’

2013년 1월. 일본 NHK가 방영한 3부작 특집 드라마에 온 일본이 울었다. 한때 세계를 호령하다 몰락한 일본 전자기업을 재건하려는 한 남자의 분투기를 그린 드라마였다. 방영 후 일본 재계는 물론이고 사회 전체가 충격을 받았다.

‘잃어버린 20년’간 고급 인력을 해외에 뺏기고, 내수시장에 안주하면서 해외 경쟁력을 잃어가는 일본 모습이 적나라하게 묘사됐다. ‘메이드 인 재팬의 몰락’을 여실히 보여줬다. 당시 ‘경제부흥’을 기치로 내걸고 출범 한 달째를 맞은 아베 신조 내각에서도 이 드라마가 오래도록 회자됐다는 후문이다.

그리고 약 2년 뒤 ‘메이드 인 재팬’은 부활의 날갯짓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 움직임은 도쿄 중심 업무지구 유라쿠초의 양판점 빅카메라 1층 스마트폰 매장에서 볼 수 있다.

상당 기간 스마트폰 시장은 아이폰과 안드로이드 계열로 양분돼왔다. 최근까지 아이폰 대 삼성전자 갤럭시의 구도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소니, 샤프, 후지쯔 등 ‘범일본산’ 스마트폰이 안드로이드 진영을 이끌기 시작했다. 그 사이 갤럭시의 위상은 여러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중 하나로 전락했다. 우리보다 스마트폰 개발이 늦었던 일본이지만 탄탄한 기초 기술을 기반으로 쉽게 내수 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다.

한 시절 일본의 가전을 책임지던 히타치는 더는 가전 기업이 아니다. 건설기계, 전력, 철도차량 등 사회간접자본에서 매출의 대부분을 일군다. 그룹의 본류인 생활가전은 2013 회계연도 전체 매출 9조6162억엔 중 8%만 벌어들였다. 2년 전에 비해 7% 줄었지만 같은 기간 그룹 전체 영업이익은 20% 늘었다. 국내 경부선에서 운행 중인 철도차량 ‘누리로’도 히타치가 만들었다.

일본 전자업계에서는 ‘기업 30년설’ 이론에 따라 새로운 기업으로 변신하려는 움직임이 잇따르고 있다. 한 분야에만 안주하다가는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이 때문에 고도 성장기 기업 간 경쟁에 따라 협력사로의 수직계열 구조를 한 울타리로 묶었지만 최근에는 이들을 과감히 세계 시장에 내보내고 있다. 교세라, 알프스전기, 일본전산, TDK 등 핵심 부품을 공급하는 1차 협력사들은 자신들의 브랜드로 세계 무대에서 두각을 드러내며 각사마다 5000억엔에서 최고 1조엔의 매출을 내고 있다.

이처럼 일본 전자업계의 와신상담 효과는 현실이 되고 있다. ‘강력한 기초체력’ ‘해외시장 개척’ ‘사업 다각화’라는 3대 전략에 아베노믹스의 ‘엔저’까지 더해 사상 최고의 호기를 맞았다. 이를 두고 일본에 진출한 한 전자업계 관계자는 “국내에서는 TV와 가전에서 이겼다는 생각에 일본 전자업계를 무시한 면이 컸다”며 “성장기 청소년 단계인 중국보다 노련한 일본의 부활을 더 경계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도쿄(일본)=서형석기자 hsse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