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드 인 재팬의 부활]가전에서의 실패, `다각화`와 `기초체력`으로 극복

일본 오사카 중심지 우메다의 복합 상업시설 ‘그랜드 프론트 오사카’. 2층 파나소닉 오사카 센터 입구 전면에 ‘파나소닉 뷰티’ 브랜드의 인테리어가 시민들의 시선을 잡는다. 이 브랜드는 파나소닉이 올해부터 두피 관리기, 머리 인두기(고데기), 피부 보습기, 헤어 드라이기 등 여성향 미용 제품의 통합 마케팅으로 파나소닉 고유의 푸른색을 빼는 파격을 선보였다. 문지원 LG전자 재팬 주임은 “일본 가전업체들이 과거와는 다른 민첩함과 현지화 등 소비자 지향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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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일본 전자업계에 지난해는 와신상담을 위한 체질 개선의 원년이었다. ‘잘라파고스(재팬+갈라파고스)’라는 비아냥거림을 떨쳐내려 부품 모듈화와 해외 시장 개척에 적극적이었다. 성과도 상당수 나타나고 있어 중국의 추격을 뿌리쳐야하는 우리 업계는 일본의 부활이라는 새 과제를 안게 됐다.

우선 사업 구조를 뒤엎는 규모의 사업 다각화가 주목된다. 일본 경제의 초고속 성장기였던 195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의 ‘쇼와 30년대’ 생활가전 대표 브랜드였던 ‘히타치’ 등 가전사들의 ‘탈 가전’ 현상이 뚜렷하다.

히타치 가전 부문은 2013년 전체 매출 9조6162억엔(약 88조원) 중 8% 밖에 차지하지 못했다. 영업이익은 1% 뿐이었다. 오히려 건설기계(7%), 자동차 시스템(9%), 사회 인프라(13%) 등 B2B에서 매출이 나왔다. 이에 힘입어 전체 매출과 영업이익은 상승세다. 히타치는 현재 8900억엔 수준인 자동차 관련 매출을 2018년까지 2조엔으로 끌어 올린다는 목표로 탈 가전에 힘을 싣는다.

일본 가전의 자존심 파나소닉은 ‘해외 진출’과 ‘B2B 비중 확대’에 적극적이다. 베트남 공장을 확대, 냉장고, 세탁기 등 백색가전 점유율 1위를 지키고 배선 기구 시장 점유율을 60%까지 늘려 이 분야 세계 1위를 노린다.

다카하시 타다오 KOTRA 도쿄 무역관 고문은 “일본 전자업계는 한국에 밀린 가전을 고수하기보다 B2B로 눈을 돌린지 오래”라며 “파나소닉은 자동차와 헬스케어, 도시바는 반도체와 전력 산업에서 매출을 내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 시장에서 무주공산인 분야를 선점하는 것이 일본 전자업계의 전략이라는 설명이다.

일본 전자업계의 변신은 기초체력, 즉 강한 원천기술과 튼튼한 내수시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코트라 오사카 무역관에 따르면 일본 전자산업에서 부품 분야는 지난해 생산의 60%, 수출의 80%를 책임질 정도로 세계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평판 액정 TV에 강했던 샤프조차 TV(세트)보다 패널(부품)에서 활로를 찾아 2014년 1분기에는 3분기 만에 흑자를 이뤘다.

PC용 하드디스크(HDD) 구동 모터를 만들던 일본전산은 지난해부터 자동차 관련기업을 잇따라 인수합병(M&A)하며 자동차 모터 업체로 변신했다. 지난해에도 미쓰비시 머티리얼 씨앰아이, 혼다 에레시스 등을 인수해 세계적 수준의 모터 기술에 전자제어 기술을 융합하는 행보를 보였다. 이에 힘입어 올해에는 자동차 사업 매출을 2013년 대비 2.6배인 3000억엔 수준까지 끌어올려 새 성장 동력으로 키운다.

튼튼한 내수시장은 우리에게 없는 일본의 자랑이다. 1억2000만명의 방대한 소비인구는 해외발 충격에도 버틸 수 있는 보루 역할을 한다. 파나소닉은 세계 경기 침체가 이어지던 2010년부터 2013년까지 매출 중 내수 비중 50%와 4조엔 선을 유지했다. 도시바도 45%, 2조7000억엔 선, 히타치도 57%, 5조3000억엔 선을 지켜냈다. 반면 삼성전자와 LG전자는 10%, 25% 수준이었다.

과거 일본 기업은 내수만 믿고 해외 공략에 소홀했다. 파나소닉과 도시바 등은 해외 생산물량을 일본으로 되돌리는데 집중했다. 이 때문에 세계 시장에서 현지 생산, 현지화를 추구한 삼성전자와 LG전자에 밀렸다. 하지만 최근에는 해외 생산시설을 적극 활용해 해외시장 공략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내수를 바탕으로 새 시장을 넓히는 전략이다. 늘어난 수익은 일본으로 돌아와 R&D에 투자되는 선순환 구조도 이뤘다.

대표적 사례가 상업용 에어컨 업체 ‘다이킨’이다. 이 회사는 내수 지향의 다른 기업들과 달리 일찍이 현지 생산과 현지 판매로 방향을 설정, 이 분야 세계 1위에 올랐다. 2013년 매출 1조7831억엔 중 상업용 에어컨에서만 89%의 매출을 냈다. 이를 기반으로 화학, 방산 등 사업 다각화에도 적극적이다.

샤프도 1조1000억엔 선에서 내수 매출을 유지하고 있지만 전체 매출 중 비율은 2010년 53%에서 2013년 39%로 줄었다. 튼튼한 내수를 기반으로 해외를 적극 공략한 덕이다. 최장성 KOTRA 오사카 무역관장은 “일본 전자업계는 더 이상 B2C에 집중하지 않는다”며 “자동차, 에너지, 의료기기 등 미래형 고부가가치 사업에 일찍이 뛰어들어 세계 시장을 누비고 있다”고 말했다.

오사카(일본)=서형석기자 hsse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