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인 미디어]폰부스

매일 가는 공중전화. 전화를 끊고 나가려는데, 갑자기 울리는 전화벨. 무심코 받은 전화에선 살인마의 협박이 들려오고. 당연히 주인공은 좁은 공중전화 박스(폰부스)를 떠나려고 한다. 살인마는 어떻게 주인공을 폰부스에 붙들어 놓았을까? 그것도 영화가 계속되는 80분 내내. 이것이 영화의 핵심이자 결정적인 긴장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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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부스

폰부스는 2003년에 만들어진 저예산 영화. 나오는 장면이라곤 끝날 때까지 폰부스가 전부니 돈이 많이 들 이유도 없다. 장소는 미국 뉴욕. 시대적 배경은 모토로라와 노키아의 구식 폰이 이제 막 보급되던 시기. 아마도 90년대 중후반이 아닐까 싶다.

주인공 스투 세퍼드는 30대 중후반이고 위선과 가식, 허영 덩어리다. 이탈리아식 양복과 솔라리스 시계를 차고 다니지만, 나중에 자기 입으로 ‘짝퉁’임을 고백한다. 허약한 내면을 값비싸 보이는 치장물로 덮고 화려한 말로 가린다.

살인마의 위협에 극단으로 몰린 세퍼드는 결국 이 거짓 세계를 버리고 초라한 진짜 자신을 드러낸다. 이 장면에서 감동 받은 사람이 있다면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을 속이는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을 가능성이 높다.

영화는 폰부스라는 극히 좁은 공간을 의도적으로 골랐다. 보기만 해도 답답해진다. 여기를 나오려는 자, 나오게 하려는 자와 나오지 못하게 하려는 자 사이에 뚜렷한 경계선이 그어진다. 영화는 이 보이지 않는 경계선을 강제하는 극적 장치를 마련했다. 무엇보다 살인마의 저격총이 가장 강력한 장치다. 세퍼드를 테러범으로 오인한 경찰의 방어라인도 위협적이다. 여기엔 총이 더 많다. 부인과 내연녀의 등장은 양념거리.

영화 폰부스에 나오는 기술적 요소는 다름 아닌 ‘해킹.’ 살인마는 뉴욕시 서구지부에 단 하나 남은 이 폰부스에 세퍼드가 매일 오는 것을 알고 이를 해킹, 그의 통화내용을 모조리 훔쳐듣는다. 이렇게 얻은 치부는 좋은 협박거리다. 경찰은 나중에 이 사실을 알고 살인마 위치를 추적하지만, 그는 역추적이 불가능하도록 전화 회선에 장난을 칠 정도로 뛰어난 기술자다.

영화에서는 살인마가 정신이상자이며 아마도 베트남 전쟁 참전용사일 것이라는 추측이 나온다. 끝내 그의 정체는 밝혀지지 않는데, 아마도 통신회사 직원이 아니었을까? 영화는 물론 진땀나는 긴장을 제공하고 약간의 눈물도 흘리게 해주지만 끝나고 나면 남는 건 없다.

굳이 우리가 교훈을 얻자면 개인정보와 통신 보안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인프라로 치면 세계 제일이니까, 뒤집어 말하면 해킹에 가장 취약한 나라로도 볼 수 있지 않을까. 통신회사 직원 분들, 이 영화 한 번 보시죠.

김용주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