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은 의견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이러한 권리는 간섭없이 의견을 가질 자유와 국경에 관계없이 어떠한 매체를 통해서도 정보와 사상을 추구하고, 얻으며, 전달하는 자유를 포함한다.” 지난 1948년 유엔(UN)이 제정한 세계인권선언((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 제19조에 담긴 내용이다. 이 원칙은 인터넷 시대에 들어서면서 세계 여러 국가에서 충돌하고 있다.
세계 인터넷 인구가 30억명에 달하면서 인터넷 콘텐츠에 대한 각국 정부의 감시와 검열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또한 수사기관의 이용자 개인정보 제공 요청도 늘어나고 있다. 표현의 자유와 개인정보 보호를 요구하는 시민사회와 사회 안정을 꾀하려는 정부가 갈등을 겪는 셈이다. 국내에서는 지난해 카카오톡 검열 논란이 불거지면서 갈등이 표면화됐다. 이러한 가운데 구글을 시작으로 지난 2010년부터 발행된 투명성 보고서가 양측 간 신뢰 회복의 디딤돌로 주목받고 있다.
◇정부와 시민사회간 신뢰쌓기 첫 걸음
투명성보고서란 정보통신(IT) 기업이 보유한 이용자 정보, 콘텐츠 등에 대해 정부의 개인정보 제공·삭제 요청 등 현황을 이용자에게 투명하게 공개하는 일종의 개방형 보고서다. 지난 2010년 구글이 처음 발표한 이후 투명성 보고서를 내는 글로벌 IT 기업은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다음카카오가 국내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이달 중 투명성보고서를 발표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커지고 있다.
투명성보고서의 시발점은 구글이다. 구글은 지난 2010년 세계 최초로 각국 정부의 개인정보 요청 현황을 공개하는 사이트를 오픈했다. 정부의 콘텐츠 삭제 요청, 사용자 데이터와 계정 정보 요청은 물론이고 구글 서비스 트래픽 장애기록이나 악성코드 감염 통계 등 다양한 정보를 공개한다. 이용자들과 투명하게 의사소통함으로써 신뢰를 쌓겠다는 전략으로 출발했다.
이처럼 구글이 투명성보고서를 내게 된 데는 구글 이용자가 늘고 정보 이용도 늘면서 해킹과 정부의 감시 등을 통해 개인 정보 노출에 대한 불안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정부의 콘텐츠 감시와 검열은 아동 음란물이나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는 범죄 제재의 경우 법적 또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동시에 개인 자유 침해 소지가 있다. 또한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고 자유로운 표현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논란은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특히 지난 2013년 미국의 컴퓨터 기술자 에드워드 스노든이 폭로한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정보 수집 활동 관련 내용은 세계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스노든은 NSA 등 정보기관들이 테러 방지를 명분으로 프리즘이라는 비밀정보 수집 프로그램을 통해 세계 각지에서 일반인의 통화기록과 인터넷 사용정보 등 개인정보를 무차별적으로 수집해 왔다고 공개했다.
이후 미국에서는 테러 방지와 사이버 프라이버시를 지키는 것 사이의 균형점을 찾기 위한 다양한 논의가 진행됐다.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IT기업의 투명성보고서 발간이 본격화됐다.
그리고 이렇게 발표된 각종 데이터는 국가기관의 인터넷 이용 규제에 대한 적절한 범위와 권한을 정하기 위한 사회적 논의의 촉매제로 활용되고 있다.
◇투명성 보고서 어떤 내용 담겼나
2014년 기준 현재 38개 기업이 투명성 보고서를 발표하고 있다. IT기업은 구글, 애플, 페이스북, 트위터, 에버노트, 마이크로소프트, 버라이존, AT&T 등 주로 미국 업체다. 이 중 상당수 기업이 스노든의 폭로가 있었던 2013년 이후부터 발표를 시작했다. 발행주기는 통상 년 1회 또는 2회이며, 발표 내용과 범위는 기업마다 다소 편차를 보이고 있다.
구글에 이어 2012년부터 투명성보고서를 발간하고 있는 트위터는 각국 정부로부터 접수 받은 정보 제공 요청과 게시글 삭제 요청의 빈도를 담고 있다. 저작권법 위반에 따른 게시물 삭제 요청 건수와 처리 현황도 공개한다. 최근에는 사용자 정보 제공 요청 관련 상세 건수를 담은 보고서를 공개하려다 정부가 이를 국가기밀이라며 제지하자 소송을 내기도 했다.
페이스북과 애플은 2013년부터 투명성보고서를 발간하고 있으며, 작년에는 미국의 주요 통신사인 버라이즌과 AT&T도 이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이들 기업의 투명성보고서는 구글과 트위터에 비해 발표시기가 늦었을 뿐만 아니라, 제공하고 있는 데이터 항목도 상대적으로 적다.
페이스북은 정부의 사용자 계정 정보 요청에 대한 통계와 콘텐츠 접근 제한 요청 현황 등을 공개한다. 단말기 제조사인 애플은 이용자 계정 정보 요청과 응대 현황, 분실 또는 도난 신고된 기기에 대한 정보 제공 현황을 공개했다. 버라이즌과 AT&T 등 통신사들의 투명성보고서 역시 정부에 고객 데이터 등 내부 자료를 제공한 횟수와 유형이 담겼다.
◇미 정부 기관도 보고서 발행 동참
최근에는 기업뿐만 아니라 국가 정보기관도 투명성보고서 발표에 동참하고 있다. 스노든 사건을 촉발한 미국 NSA는 작년 6월 처음으로 투명성보고서를 내놓았다. 이는 개인 정보를 무차별적으로 수집한다는 비난을 해소하기 위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지시를 내린 것으로, 지난 2013년 한 해 동안의 각종 정보 수집 현황을 공개했다.
황용석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인터넷 정책을 둘러싼 다양한 참여자들끼리 서로 건강한 긴장관계를 유지함으로써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다”며 “투명성보고서 발간은 이러한 추세에 맞춰 국내기업도 동참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경민기자 km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