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안녕! 대한민국](5회. 끝) 결산 좌담회

대한민국을 떠나는 인재, 해외로 나가는 기업, 한국을 외면하는 자본, 그리고 국내 기업과 제품에서 마음을 돌린 소비자들로 대변되는 ‘탈한국’ 현상에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자신문은 신년기획을 정리하며 전문가와 함께 ‘탈한국’을 외치는 현실과 이유를 찾아보고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논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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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석자

△김영진 한국무역협회 수석연구원

△윤명 소비자시민모임 실장

△최재홍 강릉원주대 교수

※사회=김원석 전자신문 글로벌뉴스부 부장

◇사회(김원석 전자신문 부장)=먼저 ‘탈한국’ 현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으면 한다. 어느 정도나 심각하다고 생각하는지 연구한 내용이나 직접 보고 겪은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김영진(한국무역협회 수석연구원)=탈한국 현상을 견인하는 것은 고급인력이다. 비전문인력도 경제 일부분에 영향을 미치지만 가장 심각한 것은 고급인재다. 이들이 해외로 나가는 이유는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해 고급인력이 됐지만 사회에서의 보상이나 성과가 미흡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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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이나 미국은 대표적인 두뇌 유입국으로 관련 인프라가 훌륭하다는 장점이 있다. 실제로 유학생 통계를 보면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한국인의 현지 체류 의사는 50% 이상이다. 심지어 국내에서 수학한 외국인 유학생도 우리나라를 떠나려고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반적으로 탈한국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윤명(소비자시민모임 실장)=해외 유학 붐이다. 과거에도 해외 유학은 많았지만 예전과 달라진 것이 분명히 있다. 자국으로 다시 돌아오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자신의 능력을 자국의 발전을 위해 써야 한다는 의식이 컸다. 하지만 이젠 자신을 위해 쓰려는 세상이다. 보수나 복지가 좋은 쪽으로 갈 수밖에 없다. 안타까움도 있지만 글로벌화라는 관점에서는 거스를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싶다.

◇최재홍(강릉원주대 교수)=기업의 탈한국 현상은 이제 제조업을 넘어 정보통신기술(ICT)기업으로 넘어가고 있다. 3~4년 경력의 게임 개발자들에게 해외 진출의 걸림돌은 외국어가 아니라 해당 국가의 정보 부재였다. 언어 장벽보다도 글로벌화가 더 어려운 과제였다. 그래서 요즘에는 아예 해외에서 시작하려는 움직임이 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세계 각국은 해외 우수 인력과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일례로 지난해 부산에서 열린 게임전시회 ‘G스타’에는 독일에서 게임 관계자들에게 세금 감면 등을 설명하는 행사도 열었다. 우리나라도 그런 분위기를 받아들였으면 한다. 기업 등 해외 유출 현상이 ICT 분야로 확산되고 있다는 것은 국내에서 사업을 한다는 것이 개인과 기업의 역량을 펼치기 쉽지 않은 환경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사회=탈한국 현상이 미치는 산업적 영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김영진=고급인력 유출은 한 국가의 노하우가 유출되는 것과 같다. 연구개발 활동이 위축되고 해외 의존도도 높아진다. 결국 국가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현재 국내에서 과학기술로 성공할 수 있다는 기대심리는 낮다. 과학기술의 산실이라는 KAIST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KAIST 졸업생의 경우 의학전문대학원이나 법학전문대학원으로 진로를 바꾸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지난 2008년 8.9%이던 것이 2013년 18.5%나 됐다. 이공계 대학원 진학률도 53%밖에 안 된다. 나머지는 경영대학원 등으로 간다. 과학기술로 대우받지 못할 것이란 생각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결국 필요에 의해 해외 과학기술 인력에 의존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다.

◇윤명=소비자들의 탈한국 현상은 국내 내수경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소비자들이 현명해지면서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면 해외에서의 구매도 언제든 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고 국내 산업이 이를 쫓아가지 못해 벌어진 현상이라고 본다. 해외 직구 등이 ‘좋다’ ‘나쁘다’를 따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내수를 살려야 한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국내 산업계가 똑똑해진 소비자를 직시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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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홍=소비자의 탈한국 현상은 본인이 원하는 것을 찾다 보니 자연스럽게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산업적으로 점점 해외에 국내 기업이나 시장이 설자리를 뺏기고 있다는 위기감은 커지고 있다. 이런 현상이 일반 상품 구매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지금 이동통신사 애플리케이션 스토어는 구글 플레이스토어에 안방을 다 내줬다. 해외 구매와 국내 구매의 세금 문제가 가장 큰 요인이다. 소비자가 발길을 돌리니 콘텐츠를 공급하는 개발자도 떠나갔다. 결국 한때 세계 이동통신사들이 참고하는 롤모델이던 사업의 위상은 사라졌다.

◇김영진=소비자들의 탈한국 현상이 중요한 이슈라는 점에 공감한다. 해외 직구는 결국 작은 무역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 연간 사용되는 금액이 2조원에 달한다. 결국 국내 자본 유출인 셈이다.

◇사회=‘탈한국’ 현상이라는 것이 결국 국경이 무너졌다는 의미로 볼 수 있겠다.

◇윤명=맞다. 이제는 세계가 하나라는 글로벌 마인드로 교육을 받은 세대이다 보니 과거 애국심에 호소해 상품 마케팅을 할 수 있었던 시대는 끝났다.

◇최재홍=이미 국경은 무너졌는데 우리나라는 아직 예전 관념에 갇혀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청소년부터 글로벌 마인드로 무장했다. 하지만 법과 규제는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국내 사업자가 글로벌 서비스를 하기 쉽지 않은 환경이다. 역차별을 겪기도 한다. 과거 토종 동영상 서비스 인기가 많았지만 실명제 등 정부 규제로 주춤한 사이 소비자들은 모두 해외 사이트인 유튜브로 옮겨갔다. 예전에는 토종 동영상 서비스 점유율이 80%에 육박했지만 이젠 3~4%밖에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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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명=역차별 하니 국내 기업이 소비자를 역차별하는 사례도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실제로 해외와 국내 가격이 다른 사례가 한둘이 아니다. 물론 시장 크기가 다르고 유통구조가 다르지만 이제 소비자한테 그 이유가 통하지 않는다. 과거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 수밖에 없었다면 이제 선택의 폭은 다양하다. 소비자가 원하는 다양성이 확보돼야 한다.

◇사회=탈한국 현상을 멈추거나 보완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이 있다고 보는가.

◇김영진=무너진 국경을 역이용하는 자세도 필요하다. 우리 소비자들이 해외로 가는 것 같이 해외 소비자를 국내로 끌어들이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또 해외 인력 유입에도 적극적이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그들을 잡을 줄도 알아야 한다. 지금 정책은 일회성이라는 문제가 있다. 연구개발의 경우도 외국 인력을 데려오지만 짧게는 1년 길게는 3년 정도면 프로젝트가 끝난다. 이후 연속성을 갖고 국내에 정착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지만 그런 노력이 부족하다.

◇최재홍=무너진 국경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우리 것도 해외에 팔면 된다. 중국 소비자들 사이에서 한국 분유나 기저귀 등 유아용품이 인기다. 온라인 쇼핑 사이트를 한국어로 번역해서 보고 있는데 구매환경을 해외 소비자에게 더 쉽도록 만들면 더 큰 수요가 발생할 것이라고 본다.

이를 위해서는 규제 해소 등이 필요하다. 액티브X를 없애기 위해 또 다른 프로그램을 깔아야 하는 일이 발생한다. 아마존은 세 번의 클릭으로 결제가 가능한 시스템이다. 과거의 법과 제도만을 고집한다면 나가는 것만 있고 들어오는 것은 없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구축하기 위한 개선이 필요하다.

◇윤명=지속적이고 꾸준한 길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활성화시킨다’란 표현을 많이 쓰는데 지금 상황을 보면 어떤 것이 활성화인지 잘 모르겠다. 단기적으로 투자해서 보여지는 숫자만 늘리는 것이 활성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너무 단기적인 성과만 찾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또 글로벌화된 소비자들을 산업 전반에서 느끼고 있는 만큼 그들을 되돌리고 국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사회=정부의 법, 제도 개선 등을 말하셨는데 그렇다면 어떻게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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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진=고급인력을 다시 돌아오게 만들고 해외에 있더라도 활용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한 방법으로 인재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할 수도 있다. 고급인력이 현재 어디서 공부하고 있다거나 근무지 등 본인 정보를 스스로 업데이트하게 하는 것이다. 물론 국내 헤드헌터와의 연결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국내 연구개발 정보 등을 제공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고급인력을 관리하는 부서가 산재해 있는 것도 문제다. 하나의 센터에서 통합 관리할 필요가 있다. 일관성 있는 중장기 전략도 세우고 정부사업에 대한 홍보 역할도 하는 고급인력을 120% 활용할 수 있는 통합센터가 필요하다.

◇최재홍=기업 활동을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우수한 기업에는 우수 인재가 몰린다. 글로벌기업을 육성하기만 해도 고급인력을 끌어안을 수 있는 효과가 발생할 거다. 삼성과 같은 사례가 그런 예다.

글로벌기업 육성을 위해서는 기업 활동을 보장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국내 기업과 해외 기업에 적용되는 기준을 같게 하고 그들이 동등한 환경 속에서 사업 역량을 펼치게 만드는 것만으로도 우수 인재를 확보하는 기업을 만드는 기본을 확보할 것이라고 본다.

◇윤명=고급인력이 일하기 원하고 소비자가 찾길 원하는 기업의 탄생이 먼저라는 말에 동감한다. 정부도 기업도 모두 그렇게 만들도록 노력해야 한다.

최근 인기 있는 TV 오디션 프로그램에 해외 참가자들이 늘어났다. 그들은 한국 무대에 서기 위해 직접 한국어를 배우고 찾아오는 노력도 불사했다. 우리 시장도 기업도 그렇게 될 수 있어야 한다. 소비자들이 먼저 오게 만들고 고급인력이 직접 찾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사회=마지막으로 한 말씀씩 해 주신다면.

◇김영진=국가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고급인력을 기반으로 한 과학 기술력을 갖추는 것이 핵심이다. 짧은 기간 내 성과를 내는 것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지원하고 육성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한데 최근에는 그런 부분이 부족해 보인다.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인재를 위한 파격적인 지원과 대우도 요구된다.

◇최재홍=다윈은 작고 빠른 것이 진화하고 살아남는다고 말했다. 최근 사회를 보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초기 창업에는 작고 빠른 기업이 성장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초기 단계를 벗어났다. 보다 큰 시스템이 움직여야 한다. 법과 제도, 문화 등 사회 전반이 움직여야 발전할 수 있다. 기업이 더 벌고 덜 버는 것은 임직원에 의해 가능하지만 죽고 사는 문제는 CEO의 철학이 좌우한다는 말이 있다. 확고한 국가의 철학과 원칙을 바탕으로 보다 개선된 시스템으로 무장할 필요가 있다.

◇윤명=우리 사회가 보다 글로벌한 사회로 성장했으면 좋겠다. 소비자들의 변화를 보며 우리의 시장도 결국 세계 시장의 일부라는 것이 명백해졌다. 국내 소비자는 물론이고 세계 속에서 먼저 선택받을 수 있는 우리나라가 되길 바란다.


정리=김창욱기자 monocl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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