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학자 최윤식 뉴욕주립대 미래기술경영연구원장의 얼굴은 해맑았다. 그는 요즘 한국을 대표하는 40대 전문 미래학자로 인기 상종가다. 하지만 그가 예측한 한국의 미래지도는 온통 지뢰밭이다.
“‘현재 30대 그룹 중 10~15년 안에 절반은 사라진다.” “삼성전자 스마트폰 사업을 이대로 두면 위기다.” “통신 3사 중 한 곳은 망한다.” “한국은 앞으로 10년 내 두 번의 외환위기를 당할 수 있다.”
희망을 설계해야 할 새해지만 미래 표정은 어둡다. 지난해 12월 28일 일요일 오후 강남의 한 커피숍에서 그를 만났다. 미래학자를 새해 첫 인터뷰 상대로 정한 것은 그가 예측한 한국 미래의 위기에 대한 처방전이 궁금해서다. 그는 기자의 질문에 막힘이 없었다. 해법 또한 분명했다.
최 원장은 “내가 미래를 만들면 나에게 행복과 부(富)를 주지만 미래가 나를 만들면 두려움과 고통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다가오는 위기를 피할 수 없지만 어떻게 극복할지 선택은 우리 몫”이라며 “그 선택에 따라 미래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30대 기업 절반이 10~15년 안에 사라진다고 예측했는데.
▲2008년 이후 전체 기업 중 최소 3분의 1은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앞으로 2~3년 내에 탈출구를 찾지 못하면 30대 그룹 중 절반이 사라지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다. 이미 그런 조짐이 시작됐다. 성공신화를 기록했던 STX와 동양그룹, 웅진이 사실상 사라졌다. 2013년 기준 30대 그룹 절반 이상이 한 해 순수익으로 겨우 대출이자를 냈다.
-큰일 아닌가.
▲한국 경제의 회복 시나리오는 △망하는 기업이 없고 △금융권 건전성이 호전되고 △기업 해외시장 점유율과 매출이 급증하며 △부동산시장 활성화로 중산층의 자산가치가 증가하고 더불어 △청년 일자리가 두 배 증가하면서 은퇴 베이비붐 세대 창업 대박이 5년간 지속되는 길뿐이다. 이건 불가능하다.
기업은 선제적 구조조정으로 기업 체질을 개선하고 미래 산업 육성을 위한 투자를 서둘러야 한다. 기업구조도 큰 틀의 변화가 필요하다. 2~3년 후부터 지방자치단체의 부도 도미노가 시작될 것이다. 국민도 버는 것 못지않게 지출도 줄여야 한다.
-삼성전자는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기업이다. 스마트폰 세계 1위다. 삼성전자의 위기 전개 시나리오를 발표한 이후 공교롭게도 지난해 삼성전자의 실적이 급감했다. 삼성전자에서 연락이 있었나.
▲여러 사람이 그런 질문을 했다. 혹시 항의를 받지 않았느냐는 의미였다. 그런 전화는 없었다. 오히려 강의 요청이 왔다. 삼성전자는 세계적 기업이다. 삼성에 가서 위기 시나리오를 소개했다. 삼성전자의 위기는 이미 시작됐다. 삼성전자, 그 중에서 스마트폰 사업은 이대로 가면 위기다.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면 애플이나 노키아, 소니, 야후, 모토로라 같은 운명에 처할 수도 있다.
-위기의 본질은 무엇인가.
▲틀의 위기다. 삼성전자는 틀을 바꿔야 한다. 사람의 문제, 조직문화의 문제다. 아무리 군대조직을 창조적으로 혁신해도 군대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삼성전자의 스마트폰은 더 이상 주력상품이 될 수 없다. 아무리 잘 만들고 발전시켜도 중국의 추격을 따돌리기 어렵다. 이미 중국이 뒤를 바짝 뒤쫓고 있다. 삼성전자의 위기는 삼성그룹의 위기고 이는 국가의 위기로 발전한다.
-삼성전자 위기의 해법은 무엇인가.
▲과거의 틀에 안주하면 위기는 현실이 될 것이다. 삼성전자 스마트폰 사업부를 팔아야 한다.
-어디에 판다는 건가.
▲중국이다. 만약 5년이 지나면 살 업체가 없을 것이다. 팬택을 보라. 팔고 싶어도 사겠다는 기업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스마트폰 사업부를 팔고 그 돈으로 미래 신성장산업에 투자해야 한다. 나는 삼성에 미국의 전기차 기업인 테슬라를 사라고 권하고 싶다. 자동차에 투자하는 게 더 미래전략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이 밖에 바이오, 생명, 나노 신소재, 특허기반 산업 등에 주력해야 한다. -현대자동차그룹이 있는데 자동차에 투자하라는 건가.
▲현대차그룹은 지금 상태라면 2020년 초반에 위기에 직면할 것이다. 크게 세 가지 위기 시나리오가 있다. 하나는 3D프린터고 다음은 전기자동차, 마지막으로 무인자동차다. 무인자동차는 IT가 필수다. 구글은 무인자동차를 시범 운행하고 있고, 2017년이면 무인자동차를 내놓을 것이다. 2030년이면 전체 자동차의 70%는 무인자동차 기술을 탑재할 것이다. 지금 현대차그룹은 이런 기술이 뒤져 있다. 대비하지 않으면 5년 후 본격적인 위기와 만나게 될 것이다. 무인자동차는 안전이 가장 중요하다. 그런 만큼 1등이 시장을 독식한다.
-통신 3사 중 한 곳은 없어진다고 예측했는데 그런 징후가 있는가.
▲통신 3사의 주 시장은 내수(內需)다. 인구변화에 가장 민감하고 직격탄을 맞는 게 통신이다. 한국 인구구조는 2030년이면 감소할 것으로 예측한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통신기업 3사 중 하나는 망한다.
-통신 3사의 위기극복 시나리오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내수 경쟁을 할 게 아니라 통신 인프라를 플랫폼으로 활용해 신규 사업을 찾는 일이다. 3개사가 계속 경쟁하면 결국 매출이 3분의 1씩 줄어들 것이다. 세 명이 돌아가면서 의자 두 개로 자리 빼앗기를 하면 한 사람은 탈락하게 마련이다. 탈락하기 싫으면 의자를 하나 더 만드는 방법이 있다. 다른 하나는 1등 기술을 개발해 해외에 진출해야 한다.
-기업 CEO의 최고 덕목은 무엇인가.
▲통찰력이다. 사물과 사건, 상황을 직시하는 능력이다. CEO의 통찰력은 기업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 통찰력이 없으면 성장도 없다.
-정부는 창조경제에 역점을 두고 있는데.
▲창조경제라는 정책방향은 잘 잡았다고 본다. 창의적 아이디어를 가지고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게 창조경제다. 하지만 이 정부에서 창조경제 성과를 내기는 시간상 어렵다. 차기 정부에서 성과를 거두도록 발판을 마련해 주는 게 좋다. 이 정부가 소신껏 일할 기간은 1년 반 정도다.
-ICT 재도약을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일은.
▲한국의 정보기술(IT)은 세계적인 수준이다. IT는 그동안 자체 산업으로 발전해 왔지만 이제는 다른 분야와 융합해야 한다. IT와 자동차, IT와 BT, IT와 금융, IT와 헬스 등 무궁무진하다. 그러자면 융합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법과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은 금융과 IT를 결합한 새로운 금융서비스인 핀테크(Fintech)를 운영 중이다. 우리는 이제 이 분야를 추진 중이다. 산업은 시간이 가장 중요하다. 정부 조직에 칸막이가 없어야 한다. 정부조직을 융합형 구조로 개편해야 한다. 이게 미래를 위한 틀을 마련해 주는 일이다. 산업은 IT를 바탕으로 융합하는데 칸막이 행정을 하면 제도개선이 쉽지 않다. 칸막이는 소통단절이다.
-한국 위기의 핵심은.
▲시스템의 한계다. 지금 한국의 시스템은 국민소득 2만달러 수준이다. 국민소득 4만달러를 달성하려면 4만달러 시스템으로 바꿔야 한다. 기업도 매출 10억원 시스템은 리더의 생각과 조직, 기술력이 10억원에 맞춰진 구조다. 그 시스템으로 20억원을 달성할지 몰라도 30억, 40억원 달성은 어렵다. 조직이 견디지 못한다. 한국은 1970년대 산업화 시스템을 1990년대 정보화로 바꿔 ‘인터넷강국’을 달성했다. 현 단계에서 시스템을 바꾸지 못하면 2만달러를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의 가장 큰 수출시장인 중국의 위기를 예측했다. 한국기업은 어떻게 해야 하나.
▲중국은 그동안 계획경제와 통제경제로 계속 성장했다. 압축 성장한 만큼 빨리 거품이 꺼질 수 있다. 중국에 대한 전략을 수정해야 한다. 고부가 기술로 중국시장을 지속적으로 점령해야 한다. 1등 기술만이 살길이다. 또 중국이 위기를 맞아도 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이 살아남도록 대비해야 한다. 위기가 와도 살아남은 기업은 있다.
-정보화사회 다음이 초연결사회라고 한다. 사물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제2의 가상혁명이다. 초연결사회가 되면 편리함 못지않게 역기능도 더 증가하는 것 아닌가.
▲당연하다. 정보화 사회는 크게 금융정보와 개인신상 정보 유출이 문제가 됐다. 하지만 초연결사회는 차원이 다르다. 초연결사회는 개인 소유물과 생체정보까지 연결돼 있다. 이것이 외부로 유출되면 생명과 직결된다. 초연결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보안과 안전이다. 한국의 정보보안 의식이나 기술은 외국에 비해 크게 뒤져 있다. 인력양성이나 기술개발에 대한 투자를 대폭 늘려야 한다. 초연결사회의 완성까지는 10년 이상 걸릴 것이다. 그 안에 대비를 해야 한다.
-왜 시간이 걸리나.
▲기존 가전기업 매출에 큰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어떤 산업이건 시장이 형성돼야 기업이 투자를 하고 시장이 커진다. 냉장고에 사물인터넷 기능을 추가하는 것이 기업은 필수지만 소비자는 그렇지 않다. 기존 냉장고나 TV, 세탁기를 사용하는 데 큰 불편이 없으면 인공지능 제품이 나와도 구입하지 않을 것이다. 기업은 사물인터넷 기능을 넣는 게 필수지만 제품 구매 여부는 소비자의 선택이다.
최 원장은 “지금은 새로운 경계가 형성되는 대이동의 시대에 미래기회를 잡아 대담하게 승부수를 띄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람의 생각이 곧 미래”라며 앞으로는 “생각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최윤식 원장(44)은 미국의 권위 있는 미래학 정규 과정인 휴스턴대 미래학부에서 한국인 처음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피터 비숍과 크리스토퍼 존스, 웬디 슐츠 등 미래학의 대부들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피닉스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땄다. 철학과 경영학, 윤리학, 신학도 공부했다. 4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아시아와 한국을 대표하는 전문 미래학자로 주목받고 있다. ‘2030 대담한 미래 1·2’ ‘2030 기회의 대이동’ ‘부의 정석’ ‘생각이 미래다’ ‘그들과의 전쟁’ ‘10년 전쟁’ 등의 저서 다수가 있다.
현재 △아시아미래인재연구소 소장 △전경련 국제경영원 최고위과정(CIA) 주임교수 △세계전문미래학자협회(APF) 정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쌍둥이를 포함한 네 아들의 아빠다. 취미는 독서와 구기 운동. 요즘은 외부 일정이 많아 걷기로 운동을 대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