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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멍하게 있기를 누가 잘하는지 겨루는 대회가 인기다. 지난해 10월 27일 서울시청 앞 잔디밭에서 열린 ‘제1회 멍 때리기 대회’가 그 시초다. 서울 대회가 끝난 후 전국에서 대회 개최 요구가 밀려들었고, 인기가 중국까지 이어져 청두와 상하이에서 대회가 열렸다.
지금까지 멍하게 있는 것은 비생산적이라는 시각 때문에 다소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멍하게 있는 행동에서 세상을 바꾼 창의적인 아이디어들이 나온 때가 많다.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 아르키메데스는 헤론 왕으로부터 자신의 왕관이 정말 순금으로 만들어졌는지 조사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고민에 빠졌다. 그러다 머리를 식히기 위해 들어간 목욕탕에서 우연히 부력의 원리를 발견하곤 너무 기쁜 나머지 옷도 입지 않은 채 ‘유레카’라고 외치며 집으로 달려갔다.
뉴턴은 사과나무 밑에서 멍하니 있다가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알아냈다. 아인슈타인도 바이올린과 보트 타기를 하며 휴식을 즐겼으며, 비판 철학의 창시자 칸트는 산책을 좋아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금세기 최고의 경영인으로 불리는 잭 웰치도 GE 회장 시절 매일 1시간씩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는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보통 사람도 책상 앞에서 머리를 쥐어짤 때보다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멍하니 있을 때 불현듯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때가 많다. 실제로 미국의 발명 관련 연구기관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미국 성인의 약 20%는 자동차에서 가장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린다고 한다. 뉴스위크는 IQ를 쑥쑥 올리는 생활 속 실천 31가지 요령 중 하나로 ‘멍하게 지내라’를 꼽기도 했다.
멍하게 있기처럼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을 때 오히려 문제의 해답을 찾는 사례가 많은 것은 과연 과학적으로 근거가 있는 일일까. 미국 뇌과학자 마커스 라이클 박사는 지난 2001년 뇌영상 장비를 통해 사람이 아무런 인지 활동을 하지 않을 때 활성화되는 뇌의 특정 부위를 알아낸 후 논문으로 발표했다. 그 특정 부위는 생각에 골몰하면 오히려 활동이 줄어들기까지 했다.
라이클 박사는 뇌가 아무런 활동을 하지 않을 때 작동하는 이 특정 부위를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MN)라고 명명했다. DMN은 하루 일과 중 몽상을 즐기거나 잠을 잘 때 즉, 외부 자극이 없을 때 활발한 활동을 한다.
그 후 여러 연구를 통해 뇌가 정상적으로 활동하는 데 있어서도 DMN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는 자기의식이 분명치 않은 사람들의 경우 DMN이 정상적인 활동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뜻한다. 스위스 연구진은 알츠하이머병을 앓는 환자들에게서는 DMN 활동이 거의 없으며, 사춘기 청소년들도 DMN이 활발하지 못하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또 DMN이 활성화되면 창의성이 생겨나며 특정 수행 능력이 향상된다는 연구 결과도 잇달아 발표됐다. 일본 도호쿠대 연구팀은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을 이용해 아무 생각을 하지 않을 때 뇌 혈류 흐름이 활발해지고, 실험 참가자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신속하게 내는 과제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밝혔다. 미국 코넬대 연구팀도 멍하게 있을 때 집중력이 필요한 작업의 수행 능력이 떨어진다는 기존 인식을 뒤엎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끊임없이 뇌를 사용해 무언가 하기 바쁜 현대인에게 잠깐의 멍 때리기가 절실한 셈이다. 멍해 있는 것은 뇌에 휴식을 줄 뿐 아니라 자기의식을 다듬는 기회가 되며, 평소 미처 생각하지 못한 영감이나 문제 해결 능력을 주기 때문이다.
이성규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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