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의 정보통신부]<200>노준형 정통부 장관

“우리 정보통신이 한 단계 더 발전해 선진한국 건설을 이끄는 힘찬 동력이 되도록 모든 노력을 다 하겠습니다.”

2006년 3월 28일 오후 2시 정통부 14층 대회의실.

Photo Image
노준형 정보통신부 장관이 재임 1년 6개월 만인 2012년 8월 27일 오전 10시 이임식을 갖고 13년 몸담았던 정통부를 떠나며 직원들과 인사를 하고 있다.<전자신문DB>

노준형 정보통신부 장관(현 김앤장 고문)은 이날 취임식에서 참여정부 후반 정통부의 중점 추진 목표로 △통신서비스 시장 활성화 △통신·방송 융합 적극 대응 △IT산업의 균형적 발전 △안전하고 따뜻한 디지털세상 구현 △전파·방송 환경 획기적 개선 △우정서비스 품질 향상 등을 제시했다. 노 장관은 이어 “힘과 지혜를 모아 ‘정보통신 일등국가, 다이내믹 u코리아’를 만들어 나가자”고 당부했다.

노 장관은 이날 오전 10시 청와대에서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았다.

노 장관의 회고.

“이날 오전 열린 국무회의 시작 직전에 임명장을 받았습니다. 기념촬영하고 곧장 국무회의에 참석하는 바람에 노 대통령의 당부말씀은 없었습니다.”

신임 노 장관은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행시 21회로 공직에 발을 내디딘 뒤 경제기획원을 거쳐 1994년부터 정통부에서 일했다. 정통부에서 초고속통신망구축기획과장과 공보관, 전파방송관리국장, 정보통신정책국장, 기획관리실장, 차관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이날 오전 유영환 차관(현 한국투자증권 부회장)도 취임식을 갖고 공식 업무에 들어갔다.

노 장관은 3월 2일 경기도지사에 출마하기 위해 사표를 낸 진대제 전 장관(현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 회장)의 후임으로 내정됐다. 노 장관은 탁월한 업무능력에다 관운도 좋았다.

진대제 전 장관의 증언.

“당시 차관 인사를 앞두고 청와대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만났습니다. 노 대통령이 ‘누가 좋겠느냐’고 묻기에 ‘노준형 기획관리실장이 적임입니다’고 했더니 ‘그럼, 그렇게 하자’고 하셨습니다. 그런 줄 알고 출장을 갔다 오니 다른 부처 L모 씨가 차관으로 내정됐더군요. 이해찬 국무총리(현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에게 전화로 ‘이런 경우가 어디 있느냐’며 강력히 항의했습니다. 이 총리가 청와대 측과 다시 논의해 노 실장을 정통부 차관으로 교체했습니다.”

후임 장관 추천과 관련한 진 전 장관의 계속된 회고.

“노 대통령은 후임 장관으로 이종걸 열린우리당 국회의원(현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을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의원은 정통부의 ‘단말기 보조금 일몰’에 반대했습니다. 노 대통령이 ‘장관으로 생각했는데 안 되겠다’며 ‘누가 좋겠느냐’고 하셨습니다. ‘IT839 전략’을 계승해 수행할 적임자는 노 차관이라고 추천했습니다.”

노 장관 내정자는 3월 22일 오전 10시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 출석했다. 정통부 장관으로선 그가 첫 인사청문 대상이었다.

노 장관은 병역이나 탈세, 위장전입 등 이른바 도덕성, 준법성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 이날 청문회는 이해봉 과기정위원장(작고)의 개회선언과 노 장관 내정자의 선서, 모두(冒頭) 발언, 의원들과 질의답변 순으로 오후 4시까지 진행됐다.

노 장관의 말.

“의원들이 정책기조 변화에 대한 질의를 많이 하셨습니다. 그래서 ‘정통부 정책은 참여정부 로드맵에 따라 추진하는 것이므로 정책목표가 변하는 일은 없다. 다만 접근방식은 다를 것’이라고 답변했습니다.”

청문회에서 홍창선 열린우리당 의원(KAIST 총장 역임)은 “병역에 아무 문제가 없는 장관 내정자”라며 “청백리에 과속기록조차 없고 결단력이 있지만 너무 얌전해서 걱정”이라고 노 장관 내정자를 높이 평가했다.

노 장관의 청문회 준비는 송유종 혁신기획관(현 산업통상자원부 감사관)과 류제명 사무관(현 미래창조과학부 통신이용제도과장)이 했다.

그해 4월 7일 노 장관, 유 차관 등과 행시 21회 동기인 석호익 정책홍보관리실장(정보통신정책연구원장, KT 부회장 역임, 현 통일IT포럼 회장)과 이성옥 정보화기획실장(정보통신연구진흥원장 역임)은 명예퇴직했다.

정통부는 4월 12일 후속 1급 인사를 단행했다. 정통부는 정책홍보관리실장에 김동수 정보통신진흥국장(정통부 차관 역임)을, 정보화기획실장에 김원식 열린우리당 수석전문위원(현 애니통상 고문)을 승진, 내정했다.

그해 4월 18일.

정통부는 대대적인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기존 실·국·과 등 수직적 조직구조를 성과중심의 수평적 조직구조인 ‘본부-팀’제로 전환한 점이 특징이었다. 정통부 조직은 기존 2실 4국 6관에서 5본부 3단 4관으로 개편됐다.

정통부는 정보통신진흥국과 전파방송정책국을 ‘통신전파방송정책본부’ 및 ‘전파방송기획단’으로 개편했다. 또 정보통신정책국은 ‘정보통신정책본부’, 정보통신협력국은 ‘정보통신협력본부’로 변경했다. 특히 소프트웨어산업 육성 기능 강화를 위해 ‘소프트웨어진흥단’을 설치하고 정보보호 기능 강화를 위해 정보기반보호심의관을 ‘정보보호기획단’으로 변경했다.

정통부는 19일 조직개편에 따른 본부장과 단장 등에 대한 내정인사를 단행했다.

통신전파정책본부장은 유필계 국장(현 LG유플러스 부사장), 정보통신협력본부장은 노영규 국장(방송통신위원회 기획조정실장 역임, 현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 부회장), 통신전파방송본부장은 강대영 국장(현 SKT 고문)을 내정했다. 단장으로는 △정보보호기획단 서병조(현 미주개발은행 수석컨설턴트) △소프트웨어진흥단장 박재문(현 미래창조과학부 연구개발정책실장) △전파방송기획단장 신용섭(현 EBS사장)을 내정했다.

그해 7월 28일.

정통부는 이날 LG텔레콤에 할당됐던 2㎓ 대역 IMT2000 동기식 주파수를 회수했다고 발표했다. LG텔레콤은 2001년 8월 동기식 사업자로 선정됐지만 2003년 중 서비스를 시작하지 못하고 1회 연장을 요청, 2006년 6월 말로 연기한 바 있었다. 정통부는 7월 26일 LG텔레콤의 IMT2000 사업허가 취소에 따라 27일 정보통신정책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주파수 회수 처분 방침을 결정하고 LG텔레콤에 8월 7일 청문을 실시할 것을 통지했다. 그러나 LG텔레콤이 27일 청문을 포기하겠다는 문서를 제출하자 정통부는 이날 주파수를 회수했다. LG텔레콤은 원천기술을 보유한 퀄컴이 시장성이 없다는 이유로 동기식 기술 개발을 중단한데다 사업성도 불투명해져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라 남용 LG텔레콤 사장(LG전자 부회장 역임)은 대표이사 자리에서 물러났다.

2007년 4월 2일.

한미 자유무역협상(FTA)이 1년 이상의 긴 협상 끝에 극적으로 타결됐다.

노준형 장관은 이날 오후 5시 30분 정통부에서 “이번 한미 FTA 협상에서 우리는 IT 분야에서 지킬 것은 다 지켰다”고 발표했다.

한미 FTA IT 분야는 통신, 상품, 금융(우체국금융), 서비스(특급배달서비스), 지식재산권, 전자상거래 6개였다. 이 중 쟁점은 통신사업 외국인 지분 제한, 기술선택 자율성 부여, IPTV 서비스 규정 등이었다.

협상 결과 한미 양측은 기간통신사업자인 KT와 SK텔레콤에 대한 외국인 지분 제한 49%는 현행을 유지하기로 합의했다. 기술표준 정책과 관련, 미국 측은 ‘기술 선택의 자율성’ 보장을 요구했지만 협상 끝에 기술표준 정책은 현행 틀을 유지하기로 합의했다.

IT 분야 한미 협상 통신분과장은 남영숙 외교통상부 제2교섭관(현 이화여대 교수)과 안성일 정통부 통상협상팀장(현 산업통상자원부 통상정책과장)이 공동으로 맡았다.

미국변호사 자격증을 가진 김용수 장관 정책보좌관(현 미래창조과학부 정보통신방송정책실장)이 협상전략과 정책을 조율했다.

안성일 팀장의 말.

“양환정 당시 정통부 통신이용제도과장(현 제네바 국제전파통신회의 준비단장)은 통신서비스 협상에 참여했습니다. 미국 측은 ‘기술 선택의 자율성’ 보장을 줄기차게 요구했습니다. 이 문제는 FTA 협상 이전부터 미국 측이 제기했고 한미 간 통상 10위 안에 드는 주요 현안이었습니다. 협상에서 한국 측 주장대로 타결했는데 당시 협정문에 이 부분을 길게 언급했습니다. 미국에서 그런 사례가 없다고 합니다.”

권오규 당시 경제부총리(현 발벡코리아 회장)는 협상 타결 후 4일 언론사 부장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미 FTA 협상에서 공동 통신분과장인 남 교섭관과 안 팀장을 최고의 협상가로 극찬했다. 그만큼 IT 분야는 잃은 것은 없고 지킨 것만 있는 성공적인 협상이었다.

그해 7월 27일.

정통부는 인터넷 하루 평균 이용자가 30만명 이상인 인터넷게시판을 대상으로 ‘제한적 본인실명제’를 도입했다. 정통부는 2005년부터 인터넷상의 명예훼손이나 사생활 침해 등을 막기 위해 게시판 관리와 운영자가 게시판 이용자의 본인 여부를 확인하는 ‘제한적 본인확인제’ 도입을 추진해 왔다. 2006년 12월 22일 국회에서 이런 내용의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통과됐고, 2009년 1월 28일부터 하루 평균 방문자 10만명 이상인 인터넷사이트 등으로 대상이 확대됐다.

그러나 2012년 8월 23일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전원 일치로 이 제도가 표현의 자유와 기본권 제한의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도입 5년 만의 일이었다.

노준형 장관의 말.

“당시 인터넷게시판 댓글 수가 세계에서 한국이 가장 많았습니다. 그로 인한 피해도 많았습니다. 보수정부도 아닌 진보정부에서 실명제를 도입했는데 뒤에 위헌판결을 받았습니다.”

노 장관은 재임 중 IT839를 더 발전시킨 uIT839을 적극 추진했다.

장관 재임 1년 6개월 만인 그해 8월 27일 오전 10시 그는 이임식을 갖고 13년 몸담았던 정통부를 떠났다. 그는 이임사에서 극히 이례적으로 정통부에서 상사로 모셨던 두 사람에게 각별한 감사인사를 쏟아냈다. 그는 “오늘 이런 기회를 만들어 준 정홍식 차관과 고 천조운 국장께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한 사람은 지상에, 한 사람은 천상에 있지만 그가 늘 가슴에 품고 있던 말이었다. 노 전 장관은 퇴임 후 서울과학기술대 총장을 지냈다.

IT칼럼니스트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