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가 통합과학 교과서 국정화를 검토하면서 국정 교과서 논란이 과학계로 옮겨 붙었다. 교과서 획일화와 전문성 훼손 우려가 높지만, 자칫 한국사 국정 교과서를 둘러싼 첨예한 논쟁에 묻힐 수 있어 과학계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29일 과학계에 따르면 기초과학학회협의체와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등 주요 과학기술 단체는 과학 교과서 국정화에 따른 대응 방안을 검토 중이다. 국정 교과서가 시대 흐름에 역행한다는 목소리는 높지만 공식적인 입장은 나오지 않았다. 사회 과목 국정 교과서에 따른 논쟁이 뜨거워 자칫 과학계 목소리가 묻히거나 이용당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교육부는 지난 24일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 개정안’ 총론 주요사항을 발표하며 신설되는 통합과학, 통합사회 교과서의 국정화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검·인정 체제에서는 민간 기관이 교과용 도서를 집필하고 정부 승인을 받아 출판한다. 반면 국정 체제에서는 정부가 교과서 집필진과 내용 선정, 감수까지 모두 맡는다.
이 때문에 교과서 국정화가 확정되면 지난해부터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놓고 불붙은 논쟁이 과학계에도 재현될 우려가 높다. 교육계와 역사학계 일부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 움직임에 국가가 역사를 독점해 입맛에 맞는 내용만 가르치려 한다며 즉각 반발하고 있다.
통합과학 교과서 국정화 소식을 접한 과학계도 내부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민간 주도 검·인정 체제가 국가 주도 국정 체제로 바뀌면 민간 부문 전문 역량을 반영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과학 교과를 둘러싼 교육부 입김이 세지면서 과학계 전문가들의 입지도 상대적으로 약화될 수밖에 없다.
교육과정 개편에 반대했던 과학계 한 교수는 “국정화는 교과목에 대한 교육부의 독점적 권한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의지”라며 “국정 교과서 필진은 사범대 일색으로 채워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고교 수준의 과학 지식만 수십 년째 연구해온 집필진으로 최신 연구 동향을 반영하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과학계가 적극적으로 이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것은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둘러싼 첨예한 논쟁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과열된 논쟁에서 과학계 목소리가 소외되거나, 역으로 논쟁의 초점을 흐리는 데 이용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과학계 또 다른 교수는 “지난해 대입 제도 개편 때도 과학계 이슈를 잔뜩 벌여놓고 논점을 분산시킨 뒤 결국 한국사에서 정부 안을 관철한 적이 있다”며 “역사 교과서를 둘러싼 논쟁에 또다시 과학교육을 이용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고 말했다.
송준영기자 songj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