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모든 활동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게 쓰레기다. 생산·유통·소비로 이어지는 경제활동을 통해 쓰레기는 더욱 늘어난다. 1차적인 해결 방법은 쌓아두거나 묻는 것이다. 일명 매립이다. 문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천연자원과 에너지 대부분을 수입해서 쓰는 우리나라는 단위 면적당 폐기물 발생량이 OECD 4위다. 독일의 1.4배, 미국의 7배, 캐나다의 141배에 달한다.
소각하는 방법도 있지만 한계가 있다. 연소 가스 문제와 환경 오염을 해결해야 한다. 게다가 타고 남은 재는 여전히 매립할 수밖에 없다. 해법은 결국 재활용으로 폐기물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바로 ‘자원 순환’이다. 국내에서 사용하는 에너지원 중 단일 품목으로 가장 많은 폐기물을 배출하는 것 중 하나가 석탄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한국남동발전을 비롯한 발전 5사가 배출하는 석탄회는 820만톤에 달했다. 한해 사용하는 유연탄 양이 8000만톤이 넘기 때문이다. 게다가 발전소마다 회처리장 규모는 한정돼 있어 재활용이 시급하다.
◇석탄재도 자원이다
석탄회는 발전소에서 전력 생산을 위해 태우고 난 재다. 한 해 발생량이 많다보니 재활용 기술도 덩달아 개발됐다. 한국동서발전은 산학협력으로 ‘석탄회를 사용한 압출성형 콘크리트 패널’을 생산하는 데 국내 최초로 성공했다. 석탄회는 화학 물질에 대한 저항성이 높고 시간이 갈수록 단단해지는 특성이 있어 레미콘 혼화재, 시멘트 원료, 건축재, 산업재 등으로 활용돼왔다. 시멘트와 규사 분말의 배합비율을 70~80% 줄이는 대신 석탄회를 사용한 것이다. 지금까지는 시멘트, 규사 분말과 기타 첨가제를 주성분으로 하는 기존 콘크리트 패널을 제조했다.
품질은 동일하면서도 제조 원가가 약 30% 절감되고 무게를 20% 줄였다. 경량화된 콘크리트 패널로 재활용 자원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크게 향상시켰다는 평가다. 중소기업은 건축 내장재, 방음재 등 관련 분야에서 가격과 품질 경쟁력을 확보하는 동시에 발전소는 안정적으로 재활용 수요처를 갖게 됐다.
한국남동발전은 석탄회에서 소재 광물만 분리·추출해 재활용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세노스피어와 뮬라이트는 산업용 필러재로, 덜 탄 석탄은 연료로, 자철석은 제철·제강원료 등으로 다시 쓰는 것이다. 지난해 10월 영흥화력발전소에 연간 50만톤 생산규모의 설비를 착공해 내달 중 상업운전을 앞두고 있다. 남동발전 관계자는 “수도권 전력 소비량의 24%를 담당하는 영흥화력은 석탄 연소과정 중 필연적으로 발생되는 석탄회만 연간 110만톤에 이른다”며 “수도권 내 엄격한 환경규제와 저렴한 수입유연탄 사용으로 석탄회 재활용에 한계가 있어 발생량의 37%만 레미콘 혼화재로 재활용되고 나머지는 석탄회 매립장에 처분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해당 사업이 상용화되면 영흥화력의 석탄회 재활용률을 95%까지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남동발전 측은 보고 있다. 재활용 비중 증가로 석탄회 매립장 수명도 70년 동안 늘어나 발전설비의 안정 운영에도 기여할 전망이다.
이 외에도 20년간 가동 기준으로 수입 유연탄 680억원, 회처리장 신축비용 1200억원을 절감할 수 있다. 산업소재 수입 대체효과로 국가경제 발전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회사 측은 기대했다.
한국중부발전은 최근 석탄회를 이용한 인공 경량골재 제조기술을 국내 최초로 개발했다. 석탄 연소과정에서 가벼워 날리는 재 외에 바닥에 깔린 재를 잘개 부수고 성형하는 방식으로 인공 경량골재를 생산하는 것이다. 생산한 인공 경량골재는 압축강도, 휨강도 등이 경량골재 품질기준을 만족해 구조용 골재로 활용이 가능하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품질 면에서도 기존 외국에서 수입되는 천연 경량골재와 비교해 차이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중부발전은 이를 상용화하기 위해 석탄재를 이용한 인공 경량골재 사업을 계획 중이다. 폐자원의 재이용과 함께 인공 경량골재 국산화로 국내 산업발전에 기여한다는 구상이다.
◇온난화 주범인 이산화탄소도 재활용
이산화탄소는 온난화 주범으로 손꼽힌다. 해법은 적게 배출하거나 발생한 이산화탄소를 거둬들이는 것이다. 고효율과 CCS(이산화탄소 포집 및 저장)다. 한국남부발전은 이산화탄소를 단순히 포집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모은 이산화탄소를 다시 쓴다는 ‘CCR(이산화탄소 포집 및 재이용)’ 기술을 선보였다.
남부발전은 2011년 CCR에 대한 독자 상표권을 출원하고 이산화탄소를 미세조류 배양, 식물성장 촉진 등에 활용하고 있다. 남부발전은 이와 관련 지난 4월 하동화력발전소에 CCS 설비를 갖췄다. 미세조류 배양은 미세조류가 이산화탄소를 먹고 자란다는 점에 착안했다. 미세조류는 화장품이나 의약품, 바이오 오일 생산에 쓰인다. 남부발전은 기술 상용화를 위해 2011년 하동화력에 1만2000㎡ 규모의 국내 최대 규모 실증연구단지를 세우기도 했다.
남부발전은 이산화탄소로 농작물 광합성을 촉진시키는 기술도 도입해 하동화력 인근에서 운영 중이다. 광합성 촉진으로 딸기, 파프리카 등의 당도와 품질을 높이는 것은 물론이고 출하시기를 앞당겨 농가 수익을 3배 이상 증대시킨다고 남부발전 측은 설명했다.
남부발전은 건설 중인 삼척그린파워에 CCR 기술을 상용화하는 ‘이산화탄소 빌리지’를 조성하는 한편 ‘개방형 삼척 이산화탄소 R&D 센터’를 설립할 예정이다. 이상호 남부발전 사장은 “화석연료를 친환경적으로 계속 사용하기 위해서는 CCS와 CCR 기술이 가장 확실한 대안”이라며, “이산화탄소 재이용 기술을 다방면으로 개발 연구하면서 고부가가치 수익창출 기반을 만들고 일자리도 창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석탄재, 재활용 넘어 저탄소 인증까지
석탄을 태우고 남은 재가 저탄소 제품으로 인증 받는 시대가 왔다. 한국서부발전은 지난 4월 국내 최초로 발전소 부산물인 정제회와 탈황석고에 대해 탄소성적표지 ‘저탄소제품’ 인증을 취득했다.
인증 대상은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배출되는 석탄회를 정제한 것으로 레미콘 혼화제로 사용된다. 정제회는 ㎏당 탄소배출량이 13.80g으로 동종제품 평균인 63.70g에 비해 훨씬 낮다. 정제설비 노후 펌프를 교체하는 등 설비 개선과 함께 철저한 연소 관리로 탄소배출량을 낮추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탈황석고는 황산화물(SOx)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생산되는 부산물로 석고보드 원료로 판매된다. 석고 순도가 95% 이상으로 높고 품질이 우수한 게 특징이다. 같은 종류 제품의 ㎏당 평균 탄소배출량인 123.64g의 절반 수준인 62.88g에 불과해 저탄소 제품으로 인정받았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서부발전은 이 외에도 이산화탄소를 제거하기 위해 한국지질자원연구원과 국내 최초로 석고탄산화 기술 개발을 위한 실증에 들어갔다. 석탄 연소과정에서 나오는 황산화물을 제거하기 위해 이산화탄소와 암모니아를 반응시키는 것이다. 석회석과 황산암모늄이 생산되는 대신 이산화탄소가 제거되는 방식이다.
서부발전은 2017년까지 석고탄산화 플랜트를 설치해 실증을 완료하고 다른 발전사로 확대한다는 구상이다. 석고 1만톤급 실증플랜트를 설치하면 연간 약 3000톤의 이산화탄소 감축과 약 6000톤의 석회석, 황산암모늄 회수가 가능할 것으로 회사 측은 예상했다. 서부발전 관계자는 “품질 향상과 더불어 재활용률을 높여 온실가스 감축과 저탄소 소비문화 확산에 기여하기 위해 발전 부산물을 저탄소 제품으로 인증받도록 추진했다”며 “정제회는 태안화력발전소에서만 연간 90만톤, 탈황석고는 평택화력발전소에서 연간 10만톤을 각각 생산하고 있어 연간 재활용 수입만 113억원에 달한다”고 말했다. 서부발전은 발전소 자원 재활용을 위해 2013년 전사 자원순환마스터플랜을 수립하고 ‘서부발전 ERV 3.0(Eco Recycling Value)2’ 전략을 수립했다.
자원순환사회로 전환
오는 2017년부터 ‘자원순환 사회 전환촉진법’이 시행된다. 2013년 정부가 입법 예고한 자원 순환사회 전환촉진법 핵심은 매립부담금 제도다. 부담금제를 도입해 쓰레기 매립 비용을 재활용 비용보다 무겁게 만드는 것이다. 자체 매립장을 갖춘 업체도 포함된다.
법안을 도입한 이유는 국내 발전소에서 나온 석탄재는 매립하면서 일본 석탄재를 들여와 시멘트 원료로 재활용한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일본은 매립 비용이 비싸 상대적으로 저렴한 한국에 돈을 얹어 주고 처리를 맡기고 있다.
지금도 매립장에서는 수수료를 받지만, 폐기물을 처리해야 하는 업체 입장에서는 재활용보다 매립이 훨씬 저렴하다. 매립 과정에 부담금을 부과한다는 정부의 취지는 독일처럼 매립을 금지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경제적 부담을 통해 재활용을 유도하자는 것이다. 독일은 매립 자체를 법으로 금지하고 매립지를 더 이상 운영하지 않겠다는 엄격한 목표를 세웠다.
업계는 비용 부담이 가중될 수도 있다며 난색을 표한다. 폐기물 배출량이 많은 18개 업종 약 1500여개소가 적용 대상이다. 순환자원 사용 확대는 업계 특성을 고려해 제철, 제지와 같은 일부 업종에만 해당된다. 구체적인 대상 사업장은 하위법령 제정시 민관 협의체에서 논의할 계획이라고 정부 측은 설명했다.
업계 관심인 처분 부담금 규모는 규제 총량제, 업계와의 협의, 외국 사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내용을 갖고 기획재정부 차관이 위원장인 부담금운용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합리적으로 산정한다는 계획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대량생산-대량소비-대량폐기의 사회경제 시스템으로는 환경·자원·에너지 위기를 극복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며 “우리나라는 경제적 유인체계인 처분 부담금을 도입해 점진적으로 매립 제로화를 달성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창선기자 yuda@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