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공학연구소가 빨리 없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석현광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의공학연구소 생체재료연구단장은 자신이 속한 조직이 빨리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연구소가 얼른 제 역할을 다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갔으면 좋겠다는 얘기다. 그는 국가연구소 연구원일수록 변화와 혁신을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공학연구소가 없어져야 한다는 말도 같은 맥락이다. 조직이 역할을 다했으면 해체하고 새로운 영역을 찾아야 한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이런 생각은 그의 이력에서도 드러난다. 석 단장의 원래 전공은 금속재료공학이다. 1999년 KIST에 들어와 처음 연구했던 분야도 자동차 산업용 경량소재다. 이후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용 나노소재를 연구했다. 지금은 생체재료를 연구하는 바이오기술(BT) 연구자다. 때가 되면 자신이 잘하던 분야를 버리고 생소한 분야로 넘어가는 과정을 반복해온 셈이다.
그렇다고 전문성이나 실력이 없는 것도 아니다. 석 단장이 개발해 임상시험 중인 ‘몸에서 녹는 금속재료’는 올 연말 상용화가 예상된다. 골절 수술 시 부러진 뼈를 고정하는 핀으로 쓰면 2차 수술을 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은 인공 암조직, 인공 신체조직을 만들어 신약 개발 시 동물실험을 대체하는 기술을 연구 중이다.
석 단장에게도 도전은 쉽지 않았다. 그는 “누구에게나 생소한 분야를 개척하는 것은 두려운 일”이라며 “거기서 용기를 내지 못하면 한 분야에 정체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에게 용기를 준건 국가연구소, 특히 종합연구소 연구원으로서의 소명의식이었다. 그는 “KIST 같은 국가연구소 연구원은 자신이 잘하는, 자신이 하고 싶은 연구보다 국가가 필요한 연구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석 단장은 “기업이 할 수 있는 연구는 굳이 국가가 나설 필요가 없다”며 “국가연구소는 남들이 하지 않는 새로운 영역을 끊임없이 발굴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래가 불투명한 영역에 뛰어들어 기술을 개발하고 그 기술이 시장에서 대중화되면 다시 새로운 영역을 찾아나서는 게 그가 생각하는 국가연구소 모델이다. 지금은 KIST 의공학연구소가 활발하게 BT 연구를 하고 있지만, 민간 역량이 성장하면 다른 영역을 찾아 흩어져야 한다는 얘기다.
도전을 가로막는 환경에는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는 “연구자가 논문, 특허, 기술료로만 평가받으면 자신이 잘하는 분야에 머무르게 된다”며 “기술료와 상관없이 새로운 영역을 개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새로운 도전을 BT에서 시작한 이유도 석 단장답다. 그는 “지금 제일 큰 문제가 아무리 투자를 해도 고용 창출이 안 되는 것”이라며 “바이오는 사람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일자리를 많이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새로운 기술과 산업으로 일자리를 만드는 게 국가가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나라’로만 향한 것처럼 보였던 그의 열정은 결국 ‘사람’을 향해 있었다.
송준영기자 songj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