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핫이슈]더워진 바다, 위험한 해변

암초에 붙은 주먹만한 놈이 꿈틀댄다. 작은 크기지만 쉽게 눈에 띄는 건 신비한 푸른 빛 때문이다. 생명체의 정체는 문어지만 일반적인 문어와 모습이 판이하다. 몸통과 다리 곳곳에 푸른 줄무늬가 있다. 색깔과 형태가 아름다워 눈길을 끈다. 아열대성 문어인 파란고리문어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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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적인 겉모습에 이끌려 맨손으로 만졌다간 큰일 난다. 복어류에서 발견되는 테트로도톡신 맹독을 품었기 때문이다. 1㎎만으로도 사망에 이를 만큼 치명적인 독이다. 그보다 적은 양에 노출되더라도 신체 마비, 구토, 호흡 곤란 등을 겪는다. 몸 표면의 점액과 먹물에도 독을 함유하고 있는 ‘독 덩어리’다. 피부에 닿아 증상이 나타나면 즉각 심폐소생술을 실시하고 병원에 후송해야 한다.

원래 아열대 종인 파란고리문어가 수 년 전부터 우리나라에도 출몰하고 있다. 2012년 제주 북동 해역에서 처음 나타났고, 지난달 30일 제주 애월읍 인근 수심 5m 암초에서 또 발견됐다. 제주에서 활동하는 잠수사들에게 종종 모습을 드러냈는데, 최근에는 동해안 왕돌초까지 서식 범위를 넓힌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인명 피해 사례가 없지만 호주 등지에선 사망 피해가 보고되기도 했다.

당장 해수욕 철이 다가옴에 따라 안전 문제에 비상이 걸렸다. 파란고리문어는 암초와 해조류가 뒤섞인 얕은 바다에 서식한다. 해변과 가까운 곳에 나타나 피서객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 게다가 겉모습이 아름다워 호기심을 자극하기 때문에 더욱 주의가 요구된다.

국립수산과학원(원장 정영훈)은 제주도 내 해수욕장 개장에 맞춰 파란고리문어 위험성을 알리는 포스터를 해수욕장과 각급 학교, 어촌계에 배포할 계획이다.

고준철 수산과학원 아열대수산연구센터 박사는 “해안가에서 화려한 형태나 색상을 가진 물고기, 해파리, 문어류는 절대 맨손으로 만지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파란고리문어 출현은 기후 변화 때문이다. 제주 연안 수온은 연 평균 20℃로, 30년 전보다 1.5~2℃ 상승했다. 특히 겨울 수온이 많이 오르면서 아열대성 어종이 살기 좋아졌다. 아열대성 어종 비율은 수산과학원이 조사를 시작한 2011년 48%에서 지난해 51%까지 늘었다. 절반 이상 어종이 아열대성으로, 해양 생태계 자체가 바뀐 셈이다. 파란고리문어도 이들을 따라 우리나라에 상륙했다.

호주나 오키나와 등 열대 지방에 서식하던 경산호류도 발견되고 있다. 제주 연안 어장은 남해 쪽으로 북상해 고등어나 참다랑어가 남해안에서 잡히기도 한다. 반대로 한류성 어종은 어획량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대표적인 한류성 어종 명태는 연간 어획량이 1998년 5438톤, 1999년 1329톤, 2000년 977톤 등으로 급감했고, 2007년 이후로는 1톤을 밑돌고 있다. 수온이 올라가고 해양 생태계가 바뀜에 따라 우리나라 어장 지도 자체가 새로 그려진 셈이다.

우리나라는 온난화가 특히 빠른 지역이다. 1912년부터 2008년까지 100여 년 간 6개 관측 지점의 평균기온은 1.7℃ 상승했다. 지구 전체 평균의 두 배에 해당하는 상승 폭이다. 원래 기온이 높았던 제주 등 남부 연안 생태계는 아열대성으로 바뀔 수밖에 없다. 문제는 아열대 어종 중 알려지지 않은 위험한 생명체들이 많다는 점이다.

고 박사는 “정확히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열대 어종은 독소를 포함한 비율이 더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며 “알려진 어종들도 개체 수가 늘어나고 있어 이들이 우리나라에 정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수온이 계속 상승하면 아열대 어종의 유입은 더 가속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표적인 불청객이 해파리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15~20종가량의 해파리가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중 독성을 가진 종은 절반 정도다. 아열대성 해파리도 50% 이상의 종에서 독성이 발견된다. 수온이 높아지면 종과 상관없이 해파리 개체 수가 증가해 여름철 피해가 우려된다.

2007년부터 한반도 인근에서 개체 수가 급증한 노무라입깃 해파리도 골칫거리다. 동중국해에서 발견된 뒤 한반도 연안 수온이 상승하고 대만 난류가 유입되면서 2009년부터는 서해, 남해, 동해 등 모든 바다에서 발견된다. 수분을 포함한 한 마리 최대 무게가 200㎏에 달하는 대형 해파리로, 어망을 찢거나 물고기를 폐사시키는 등 피해를 입힌다.

사람 피부에 닿으면 심한 통증을 유발하고 붉은 반점을 동반하는 채찍 모양 상처가 난다. 일시적인 근육 마비가 오기 때문에 바다 속에서 쏘이면 익사할 위험도 있다. 쏘인 즉시 피부를 바닷물에 씻으면서 독성 침을 제거해야 한다. 상처 부위는 차갑게 할수록 좋다. 독을 씻어낸 뒤에도 독소 제거 로션 등을 발라 2차 피해를 예방해야 한다.

어장이 아열대성으로 바뀌면 상어 출현이 잦아질 가능성도 있다. 아열대성 어종을 먹이로 하는 기존에 볼 수 없던 신종 상어들이 유입될 수 있다.

고 박사는 “지금도 제주도 인근에 방어 어장이 형성될 때면 이를 먹이로 삼는 온대성 상어가 종종 나타난다”며 “호주 쪽에 사는 아열대성 상어들이 다른 어종을 따라 우리나라 쪽으로 올라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송준영기자 songjy@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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