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비리 온상 오명` 기상청, 해법은 없나

기상청을 향한 따가운 시선이 계속되고 있다. 과거 날씨 오보로 눈총을 받았던 기상청이 지금은 장비 납품비리, 압력행사 등 불미스런 일들도 구설수에 올랐다. 감사원이 기상청 불법 하도급 비리를 공식적으로 발표하면서 그동안 산업계가 주장했던 소문이 사실로 드러났다. 기상청의 권위와 신뢰가 추락한 상황, 많은 기상사업자도 등을 돌린 지 오래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지금이라도 기상청이 변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기상청과 산하기관이 본연의 업무에 집중해 기상업계를 육성하고 함께 수출시장 개척에 힘써줘야 한다는 게 업계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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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납품 비리

19일 감사원이 발표한 ‘공직비리 기동점검’ 결과 발표는 사실상 기상청의 업무 부당처리를 지적하기 위한 취지가 강했다. 총 13건의 지적에서 기상청은 절반이 넘는 7건의 지적을 받았다. 부품교체사업 부당 추진에서 장비준공검사 부당 지시, 승진임용 업무 부당처리 등 사례도 다양하다. 산하기관인 한국기상산업진흥원에 대한 평가도 좋지 않다. 기상산업진흥원은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최하등급인 E등급을 받았고 기관장 해임건의 대상에 올랐다. 기상청 문제가 정부차원에서 지적되고 있는 셈이다.

기상청에 대한 구설수 중 장비 납품 비리는 빼놓을 수 없는 이슈다. 기상청 납품비리 문제는 지난 정권에서부터 시작됐다. 2007년 윈드프로파일러와 라디오존데를 둘러싼 납품비리 의혹이 대외적으로 알려진 첫 사례다. 초기에는 장비사업자가 성능이 확인되지 않은 시제품을 납품해 기상 오보율이 증가했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2008년 검찰 수사결과 부실 기상장비 납품 의혹을 받은 사업자는 무혐의 처분을 받았고, 기상청 일부 직원이 장비를 도입하고 유지보수하는 과정에서 다른 기상사업자로부터 뇌물과 향응을 제공받은 혐의로 일부 업체 대표가 구속되는 일이 벌어졌다.

이 사건은 기상산업진흥원이 생기게 된 배경으로 작용했다. 당시 전병성 기상청장은 기상장비 비리 근절을 위한 대책으로 일부 기상장비 도입사업과 유지보수 업무를 기상산업진흥원이 맡도록 했다. 장비 납품 업무를 분리해 투명성을 확보하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이번 감사원의 결과를 보면 납품 관련 잡음은 지금도 끊이지 않고 있는 셈이다.

기상산업진흥원과 케이웨더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장비납품 대금청구 소송은 대표적인 잡음 중 하나다. 1차 공판은 케이웨더가 승소했지만 기상청이 항소를 진행하면서 갈등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케이웨더는 기상장비 설치공사를 마무리했지만 장비 성능기준 미달 등을 이유로 대금을 지급받지 못하고 있다. 이 사업은 입찰 당시부터 홍역을 치렀다. 입찰단계에서 장비 성능시험의 적합성 시비가 제기됐고 전 기상청장과 케이웨더의 유착관계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다. 국회에서는 케이웨더의 경쟁사업자와 기상청 일부 직원이 장비 가격을 부풀려 입찰단계에서 부정자금을 조성하려다 무산되자 케이웨더의 사업을 조직적으로 방해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법원은 이 사건과 관련해 1차 공판에서 기상장비 설치와 시운전이 기준에 맞게 진행됐고, 수요처인 항공기상청이 요청서에 없는 새로운 조건을 포함했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동안 항공기상청이 제기했던 오작동 사례도 일방적인 점검이었다는 점을 지적하며 케이웨더의 손을 들어줬다.

◇투서문화·주먹구구 관행 개선해야

“기상청은 투서가 가장 많은 기관 중 하나입니다. 옆에서 보고 있으면 조직 내에서 상호 비방과 고발이 심할 정도로 많습니다. 결코 바람직한 모습은 아닙니다.” 환경부 고위관계자의 말이다. 주무부처인 환경부도 기상청과 관련 기업을 둘러싼 끊이지 않는 투서에 난감하다는 표정이다. 기상청 내부와 업계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투서문화를 문제의 발단으로 보고 있다.

기상장비 납품 비리 문제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사업자가 선정된 이후에도 선정과정에 대한 의혹제기, 내부 관계자들의 유착관계 등 문제제기에 허위보고와 투서 등이 이용된다는 점이다.

감사원에서 지적된 인천공항 기상레이더 부품교체 사업도 허위보고 사례 중 하나다. 담당과장은 부품교체 사업을 추진할 필요가 없었음에도 “주요부품이 단종되고, 낙뢰 피해로 예비품마저 소진돼 부품교체가 매우 시급하다”는 허위문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다른 사업에 배정되어 있던 예산을 전용해 부품교체 사업과 전면교체 사업을 동시 추진했다.

얼마 전 검찰 압수수색을 받았던 평창 동계올림픽 스마트 기상지원 사업은 시험 인증기관에 압력을 행사한 사례다. 기상청 직원은 장비 심사 기관인 기상산업진흥원이 미검정 통합센서에 대해 출장점검을 거부하자 “무조건 성능확인을 하라”는 압력을 행사해 성능확인 자료를 제출 받았다. 하지만 이 통합센서는 이번 감사에서 모든 검정기준에서 미달됐다.

인사이동 관련 허위 증언으로 1순위 승진 후보자가 탈락하는 일도 있었다. 기상청 직원 A씨는 1순위 승진대상자에 대해 개인적인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허위사실을 승진심사위원들에게 주장했고, 하급자는 이 얘기를 마치 승진심사위원 중 한명이 발언한 것처럼 회의록을 작성했다.

기상산업진흥원과 해임통보 관련해서 소송을 벌이고 있는 A 본부장도 유사한 사례다. 기상청 내부에서 A 본부장의 인사청탁 의혹 투서가 상급기관에 들어가면서 A 본부장은 해임통보를 받았다. 투서가 빌미가 됐지만 상급기관에서 인사청탁 관련 의혹이 있으니 해임해야 한다는 게 이유였다. A 본부장은 실제 인사청탁 여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의혹만으로 해임이 된 셈이다. 이에 A 본부장은 기상산업진흥원을 대상으로 소송을 걸었고 1차 공판에서 승소했다. 또 A 본부장의 해임을 통보했다는 상급기관의 공문은 재판과정에서 제시되지 않았다.

투서와 허위보고 문화는 산업계가 기상청을 신뢰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다. 장비 납품과 인사 등 주요 업무에서 그들이 원하는 대로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무리수를 둔다는 시각이다. A 본부장은 “우리사회가 공무원에 대해 가지고 있는 신뢰감은 상당하지만, 일부 공무원은 이 신뢰를 악용하고 있다”며 “관피아 문제가 해결되기 위해서는 허위보고와 사태를 덮어두려는 관행부터 척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쟁자가 되어버린 기상업계

기상청과 기상산업진흥원은 정확한 기상예보와 함께 관련 산업 육성의 임무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모습은 조력자보다는 경쟁자로서의 이미지가 강하다. 기상청은 기상예보서비스 영역에서 기상산업진흥원은 장비 유지보수에서 기상사업자들과 경쟁을 벌이고 있다. 기상사업자들은 민간이 해야 될 부문까지 기관이 도맡으면서 사업 운신의 폭이 좁아지고 있다고 말한다.

기상산업진흥원의 주요 업무가 된 장비 유지보수도 사업자들의 불만 중 하나다. 기상업계는 사업자들이 수행하던 유지보수를 진흥원이 가져가는 것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정작 장비를 가장 잘 아는 곳은 이를 제작하고 구축한 사업자인 만큼 진흥원이 해당 장비 유지보수를 수행하는 게 비효율적이라는 설명이다. 사업자 유지보수에는 예산을 적게 책정하다 관련 업무가 진흥원으로 넘어오면 예산을 증액하는 것에 대해서도 시선이 곱지 않다.

연구개발 사업은 이미 관심을 꺼둔 지 오래다. 대부분의 연구개발이 장비 국산화보다는 기상학적 연구에 소진되고 있다. 여기에 과제가 이미 선정되어 있는 지정공모과제에 예산 다수가 편성돼 기상사업자들이 일반공모과제를 제안하기 어려운 구조다. 케이웨더 등 기상청과 갈등을 빚고 있는 기상사업자의 경우는 연구과제에 모두 탈락했다.

얼마 전 진행된 공공데이터 활용 15대 전략분야 예비 유망기업 선정은 기상업계에 대한 기상청의 무관심을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정부 3.0 유망기업을 꼽는 작업에서 기상청은 기상정보서비스 대표 기업인 케이웨더, 웨더아이, GBM 등을 추천하지 않았다. 특허청의 윕스, 식약처의 비트컴퓨터, 해양수산부의 YTN DMB 등 다른 부처들이 각 분야별 대표업체를 추천한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기상업계 관계자는 “업계는 기상청과 기상산업진흥원이 본연의 업무에 충실해야 한다”며 “다른 부처 기관과 달리 시장 확대와 수출시장 개척보다 업계와 경쟁을 펼치는 모습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늦어지는 기상청 쇄신작업

깊어질 대로 깊어진 갈등의 골이지만 산업계는 지금의 문제가 생각보다 쉽게 해결될 수 있다고 말한다. 바로 기상청의 쇄신작업이다. 현 고윤화 기상청장도 부임 당시 역점 사업이 내부 혁신 작업이었던 만큼 그동안 문제됐던 것들을 도려내고 새롭게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말한다. 내부고발, 장비 납품비리 등 대부분의 문제가 이미 공개된 상황인 만큼 지금에 와서 이에 대해 양심선언하고 척결한다 해서 비난받을 이유가 없다는 해석이다.

문제는 관련 작업이 너무 늦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기상청은 지난해 12월 창조개혁기획단을 출범시키면서 대대적인 쇄신을 예고했지만 반년이 지나도록 결과물을 내지 못하고 있다. 4개월 한시 조직이었던 기획단은 흐지부지 됐고, 실제 쇄신의 결과물이 있는지 여부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기상청은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는 입장이다. 안행부와 조직개편 협의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업계는 이유가 안 된다는 반응이다. 그 어떤 조직도 조직개편 작업이 반년을 넘지 않고, 쇄신에 의지가 있었다면 문제가 있는 직원을 먼저 징계조치하고 개편 작업을 하는 것이 수순이라는 의견이다.

오히려 업계는 기상청이 예전으로 다시 돌아가고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얼마 전 기상산업진흥원이 비 기상청 인사를 지방으로 내려 보내고 장비구매 관련 조직을 기상청 인사로 포진시킨 것부터 불안요소다. 특히 이번 감사원 납품비리 포착으로 과거 나쁜 관행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심지어는 기상청이 조직개편 타당성 연구에 쏟아 부은 1억7000여만원 비용의 실제 집행여부도 의혹을 받고 있다.

기상업계는 정부 차원에서 관피아를 언급하며 각 기관에 쇄신을 요구하는 지금이 기상청이 변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이자 마지막 기회로 보고 있다. 한 기상장비사업자는 “기상청이 업계를 경쟁자로 보듯 많은 기상업자들도 기상청에 등을 돌렸다”며 “기상청이 쇄신의 노력을 보이지 않으면 지금의 업계와 갈등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정형기자 jeni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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