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내년부터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 시행을 앞두고 반도체·디스플레이·철강·석유화학 등 주력 산업계가 업종별 할당량 산정 기준이 불합리하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직전 3년간 평균 배출량을 기준으로 삼는 탓에 성장률이 증가하는 업종과 감소하는 업종 간 배출권이 형평성을 잃었기 때문이다.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를 놓고 적지 않은 진통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대표 산업인 반도체·디스플레이·철강·석유화학 업종은 최근 협회를 중심으로 업계 의견을 수렴한 결과 업종별 배출권 할당량 산정 기준에 높은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고성장 산업인 전자 업종이 불만을 강력하게 제기하고 있다.
탄소배출권 거래제는 탄소배출량 감축 할당 목표를 세워놓고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그만큼 탄소배출권을 사야 하는 제도다. 이달 초 환경부에서 계획안을 발표하자마자 산업계가 반발했다. 현실 여건을 무시한 채 기업에 과도한 온실가스 감축부담을 준다는 게 주된 지적이었다. 주력 산업계는 형평성 문제가 더욱 심각한 모순을 야기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정부는 국가 온실가스 배출전망치(BAU)에 업종별 온실가스 배출비중 및 감축률을 반영해 해당 업종별 배출권 할당량을 산정한다. 여기서 업종별 온실가스 배출비중은 지난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최근 3년간 평균 국가 배출량 중 업종 배출량을 나타낸다.
예를 들어 연평균 5%대로 고성장하는 A업종과 반대로 연평균 -5% 성장률을 기록하는 B 업종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성장률과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율이 유지되면 두 업종의 3년간 온실가스 배출량 평균은 같다. 하지만 이를 기준으로 똑같은 할당량을 받게 되면 성장률이 높은 A업종은 10% 감축 노력을 지속적으로 하더라도 배출권이 부족하게 되고, 성장률이 감소하는 B업종은 감축 활동을 전혀 하지 않아도 배출권이 30% 이상 남아돌게 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성장률이 적은 업종은 온실가스 절감 노력을 하지 않아도 돈을 벌고, 성장률 높은 업계는 자구 노력을 강구해도 부담이 많은 구조”라며 “애초 정부의 배출권 할당 방식은 업종에 따라 형평성에 치명적인 오점이 있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불합리한 산정 기준과 과도한 감축량 요구로 자칫 힘겹게 쌓아올린 산업 경쟁력을 한순간에 약화시킬 수 있다”며 “온실가스 감축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산업계와 충분한 협의를 통해 현실성 있는 할당 계획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온실가스배출권 할당량 산정 기준에 따른 고·저성장 업종간 차이 *가정:최근 3년간 업종 배출비중은 동일, 감축률은 미반영.>
성현희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