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1=0’.
전력거래소 표어다. 1년 365일 다 잘해도 한 번 실수하면 끝이라는 얘기다. 정전사태 재발은 없다는 각오이기도 하다. 전력거래소는 쉽게 말해 국가 전력수요와 공급을 총괄하는 곳이다. 한 번의 실수로 야기되는 대가가 너무 크다. 한 순간의 방심도 허용되지 않는다. 특히 중앙전력관제센터는 국가 전체 전력망을 감시하는 만큼 단 1초도 쉴 수 없다. 위치나 규모는 달라졌지만 6·25 전쟁 때도 여전히 가동됐다. 관제센터가 멈추면 국가 비상사태다. 우리나라 전기 도입 이후 단 한 번도 불이 꺼진 적이 없는 전력거래소의 24시간을 들여다봤다.
AM 07:00
남들은 출근 준비를 하고 있을 무렵이지만 전력거래소 직원들은 대부분 출근을 끝냈다. 출근 후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전력공급과 수요사항 확인이다. 지난 밤 발전기 고장 유무와 이로 인한 발전량과 예비력 상황을 확인한다. 핵심인 중앙전력관제센터는 출·퇴근 개념이 없다. 관제사들만 교대할 뿐 모든 시스템은 1년 내내 단 한 번도 꺼진 적이 없다. 이날도 여전히 관제부장을 비롯한 6명의 관제사들은 전면 대형 전광판과 자신 앞에 놓인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AM 07:50
750회의. 2011년 남호기 이사장이 취임하면서 생겼다. 아침 7시 50분이면 남 이사장 주도로 3명의 본부장, 10명의 처·실장이 5층 전력관제센터 내에 있는 소위 ‘워룸(War room)’에 모인다. 오늘 하루 전국 전력수요와 공급이 이 자리에서 결정되는 것이다. 나머지 직원들은 당연히 대기상태다.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다. 회의는 관제부장의 전날 전력계통 운영현황 보고로 시작한다. 이어 오늘과 앞으로 10일 동안의 기상전망을 놓고 수요예측을 점검한다. 날씨가 더워질수록 수요예측과 전력공급예비력에 대한 논의는 길어진다. 둘 중 하나만 놓쳐도 정전이라는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에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AM 08:30
중앙관제센터 내 근무자 교대시간이다. 4조 2교대다. 관제부장 1명과 발전담당 2명, 송전담당 2명, 계통해석 담당 1명 등 총 6명이다. 지난 밤 15시간 근무를 마친 직원들과 자리를 바꾼다. 이날 담당은 이우용 관제부장이다. 이 부장은 센터가 한 눈에 들어오는 맨 뒤 중앙에 앉는다. 황 부장 오른 쪽 앞으로는 발전담당 차장과 직원이 자리한다. 전국 356기 발전소를 총괄하는 역할이다. 송전담당 차장과 직원 자리는 중앙이다. 전국 3만㎞가 넘는 송전망을 맡는다. 계통해석 담당은 왼쪽이다. 실시간 송전운영을 해석하고 고장이 났을 경우를 대비해 대책을 마련한다.
AM 09:00
전국 사무실과 공장 업무시간 시작이다. 새벽 5시부터 늘어나기 시작한 전력 사용량이 상승 추세다. 벌써 6380만㎾다. 전면 상황판에는 오늘 전력공급량과 예비력, 수요가 표시된다. 오늘 전력공급량은 7407만㎾로 최대 수요는 6750㎾로 예상한다. 더운 날씨로 전날보다 93만㎾ 가까이 늘었다. 예비력은 657만㎾로 9.7%다. 예비력이 500만㎾ 이하로 떨어질 때부터 비상단계라 아직은 여유가 있다. 센터 내 직원이 최전방 근무자라면 지원업무는 수급운영팀·송전운영팀·관제훈련팀 등 3개 팀이 나눠 맡는다. 수급운영팀은 발전기가 최적으로 운전할 수 있도록 일일 발전소 운영계획을 수립한다. 송전운영팀은 송변전설비 휴전을 검토하고 전력계통 운영방안을 마련해 송전망 최적 운영을 책임진다. 관제훈련팀은 교대 근무자인 관제사들의 교육계획 수립과 훈련 등을 전담한다.
PM 12:00
점심시간이다. 공장 가동이 잠시 멈추고 사무실 전등과 에어컨도 꺼진다. 전력수요가 숨고르기를 하는 시간이다. 오늘은 전력수요량이 여유가 있어 센터 내 관제사들도 구내식당을 이용한다. 물론 발전기와 송전담당은 교대로 식사해야 한다. 둘이 함께 자리를 비우는 경우는 없다. 무더위가 본격 시작되면 김밥으로 끼니를 때우는 일이 잦다. 점심시간에도 시시각각 바뀌는 기온과 전력수요 그래프를 번갈아 검토하고 전력피크 시간인 오후 2시 이후를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PM 03:00
중앙관제센터 관제사 움직임이 바빠졌다. 오늘 전력피크 시간대가 오후 2시~3시인 까닭이다. 오늘 최대 예상수요는 6750만㎾다. 예비력이 10% 가까이 되지만 안심할 수는 없다. 전력수요가 늘어나면 가장 먼저 대응 속도가 가장 빠른 양수발전소 가동을 지시한다. 양수발전은 밤 사이 하부저수지에 있는 물을 상부로 끌어올렸다가 전력피크 때 물을 다시 내리면서 전기를 생산하다. 수문을 열기만 하면 되기에 2~3분이면 필요한 만큼 전력을 충당할 수 있다. 부족한 전력은 출력을 낮춰 운전하던 화력발전소 출력을 최대로 높이고 액화천연가스(LNG)나 중유발전소를 돌려 메운다. 이와 함께 전력거래소 수요예측실은 기상청의 기상전망 자료를 기반으로 내일 전력수요를 예측한다. 예측을 실제 수요보다 낮게 잡으면 자칫 정전으로 이어질 수 있고 너무 높으면 필요 이상의 발전소가 가동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하기에 손실이 크다. 수요예측실의 오차율은 1%대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PM 05:30
해가 넘어가면서 전력수요도 안정됐다. 긴장감이 감돌던 관제센터도 여유를 찾았다. 야간 근무조에 오늘 하루 있었던 상황을 넘겨줘야 한다. 수급상황과 발전기 운영상황, 송전망 휴전이나 고장 상황 등 분야별로 담당자에게 인수하고 회의실로 모인다. 이때는 지원팀 인력도 모두 배석한다. 회의가 끝났다고 퇴근할 수 없다. 지원팀 인력은 수요예측 자료와 발전기, 송전망 운영상황을 토대로 내일 발전계획을 세워야 한다. 수립한 계획은 김우선 전력관제센터장 결제 후 야간 근무조에 전달된다. 야간근무조는 발전계획과 송전망 휴전, 발전기 고장 등의 정보를 참고한다. 근무는 내일 아침 8시 30분까지 이어진다.
유창선기자 yuda@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