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이재용의 경영능력에 의구심을 제기하는 일본 언론

일본 언론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바라보는 관심은 각별하다. 세계 유력 기업인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이 부회장 관련 기사가 자주 나온다. 전자 왕국 일본을 침몰시킨 기업의 유력한 후계자라는 점에서 당연한 결과다. 이 부회장은 게이오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인연도 있다. 이 부회장을 높이 평가하는 일본 언론도 있지만 경영능력에 의구심을 제기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그 가운데 일본을 넘어 세계 3대 경제지로 평가 받는 니혼게이자이는 철저한 취재로 이 부회장을 검증했다. 특히 지난해 9월 ‘삼성 프린스의 오산…일본은 어렵다’는 제하의 기사는 샤프와의 합작법인 설립 무산을 이 부회장 탓으로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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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은 감 전략으로 샤프 복사기 사업을 넘본 삼성

니혼게이자이에 따르면 지난해 7월 5일 이재용 부회장은 도쿄 중심 가스미가세키에 있는 경제산업성을 방문했다. 방일 목적은 샤프와 협의 중인 복사기 합작법인 설립을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이 부회장 입장에서는 1년 가까이 공을 들인 비밀 프로젝트 성사를 눈앞에 둔 마지막 통과의례였다.

삼성이 샤프 복사기 사업에 눈독을 들인 것은 “10년 뒤 지금의 주력 사업이 하나도 남지 않을 수 있다”는 이건희 회장의 말 때문이다.

삼성은 새로운 수익원 발굴에 나섰고 안정적인 매출이 가능한 B2B 시장에서 기회를 엿봤다. 그 가운데 복사기 사업에서 가능성을 발견한 삼성은 경영난에 허덕이는 샤프를 타깃으로 정했다.

삼성은 신중하고 치밀했다. 곧바로 복사기 합작을 제안하지 않고 자금 지원과 LCD 패널 구입이라는 사전 포석을 깔았다. 당시 샤프는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빠져 있었다.

이 부회장은 2012년 12월 말 오사카 소재 샤프 본사를 방문해 가타야마 미키오 회장과 오쿠다 다카시 사장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샤프는 삼성에 자금 지원을 요청했고 이 부회장은 1000억원 이상을 출자하기로 결정했다. 게다가 가동률이 떨어진 가메야마 공장에서 TV용 32인치 LCD 패널도 대량 공급받기로 약속했다.

니혼게이자이는 삼성의 파격적인 제안을 복사기 사업을 포함해 샤프와 끈끈한 제휴를 맺으려는 의도로 풀이했다. ‘삼성 동의 없이 다른 회사에 복사기 사업을 매각할 수 없다’는 우선거부권도 받았다.

니혼게이자이는 이 부회장의 전략을 ‘주쿠시(熟枾:익은 감)’라고 표현했다. 감이 익기를 묵묵히 기다린다는 의미다. 자금 지원과 제품 구매라는 선물을 주고 복사기 합작의 때를 기다렸다는 말이다.

◇협상을 무위로 만든 두 가지 오판

착착 진행되던 복사기 합작 법인 설립은 결국 무위로 돌아갔다.

이 부회장이 전권을 갖고 일본의 반대 정서를 감안해서 출자 비율을 50% 미만으로 낮추고 판매 이외의 개발에 당장은 관여하지 않겠다는 의지도 밝히는 등 최대한 양보했지만 협상은 결렬됐다.

니혼게이자이는 이 부회장이 두 가지 오판을 했다고 분석했다. 하나는 교섭 상대의 변화고 다른 하나는 샤프 안팎의 반발이다.

이 부회장 협상 상대이던 가타야마 회장과 오쿠다 사장은 샤프 경영 부진으로 물러났다. 갑자기 대표이사로 발탁된 다카하시 고조 사장과는 안면이 없었다. 더욱이 다카하시 사장은 복사기 사업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이 부회장의 제안이 복사기 사업 합작에 맞춰져 있음을 간파한 다카하시 사장은 협상을 접었다. 상대 회사 지배구조와 경영진 변화라는 가장 중요한 정보를 이 부회장은 놓쳤다.

삼성을 바라보는 샤프와 일본 경제계의 반발도 간과했다. 니혼게이자이는 ‘어느 정도 각오는 했겠지만 LCD 세계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삼성을 바라보는 일본의 감정은 매우 좋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일본 정관계의 ‘안티 삼성’ 분위기도 만만치 않았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여기에 삼성이 뛰어들면서 안정적인 시장이 깨지길 원치 않은 미국 유통 업체의 부정적 견해가 더해졌다.

니혼게이자이는 결국 모든 사전 정지 작업을 잘 이뤄놓고도 대어를 놓친 이재용 부회장이 ‘역시 일본은 만만치 않다’고 통감했으리라 분석했다. 삼성의 새로운 먹거리를 찾는 중요한 프로젝트 무산은 결국 이 부회장의 경영능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JY는 불안하다’는 시각도 나와

일본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평가는 더 냉혹하다. 올해 2월 초 이코노미스트는 ‘한국 4대 기업 해부’ 시리즈를 게재하면서 가장 먼저 삼성을 분석했다. 이 기사에서 이코노미스트는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 능력을 낮게 평가했다. 전 삼성전자 직원의 말을 빌려 “성공은커녕 실패가 더 많다”며 “후계자로서의 실력에 불안을 느끼는 임직원이 적지 않다”고 보도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이 때문에 삼성은 세 명의 자녀가 분야별로 맡는 분할 승계가 불가피하다고 진단했다. 이 또한 넘어야 할 벽이 많다는 시각이다. 각 후계자가 어느 정도 권한을 갖고 운영할 수 있을지, 실력이 뛰어난 전문 경영인이 대우받을 수 있을지 등이다.

일본 언론은 어느 나라보다 삼성을 밀착 취재한다. 첨단 산업에서 늘 경쟁하고 일본의 뒷덜미를 자주 잡았기 때문이다. 일본의 전유물이던 TV를 시작으로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에서도 삼성이 앞서간다. 따라서 많은 일본 언론은 삼성의 후계 구도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현재까지 일본 언론이 이재용 부회장을 바라보는 시각은 한마디로 ‘불안’이다.

기획취재팀기자 jeb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