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따라간 협력사들 고민 "비용, 시간 두세배 더 드는데 인력 유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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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소재를 생산하는 한솔케미칼은 지난 2012년 말 중국 시안에 과산화수소 공장을 짓기로 결정하고 설비 투자를 단행했다. 삼성전자가 시안에 반도체 공장을 구축하기로 정한 직후다. 당시 중국 법인에 200억원을 출자해 신공장을 설립했다.

또 다른 반도체 소재 업체 솔브레인 역시 삼성전자 시안 팹 주변에 자리를 잡았다. 일본 스미토모화학 자회사인 동우화인켐은 포토레지스터나 기능성 세정액 등을 삼성에 공급하기 위해 새 공장을 시안에 지었다. 이 외에도 약 60곳의 삼성전자 협력업체가 중국 시안에 새 터를 잡았다. 주로 반도체 공장 인근에서 바로바로 공급해줘야 하는 소재 업체들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삼성전자를 따를 수밖에 없다. 밀밭과 작은 촌락이 있었던 시안의 고신개발구는 삼성전자가 끌고 들어온 첨단 제조기업들로 산업단지를 이루게 됐다.

중국이 삼성전자의 첨단 반도체 공장을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지원한 것은 바로 이 생태계 때문이다. 300㎜ 웨이퍼 10만~12만장을 생산할 수 있는 반도체 공장(팹)을 하나 짓는데 일반적으로 7조~8조원이 든다. 반도체 공장 투자도 크지만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파급 효과는 더욱 크다. 문제는 국내 설비 투자가 실종될 위기라는 점이다.

국내 중소기업들에는 신규 투자를 중국에 해야 하는 것 외에 다른 고민도 많다. 유지보수 역시 장비 협력사가 하는데, 국내 사업장이라면 파견 인력을 최소화할 수 있지만 해외에는 장기 파견을 해야 한다. 시간과 비용이 두 세배 드는 것은 물론, 장기 파견 인력의 유출을 막을 궁리도 해야 한다. 실제로 중국 시장을 염두에 두고 상주 인력을 뒀던 부품·소재 업체들은 중국 현지 업체들에 우수 인력을 뺏기기도 한다. 더 큰 고민은 인력 유출로 인해 향후 국내 업체들이 중국에서 심각한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 인력이 중국 현지 업체들의 성장에 결정적 기여를 한 디스플레이 산업의 선례를 볼 때, 충분히 현실화될 만한 문제다. 한 디스플레이 업계 관계자는 “BOE 등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에 가보니 한국인이 주축이 된 경우가 상당수”라며 “신기술에 갈증이 있는 중국 업체들이 연봉을 3배 이상 쳐주면서 사람을 데려가면 막을 도리가 없다”고 말했다.

시안에 진출한 협력사들은 또 하나의 고민이 생겼다. 지난해 국내 반도체 공장 불산 유출 사건 이후 안전 규정이 대폭 강화됐기 때문이다.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직접 시안 공장을 방문해 전 협력사에 대한 안전 규정 강화를 지시했다.

중국 시안에 진출한 한 협력업체 사장은 “환경 규정은 까다롭게 만들었지만 삼성전자가 지원하는 부분은 전혀 없다”며 “국내 사업장에 비해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드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반도체 장비 업체 관계자는 “중국 합작법인을 일단 활용할 계획”이라면서도 “중국 수요가 늘어나면 그 쪽에 제조시설을 만들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삼성발 반도체 산업 엑소더스를 예고하는 대목이다.

기획취재팀 jeb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