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수 칼럼]파워 엘리트들의 심각한 인지 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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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이 기자인데도 요즘 기사 읽는 것이 두렵다. 세월호 희생자와 유가족 기사를 애써 외면한다. 제목만 봐도 울컥 한다. 열어 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희생자가 남긴 휴대폰 동영상을 차마 못 보겠다.

세월호 참사로 사람들 마음이 복잡하고 무겁다. 안타까움, 노여움, 슬픔, 좌절감이 수시로 교차한다. 일손도 잡히지 않는다. 주목할 것은 시간이 지나면 수그러들기 마련인 분노가 되레 커진다는 점이다. 지난 주말 전국적인 촛불 추모제가 방증이다. 정치인, 관료, 언론인 등 힘깨나 쓴다는 이른바 ‘파워 엘리트’들의 부적절한 발언이 결정적이었다.

부실한 정부 대응에 비판적인 민심이다. 당연한 비판을 죄다 나쁜 쪽으로만 해석하거나 몰아가는 발언이 툭툭 튀어나왔다. 본뜻이 뭐든 유가족이 청와대를 항의 방문할 정도로 화를 돋우기에 충분했다.

이런 막말을 ‘인지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 ‘부주의 맹목(inattentional blindness)’과 같은 사회심리 메커니즘으로 분석하는 시도가 있다. 인지 부조화는 실제로 보이는 것이 생각이나 믿음과 다를 때 생긴다. 이 심적 불편을 해소하고자 무의식적으로 현실을 왜곡한다. 부주의 맹목성은 중요하다고 여긴 것에 관심을 집중하면 다른 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현상이다. 사람들의 농구공 패스 숫자를 세느라 고릴라 복장을 한 사람이 왔다 가도 보지 못하는 실험이 대표적이다.

두 심리 모두 제 생각과 믿음에 맞춰 현실을 바라본다. 누구나 이럴 수 있다.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도, 일반 국민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파워 엘리트, 특히 공직자는 달라야 한다. 공식적으로 ‘파워’가 주어진 이들이기 때문이다. 현실 그대로 인식하지 못하면 더 큰 혼란과 왜곡이 발생한다. 일부 파워 엘리트는 일반인보다도 더 믿고 싶은 대로 봤다. 이를 입 밖으로 내니 막말이 된다. 공분을 산다.

앞으로 사라질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이미 굳은 사고 틀과 메마른 정서를 바꾸기 어렵다. 자칫 말 한마디에 옷을 벗는 마당이니 당분간 조심하겠지만 언제든 튀어나올 수 있다. 그간 보여주지 않은 민낯이 막말 파동에 비로소 드러났을 뿐이다.

파워 엘리트는 정권이 바뀌면 모든 게 달라짐을 체득하며 이 자리에 선 사람들이다. 다 그렇진 않지만 국민보다 정권에 신경을 써야 출세한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정치 풍향에 민감하다. IMF사태 이후엔 일반 국민 삶, 정서와의 거리까지 멀어졌다. 국민이 삶 밑바닥까지 경험할 때 상대적으로 안정적 삶을 살면서 정서적 격차도 한참 벌어졌다. 어쩌면 사회·경제적 양극화보다 더 크다.

“브랜드 없는 옷을 입어 시신을 못 찾을지 걱정”이라는 실종자 유가족 말에 많은 사람이 눈시울을 적셨다. “강남 아이들이었다면 정부 대응이 달랐을 것”이라고 울부짖은 희생자 유가족 말에 적잖은 사람이 공감했다. 바로 이 강남 아이들이 지금 파워 엘리트 아랫단을 형성했다. 앞으로 더 위로 올라간다. 숫자도 많아진다. 어떤 형태로든 이 정서적 격차를 서둘러 좁히지 않으면 사회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진다.

이 점에서 세월호 사태 수습책이 매우 중요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또 한 번의 대국민 사과를 비롯해 다양한 수습책을 제시할 것이다. 이르면 이번 주다. 중요한 것은 청와대 비서실을 비롯해 대통령의 상황 인식과 판단을 흐리게 한 핵심 파워 엘리트부터 바꾸는 일이다. 국민 정서를 제대로 읽고 교감할 인사를 등용해야 대통령이 다시 국민과 소통할 수 있다. 이전 정권, 심지어 야권 인사도 좋다. 사실상 여기에 사태 수습뿐만 아니라 박 대통령의 남은 임기 성패, 사회 안정 여부까지 달렸다.


신화수 논설실장 hsshi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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