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에게 듣는다]<7>힐튼 안토니 데니스 주한 남아프리카공화국 대사

“거리 곳곳에 걸려 있는 현대차와 삼성, LG 같은 한국기업의 옥외광고나 간판이 그새 더 많이 늘어 있는 것을 보고 새삼 놀랐습니다. 남아공에게 있어 한국 기업은 더이상 먼나라가 아니에요.”

지난달 본국에 다녀왔다는 힐튼 안토니 데니스 주한 남아프리카공화국 대사(56)는 갈수록 확대되는 양국간 교역, 특히 한국산 자동차와 전자제품의 물동량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데니스 대사는 최근 서울 한남동 남아공 대사관에서 ‘남아공 민주화 20주년’을 맞아 진행한 전자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아프리카는 전세계에서 중국 다음으로 경제성장율이 높은 경제권역으로, 이런 아프리카 시장의 관문 역할을 하는 나라가 바로 남아공”이라며 “남부아프리카와 체결돼 있는 자유무역협정은 게이트웨이로서의 남아공의 위상을 더욱 강화시켜준다”고 강조했다.

데니스 대사에 따르면, 현재 남아공의 TV시장은 삼성전자가 석권하고 있다. TV를 제외한 가전제품은 LG가 절대강자다. 삼성은 현지에 TV조립라인까지 갖추고 있다. 아프리카와 유럽시장을 겨냥한 포석이다.

데니스 대사는 “도요타와 BMW 등에 이어 한국의 현대차는 이제 남아공 자동차 시장에서 점유율 3~4위로 올라서 있다”며 “하지만 타 경쟁사와 달리 현지에 생산라인이 없다는 점은 아쉽다”고 말했다.

남아공은 차 산업 활성화를 위해 차량 구입시 보조금까지 지원해주는 만큼, 현대차도 이제는 현지 제작 시스템을 갖춰달라는 게 데니스 대사의 주문이다.

식민 피지배의 아픔과 독재의 고통 등 남아공과 한국은 공통점이 많다고 데니스 대사는 말했다. 많은 사람들의 투쟁과 희생 끝에 민주화를 달성한 뒤, 경제 성장을 이룩한 점도 닮은 꼴이다.

그는 “1994년 민주화 쟁취 이후 서방 세계의 우려와 달리, 남아공은 눈부신 경제 성장을 거듭해 왔다”며 “20년새 국내총생산(GDP)은 3배 성장했고, 백인들 위주로만 공급돼 온 주택과 식수, 전력 등의 보급률도 크게 올랐다”고 언급했다. 지난 2010년에는 월드컵 축구경기도 성공적으로 개최, 세계 무대에 남아공의 위상을 높였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인터뷰 내내 데니스 대사는 민주주의와 민족주의, 자유, 투쟁 등을 강조했다. 사실 데니스 대사는 정통 외교관료 출신이 아닌, 이른바 ‘민주 투사’다.

그는 22세 때인 1975년, 반정부 투쟁조직인 ANC(아프리카민족회의)에 가입,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과 함께 백인 정부의 아파르트헤이트(흑인차별정책)에 맞서 ‘반아파르트헤이트 운동’을 같이 했다.

이후 탄자니아와 앙골라, 잠비아 등에서 오랜 망명생활을 하면서 군사훈련을 받았다. 그가 다시 조국으로 돌아온 것은 집권세력이 ANC와 대화의 물꼬를 트기 시작한 1991년였다. 데니스 대사는 ANC가 집권한 이후 정보부 부장 등을 지낸 뒤, 2010년 2월 한국에 부임했다.

인터뷰가 있던 지난 7일은 본국에서 사상 첫 ‘본 프리 총선’(민주화 이후 세대가 참여한 투표)이 있던 날이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듯 한 표정의 데니스 대사는 “한국도 마찬가지겠지만, 많은 사람들의 피와 희생으로 얻은 민주주의인 만큼 이를 잘 지켜나가야한다”며 “다민족·다인종 국가인 남아공이 국민 통합을 이뤄냈던 과정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단일 민족국가 임에도 불구, 계층간·세대간 반목과 갈등이 지속되고, 특히 최근에는 여객선 사고 등으로 국민과 정부간 불신까지 가중된 상황에서 한국 사회가 남아공을 통해 배우고 느낄 점도 많을 것이라는 얘기다.

데니스 대사는 “남아공 월드컵 당시 서방국가들이 우리의 치안을 우려했고, 민주화 직후에는 인종전쟁까지 염려했지만 모두 기우에 불과했다”며 “남아공은 내각을 인선할 때도 출신 종족을 고려할 정도로 민족 간 화합을 최우선시 한다”고 강조했다. 다양한 민족이 조화를 이뤄 공존하고 있는 것이 남아공의 또 다른 경쟁력이라는 게 데니스 대사의 설명이다.

6.25 참전국 대사 모임인 ‘한국전참전위원회’의 위원장을 맡고 있는 데니스 대사는 “참전용사들이 한국을 방문하면 ‘폐허 속에서 어떻게 이렇게 빨리 발전할 수 있었냐’는 질문을 하곤 한다”며 “우리 중소기업들도 한국의 첨단 기술과 함께 이같은 ‘열심히’ 그리고 ‘빨리빨리’ 문화를 배워 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1975년아프리카민족회의(ANC) 가입

1979년반아파르트헤이트 투쟁 참가

1991년남아공 귀국. 흑인과 백인정권간 협상 참여

1994~1999년민주화 선거 이후 공직 시작. 국내안보부 차·부장

1999~2009년대외안보부 차관보

2010~현주한 남아공 대사


류경동기자 ninano@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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