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경제 중심축 ‘출연연’ 신임기관장에 듣는다]<6>임용택 한국기계연구원장

“나로호에 쓰인 용접기술이나 신고리원전에 공급 예정인 냉각수 순환펌프 등이 모두 한국기계연구원이 개발한 기술입니다.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 뿐입니다.”

지난 2월 취임한 임용택 한국기계연구원장의 일성이다. 연구는 열심히 잘 했지만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면 아무 소용없다는 점을 강조한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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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플레이 산업에 활용되는 초정밀 미세패턴 가공기술은 기계연이 출자해 만든 연구소 기업 ‘제이피이’가 보유한 핵심 기술이다. 제이피이는 기계연이 특허 3건을 이전하고 회사 지분 21.05%를 보유하고 있다. 국내 도광판 압축용롤 분야 시장 점유율이 90% 이상이다.

환경오염 정화장비도 기계연이 지홈에 기술이전 후 한국과학기술지주가 투자했다.

특히 스테인리스 특수 용접기술은 우리나라 첫 우주발사체 나로호의 발사장 지하 배관설비를 현대중공업이 시공하며, 활용한 기계연 개발 기술이다. 나로호 개발에 한국기계연구원이 기여했다는 것은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다.

원전에 들어가는 두산중공업의 냉각재순환펌프(RCP)도 마찬가지다. RCP는 평범한 펌프로 보이지만 원전에서 심장 역할을 하는 핵심부품이다. RCP 수력설계를 기계연이 국산화했다. 두산중공업에 기술이전해 차세대 원자로인 신고리 원전 7, 8호기에 공급할 계획이다. 한 기당 1000억원의 수입대체 효과가 기대된다.

임 원장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두 시장 친화형 원천기술로 업체가 요구하는 핵심 요소기술을 지원한 기계연의 대표적인 사례들”이라며 “기관이 향후 나아가야할 좌표”라고 강조했다.

“국가나 시장이 필요로 하는 기계 분야 핵심원천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기관의 미션입니다. 기본에 충실하면 시장 진입도 그만큼 쉽습니다. 새로운 것만 추구하기 보다는 있는 걸 잘 다듬고, 부가가치를 부여하는 작업이 더 중요합니다.”

그는 오는 6월 개통 예정인 인천국제공항에 이어 최근 대전도시철도 2호선 운행차량으로 선정된 자기부상열차에 대해서도 큰 의미를 부여했다. 자기부상열차는 기계연 대형국책연구사업 실용화의 상징이라는 것이다.

그는 “나로호 하면 항우연이 연상되듯, 이제 자기부상열차는 기계연을 상징하게 될 것”이라며 “기초·실용화 연구 모두 꽃을 피우려면 지속적인 노력과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자기부상열차”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8㎜떠서 다니는 자기부상열차가 친환경적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공기오염도 거의 없고, 소음도 65㏈ 이하로 다른 기종에 비해 엄청 낮은 편입니다. 브레이크도 자기력을 사용하니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그는 패러다임의 변화에 대해서도 견해를 밝혔다.

국책연구기관 사이클이 3년 주기로 이루어져 있기에 새로운 패러다임 적용은 쉽지 않다고 내다 봤다. 현실적으로 시스템을 확 바꾼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기에 ‘개선’과 ‘변화’에 방점을 찍어 놨다. 연구원들의 동의와 공감 속에 지속적으로 하나씩 바꿔가겠다는 복안이다.

‘국제통’으로 불리는 임 원장답게 그동안 국내 중심으로 움직이던 기관 R&D 영역을 해외로 확대하는 작업도 추진 중이다.

“현재 미항공우주국(NASA) 에임즈연구센터와 독일 아헨공대, 프라운호퍼, 막스플랑크, 바이에른 레이저가공연구소 등과 공동연구나 인력교류 등 특화된 연구 분야에서 선택적 협력방안을 논의 중입니다. 조만간 가시적인 결과가 나올 것입니다.”

사실 에임즈연구센터는 임 원장과 인연이 깊다. KAIST 글로벌협력본부장으로 재직하던 임 원장이 에임즈연구센터와 긴밀하게 협력해 KAIST 박사후과정 학생 2명을 유학 보내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 프로그램은 현재 4명으로 확대돼 이어지고 있다.

임 원장은 오는 10월 기계연 주관으로 세계적인 석학이 참여하는 제1회 ‘미래 기계기술 포럼 코리아’를 개최할 계획이다.

최근 논의 중인 출연연 미션과 관련해선 그동안의 성과를 기반으로 하는 역할 재정립론에 힘을 실어줬다. 새 역할을 찾는 데 있어 과거를 모두 도외시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가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는 시각이다.

“과거의 연구 성과나 실패 사례 등 경험이 바탕이 돼 잘하는 연구소는 밀어주고, 못하는 데는 보완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새로운 연구소를 만드는 것보다 현재 있는 연구소를 잘 운용하는 ‘사람의 문제’가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임 원장은 기관 관리시스템 업그레이드 방안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관리시스템 자체가 연구나 관리를 하면서, 서로 정보 등을 주고받으며 잘 알아야 하는데, 그런 측면에서 다소 개선할 여지가 있다고 분석했다. 뒤집어보면 자유로운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이슈가 만들어지면 서로 적절히 대응해야 하는데, 세월호 난맥상 같은 부분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경영과 연구 투 트랙으로 책임자를 두고 소통과 조화를 전제로 한 사다리형 수평시스템을 만들고자 하는 이유도 거기 있습니다.”

‘모든 관리가 투명해야 한다는 것’이 기본 골격이라는 얘기도 빼놓지 않았다.

임 원장은 “회의 방식도 일방 보고형식에서 토론식으로 바꾸는 중”이라며 “서로 의견 개진이 이루어지려면 권위주의부터 털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식당 한편에 마련돼 있던 기관장용 식탁부터 없앴다. 수평적 조직문화 구축과 소통을 위해서다. 기관도 때론 혼자 방문하고 있다. 일의 절차보다는 내용을 중시하는 실용주의가 몸에 뱄기 때문이다.

임 원장은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안전관리 체계를 정비하는 차원에서 긴급전화 ‘7119’를 설치하고 안전관리 자문요원 제도를 도입했다.

“아무리 연구에서 대박이 터져도 건강을 잃으면 모든 걸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 듯 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대전=박희범기자 hbpark@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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