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과학, 이번주엔]19세기 최고의 수학자 가우스 탄생

19세기 최고의 수학자로 평가되는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가 1777년 4월 30일 독일에서 태어났다. 가우스는 수학자이자 과학자로 정수론, 통계학, 해석학, 미분기하학, 측지학, 정전기학, 천문학, 광학 등 많은 분야에서 업적을 남겼다. 그를 평가하는 호칭도 ‘수학의 왕자’, ‘태고 이후 가장 위대한 수학자’ 등으로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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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신동으로 불렸던 가우스는 10대에 수학적 발견을 이루고, 21살이던 1798년에 대표적 저서인 ‘산술연구’를 완성하는 등 일찌감치 명성을 떨쳤다. 산술연구는 정수론이 발전하는데 기초가 됐다.

가우스는 벽돌 굽는 일을 하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가우스가 벽돌 노동자가 되기를 원했던 아버지는 공부를 지원하지 않았는데 어머니의 도움으로 겨우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이후 가우스는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지원으로 대학까지 공부를 마칠 수 있었다.

가우스는 정수론, 해석 함수, 타원 함수, 통계학, 미분기하학, 전자기학, 비유클리드 기하학, 위상 수학, 측지학 등에서 많은 업적을 남겼다.

가우스는 산술연구를 통해 일반적인 정수론의 용어에 있어서 혁명적 개선이며, 정수의 나누어 떨어지는 개념의 처리를 매우 단순화한 합동과 합동식 등을 만들어 냈다.

가우스가 수학뿐 아니라 과학계에서도 유명해진 것은 왜행성 ‘세레스’ 궤도를 예측하면서다. 세레스는 이탈리아 천문학자 피아치가 발견했지만, 궤도를 몰라 관측이 어려웠다. 이를 가우스가 정확한 계산을 통해 궤도를 예측하면서 과학계에 그의 명성을 알렸다. 가우스는 천문학적 달력인 위치 추산력을 바탕으로 1년 후 세레스 위치를 거의 정확하게 예측했다. 이후 가우스는 자신의 방법을 계속 발전시키고, 새로운 행성이 발견되는 대로 궤도를 계산했다. 이 방법은 천체운동이론으로 발표됐고, 가우스의 제자를 통해 개선돼 지금도 쓰이고 있다.

가우스는 천문학 활동을 하며 망원경 개발을 위한 광학연구를 했고, 전자석 전신기를 만들어 물리학에도 영향을 미쳤다.


권건호기자 wingh1@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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