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폰 액세세리까지 진출…가뜩이나 어려운 中企 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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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병철 회장은 삼성그룹 창립 때 △사업보국 △공존공영 △인재제일 △합리추구 등 네 가지 가치를 내걸었다. 이 가운데 공존공영은 오늘날 우리나라의 경제 이슈인 동반성장이나 상생과도 같은 말이다. 선대 회장에 못지않게 이건희 회장도 협력사와의 상생에 힘썼다. 1990년대 초 ‘하청업체’라는 용어를 버리고, 대신 ‘협력사’란 용어로 대체해 정착시킨 것도 바로 그다. 이 회장은 제조업의 경쟁력이 협력사 육성에 달려있다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했다.

그는 삼성전자 사장들이 모인 자리에서 “협력사 사장이 인생 전부를 걸고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협력사를 어떻게 육성하느냐에 삼성전자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누차 강조했다.

그러나 최근 삼성전자는 삼성그룹 4대 창립이념을 깡그리 잊은 모양이다. 특히 선대 회장이 가르친 사업보국과 공존공영을 추구하는 모습을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현재 삼성전자에서 최고의 가치는 단기성과, 아니 ‘돈’이다. 수익을 내는 부서는 ‘일등공신’이고 수익을 까먹는 부서는 ‘역적’이다.

삼성전자 임원 출신 한 관계자는 “7~8년 전만 해도 삼성전자에 최소한의 상도의는 있었다”며 “실적 지상주의가 조직 내에 만연해지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결과를 만들어내는 게 제일 중요한 가치가 됐다”고 말했다.

사업부 간, 팀 간, 그룹 간 실적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삼성전자는 중소기업이 담당해온 사업 영역까지 손을 뻗는 경우가 빈번해졌다. 스마트폰·태블릿PC 시장에서 쏠쏠한 이익을 낼 수 있는 액세서리·주변기기 사업이 대표적이다.

전통적으로 액세서리·주변기기 시장은 중소업체들이 키운 시장이다. 2년 전만 해도 1000개가 넘는 액세서리 업체가 1조원 규모의 시장을 형성했다. 새로운 스마트폰이 출시되면 영세한 업체들이 디자인을 분석하고 아이디어를 가미해 제품을 내놓는 구조였다. 특히 삼성전자 갤럭시S·갤럭시노트 시리즈가 출시되는 시즌은 액세서리·주변기기 업체들이 특수를 누릴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러나 삼성전자 무선사업부가 액세서리·주변기기 시장에 진출하면서 영세업체들은 점차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중소기업 영역이던 액세서리·주변기기 시장으로 사업을 확대한 삼성전자 무선사업부가 시장 진출 1년 만에 거둔 매출은 1조원 수준인 것으로 추정된다. 주로 외주생산에 의존하므로 삼성 입장에서는 직접투자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고, 삼성 브랜드를 이용해 높은 가격에 판매할 수 있어 수익률도 상당하다.

액세서리 업체 한 임원은 “삼성전자는 기존 중소 업체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액세서리·주변기기를 팔 수 있다”며 “스마트폰 사업과 비교하면 ‘땅 짚고 헤엄치기’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처음 액세서리·주변기기 시장에 뛰어들 때만 해도 “생산 초기물량 확보와 보안을 위해 일부만 자체 제작할 것”이라고 언론과 협력사에 이야기했다. “일부를 자체 제작해도 스마트폰 물량이 계속 늘고 있어 실질적으로 영세 업체들의 실적에는 영향이 없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태도가 바뀌었다. 삼성전자는 1차 협력사를 활용해 액세서리 외주 생산 물량을 꾸준히 늘리고 있다. 액세서리·주변기기 사업을 육성해 새로운 수익원을 발굴하고, 스마트폰 시장 성장률 둔화의 충격을 상쇄한다는 명목이다.

액세서리·주변기기 사업으로 단맛을 본 삼성전자는 지난해 아예 CNF팀(액세서리사업팀)을 신설했다. 박주하 무선사업부 전략마케팅실 전무에게 지휘를 맡겼다. 사업 조직을 체계화하면서 액세서리 사업 비중은 점차 커지고 있다. 올해 삼성전자는 액세서리 사업을 지난해보다 2배 이상 성장시킨다는 목표다.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세계 1위 기업이다. 기존 액세서리·주변기기 시장 구도를 바꾸는 것은 ‘아이 손목 비틀기’보다 쉬웠다. 삼성전자는 갤럭시S4 출시 때 스마트폰 커버를 닫아도 작은 창으로 전화를 받을 수 있는 스마트커버 기능을 처음 도입했다. 회사는 외부 액세서리 업체에 이 기술의 세부사항은 일절 공개하지 않았다. 삼성전자가 직접 출시한 제품에만 스마트커버 기능을 탑재할 수 있도록 했다.

삼성전자는 기존 액세서리 업체들이 시장에 진입할 수 없도록 진입장벽을 치고 해자(垓子·침입을 막기 위해 성 밖을 둘러 파서 못으로 만든 곳)까지 건설했다. 바로 애니모드·벨킨·인케이스 등 몇몇 업체에만 부여하는 삼성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파트너십 프로그램(SMAPP) 정품 인증이다. SMAPP 인증을 받지 못한 영세업체들은 이내 액세서리 시장에서 두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SMAPP에 포함된 업체라도 커버 케이스 개발에 필요한 신제품 설계 도면은 삼성전자 제품 공개(언팩) 행사가 끝난 뒤에야 입수할 수 있다. 삼성전자는 독자 출시한 액세서리를 판매하는데 가장 유리한 시장의 룰을 만들었다.

한 액세서리 업체 사장은 “작은 연못(국내 액세서리 시장)에 메가톤급 고래(삼성전자)가 들어온 격”이라며 “삼성전자를 제외한 모든 업체가 불리할 수밖에 없는 경쟁”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최근 자사 액세서리사업부와 협력사에 정품 인식칩을 배포하고 기본 장착하도록 했다. 케이스·무선충전패드 등에 부착된 칩에 고유 아이디를 부여해 스마트폰이 정품인지를 인식하고 정품이 아니면 그 기능을 사용할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다. 최근 가짜 인식칩을 부착한 중국산 짝퉁 액세서리가 국내 시장에 밀려들고 있어 기존 업체의 어려움은 가중되고 있다.

삼성전자가 액세서리 정품 정책을 내세운 표면적 이유는 제품 신뢰성이다. 액세서리에 다양한 기능이 추가되는데 정품으로 제한하지 않으면 오작동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스마트폰 시장 지배력을 앞세워 부가가치가 높은 액세서리 사업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사전 포석의 성격이 크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정말 소비자를 걱정한다면 기본 인증만 하고, 다양한 제품이 나올 수 있도록 시장을 개방하는 게 맞다”며 “지금 같은 정품 정책은 자사에만 유리하게 만들어 놓은 ‘불공정한 룰’이다”고 말했다.

최근까지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액세서리 사업이 승승장구하는 것과 달리 국내 액세서리 전문 업체의 실적은 내리막 길을 탔다. 국내 1위 스마트폰 액세서리 업체 애니모드조차 지난 2012년 1300억원 매출에서 지난해 1000억원 밑으로 떨어졌다.

애니모드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액세서리 시장에 진입한 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는지는 모르겠지만 실적이 전년도에 비해 좋지 않은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기획취재팀 jebo@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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