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 만화가 이정문씨는 한 학생잡지에 ‘서기 2000년대 생활의 이모저모’라는 제목으로 상상 속의 2000년대 모습을 그린 만화를 게재했다. 만화에는 태양열 에너지, 전기자동차, 인터넷, 휴대폰, DMB 등 당시 상상조차 힘들었던 기술들이 묘사됐지만, 지금은 원래부터 존재했던 것 마냥 자연스럽게 우리 삶의 일부분이 됐다.
톰 크루즈가 투명 디스플레이를 자유자재로 다루고, 건물 안을 걸어가자 벽면에 설치된 스크린 속 광고가 그의 이름을 부르며 맥주로 갈증을 풀라고 권한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한 장면이다. 10여년 전 영화 개봉 당시에는 ‘아직 먼 미래’라고 생각했지만 일부 기술은 이미 구현되었거나 빠르게 발전해 나가고 있다.
정보기술(IT)의 진보 덕분에 우리의 삶은 보다 윤택해졌으며 디스플레이의 발전은 언제 어디서나 세상과 소통할 수 있게 해줬다. 앞으로도 IT는 인간의 상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빠르게 발전해 나갈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그 변화와 혁신의 중심에 유기발광다이오드(OLED)가 있다. 기존의 LCD도 초고화질(UHD), 곡면(Curved) 등의 형태로 발전하고 있지만, OLED는 스스로 빛을 내 영상을 구현하고, 얇고 가벼우며 여러 형태로 디자인 변형이 가능하기 때문에 무궁무진한 발전 가능성을 갖고 있다.
이미 TV에는 OLED가 적용돼 본격적인 시장 개화를 앞두고 있다. 해상도 측면에서는 풀HD를 넘어 초고해상도까지 시장에 선보이고 있으며, 평면과 곡면을 구현해 소비자 선택의 폭을 넓히고 있다. OLED는 향후 플렉시블(Flexible)과 투명(Transparency) 디스플레이로 빠르게 진화할 것으로 기대된다.
차세대 IT산업으로 급부상 중인 웨어러블(Wearable) 역시 OLED가 열쇠를 쥐고 있다. 다양한 디자인 및 휴대성과 더불어 야외에서 꼭 필요한 고휘도와 넓은 시야각 등 OLED만이 갖고 있는 많은 장점들은 웨어러블 기기의 발전을 앞당길 것이다.
그런데 LCD로 글로벌 디스플레이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우리나라가 OLED 시대에도 헤게모니를 쥐고 시장 주역이 되기에는 만만치 않은 도전이 도사리고 있다.
LCD에서 밀렸던 중국, 대만 등 해외기업이 OLED 시장에서는 절치부심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 디스플레이 기업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OLED 투자를 발표하고 있다. 한없이 멀게만 느껴졌던 기술격차도 내년이면 1년가량으로 줄어들 전망이라고 한다. 중국 정부도 관세와 지원금 등 각종 정책을 내세우며 적극 지원하고 있다. 일본 역시 시장상황에 따라 언제든 다시 OLED에 뛰어들 태세다.
우리나라가 이러한 경쟁국의 추격을 뿌리치고 OLED 원천기술선점 및 시장 주도권 확보를 하기 위해서는 산·학·연·관 모두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먼저 디스플레이업계는 당장의 먹거리에 치중해 미래 성장동력을 대한 준비를 소홀히 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일등 자리는 뺏기는 쉬워도 지키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정부도 산업육성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특히 정부 지원으로 LG디스플레이를 비롯한 36개 산학연 조직으로 구성된 컨소시엄이 추진하고 있는 ‘대형 투명·플렉시블 디스플레이 개발’과 같이 대기업과 중소기업, 학계와 연구소가 공동으로 참여해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는 국책과제를 더욱 확대해야 한다.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다가오는 큰 파도는 위협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미리 파도의 방향과 크기를 예측한다면 이를 이용해 남들보다 훨씬 빨리 멀리 나아갈 수 있다.
OLED라는 큰 파도가 소리 없이 밀려오고 있다. 선택은 간단하다. 즐기면서 파도를 탈 것인지, 아니면 준비 없이 파도에 묻힐 것인지.
한상범 LG디스플레이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