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게임산업은 자생적인 환경에서 이뤄집니다. 정부는 갈등을 조율하는 역할을 하면 됩니다”
스콧 와이트먼 주한 영국대사는 ‘생태계’에 강점을 가진 유럽식 모델이 기업 환경을 개선하려는 한국의 창조경제에 숨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걸림돌 규제를 없애려는 한국 정부처럼 오래 전부터 영국 정부도 많은 규제를 완화 또는 폐지해 왔다.
마주치자 마자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라며 꽤 능숙한 한국말 인사로 손을 건넨 와이트먼 대사는 유럽식 규제개혁의 전도사다. 이달 중순 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한 ‘규제개혁 장관회의 및 민관합동 규제개혁’ 회의에 참석해 영국의 ‘규제총량제’를 소개, 각종 매스컴을 탄 터였다.
와이트먼 대사는 “유럽 게임산업의 모든 규제는 비즈니스 활성화에 초점을 두고 만들어지며 자발적 규제 기관인 ‘판 유러피언 게임 인포메이션(PEGI)’이 과제를 만들거나 제한도 정한다”고 예를 들었다. PEGI는 유럽의 민간 게임 등급 분류 기관으로 세계 30여개 국가가 PEGI의 기준을 따른다. 자생력에 방점을 둔 민간기관이 범유럽을 통털어 보이지 않는 손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와이트먼 대사는 “정부는 소비자와 사회 보호를 우선하며 일자리가 줄어들지 않게 하는데 집중한다”고 덧붙였다.
굳이 게임산업이 아니라도 창의력이라면 세계 어디에도 빠지지 않는 영국의 콘텐츠 경쟁력은 하루 이틀 만에 이뤄지지 않았다. 원천은 ‘생태계의 힘’ 이다.
와이트먼 대사는 “어떤 비즈니스도 지원하는 생태계가 잘 갖춰졌다는 것은 우리의 디딤돌”이라며 “ARM, 그래픽스, 이매지네이션 테크놀로지 같은 작지만 강한 IT기업이 생태계를 기반으로 한 영국의 혁신 정신을 잘 보여준다”고 자부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생태계의 대표, 클러스터를 강조한 와이트먼 대사는 “예를 들어 스코틀랜드 에딘버러는 게임이 강한 도시로 성장하고 있는데 이 곳에서 세계적 히트작 ‘그랜드 데프트 오토’ 게임을 만든 록스타는 발매 첫주 수십억 달러 어치를 팔았다”며 “창조경제의 좋은 예시”라고 말했다.
창의적 아이디어가 나오는 기업 환경을 위해 정부의 진흥책과 규제도 생태계에 방점을 두고 있다고 했다.
영국 정부의 우수한 기술·산업을 세계에 알리는 ‘그레이트 캠페인’도 생태계를 영국 밖으로 확장하겠다는 시도에서 나왔다. 캠페인을 펼치는 10개 우선 국가 중 하나로 한국을 선정한 영국 정부는 음식, 의류 등 산업 전반에서 국내 산업·소비자와 네트워크 사슬을 강화하고 있다.
와이트먼 대사가 가장 주력하는 사안도 영국과 한국 기업이 국경을 넘어서는 생태계를 만들고 시너지를 내는 일이다. 한국과 EU 자유무역협정(FTA) 이후 더 깊은 비즈니스 기회 발굴에 주력한다는 와이트먼 대사는 “영국의 콘텐츠와 한국의 하드웨어가 만나 양쪽이 활성화될 수 있게 하고 싶다”며 “삼성전자·LG전자와 ARM·CSR이 윈윈 관계를 유지하는 것처럼 한국의 하드웨어·플랫폼 기업과 영국 게임·콘텐츠 업계간 협력이 기대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11월 박 대통령의 영국 방문 때 양국 콘텐츠·IT 분야 협력을 약속한 것도 이 기대를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또 영국을 잘 모르는 한국의 비즈니스맨과 시민에게 더 많은 진짜 모습을 알려주고 싶어 했다. 와이트먼 대사는 “영국은 잘 알려진 금융·창조 산업 이외에 제조업도 매우 강한 나라”라며 “국제 자동차 경주대회인 포뮬러 원(F1) 차량 중 절반 이상이 영국에서 만들어지며 반도체 제조를 가능하게 하는 기술력도 뛰어나다”고 자신했다.
한국 기업의 영국 진출, 영국 기업의 한국 진출을 돕는 것은 빼놓을 수 없는 대사관의 주요 임무다. 와이트먼 대사는 “G7 국가 중 가장 법인세가 낮은 나라인 영국은 세계에서 가장 투자하기 좋은 국가”라며 “투자에 방해가 되는 쓸모없는 규제를 많이 고치고 완화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고 있으며 세계적 수준의 대학도 강점”이라고 소개했다.
소통을 즐기는 와이트먼 대사는 블로그와 트위터를 운영하며 한국의 기업가, 정부 관계자, 시민과 진짜 파트너가 되고 싶어했다.
◇스콧 와이트먼 대사 약력
1986~89 주중국 영국대사관 과학기술 2등서기관 (베이징)
1989~91 국무조정부 국제정치 분석연구가
1991~93 영국 외무부 자원관리재무 담당
1994~95 프랑스 외무성 파견근무
1995~98 주프랑스 영국대사관 1등서기관 (파리)
1998~01 영국 외무부 인사정책 부국장
2002~06 주이탈리아 영국대사관 부대사 (로마)
2006~08.8 영국 외무부 글로벌경제국장
2008. 9~2010. 11 영국 외무부 아시아태평양국장
2010. 12~2011. 11 한국어 연수
2011. 11 주한영국대사관 대사 부임
유효정기자 hjyo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