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IT 융합제품 분야 중심으로 성장 잠재력 보유하고 있다. 의료와 정보통신기술을 접목하려는 이유이자, 의료기기 산업 발전계획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이런 융합을 추진하는 데 한계가 명확하다. 현행 의료법상 의사와 환자 간 원격으로 이뤄지는 진료는 불법이기 때문이다. 의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원격의료는 의료인(의사, 치과의사, 한의사)이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해 먼 곳의 의료인에게 의료지식이나 기술을 지원하는 것이다. 의사 사이에서는 융합 기술을 개발할 수 있지만 사용자가 더 많은 환자 대상 영역에는 시도조차 할 수 없다. 이 때문에 환자 대상 원격의료 허용을 내용으로 하는 의료법 개정이 정부에서 추진됐지만 안전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의사협회의 반발로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의사협회 측은 “원격의료가 도입되면 오진확률이 높아지고 수도권 중심의 대형 병원이 환자를 독식, 동네의원과 지방병원이 고사할 것”이란 입장이다. 반면에 정부는 원격의료가 대면진료를 대체하는 것이 아닌 보완 수단이며 의료 접근성 확대에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입장이 팽팽하지만 원격진료 허용 효과는 상당할 것으로 평가된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지난 2011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원격의료 전면 허용 시 건강보험 절감 1조5000억원, 환자본인부담금 절감 1조2000억원, 교통비 절감 1350억원 등 연간 2조8159억원의 사회적 편익이 발생한다. 경제적 파급효과는 더 클 것으로 예상됐다. 제도 개선 후 5년간 직접적으로 총 3조7896억원의 부가가치가 기대된다. 간접적으로는 같은 기간 9조8603억원의 생산이 유발되고, 14만3000명의 기대 고용유발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의료기기 산업 발전에 있어 원격의료는 빼놓을 수 없는 사안이란 뜻이다.
정부는 최근 의사협회와 원격진료 시범사업을 실시한 후 그 결과를 입법에 반영하기로 합의했다. ‘선 입법-후 시범사업’을 고수하던 당초 입장에서 한 발 물러났지만 그 만큼 현재의 원격의료 문제를 반드시 풀고 나가야만 한다는 절실함을 보여주고 있다.
의사협회는 정부와 타결한 원격의료 합의안을 두고 찬반 투표를 진행하고 있다. 20일 낮 12시가 투표 종료 시간이다. 반대가 많으면 정부와 의사협회 간 합의 내용은 자동 무효화된다. 원격의료 기술과 의료기기 산업 발전의 향배를 가릴 중요한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윤건일기자 beny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