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수 LG화학 부회장은 공장에서 회의를 진행할 때면 가장 먼저 참석자들과 함께 ‘안전훈’부터 제창한다. 환경 안전이 사업에 앞서 가장 먼저 되새겨야 하는 기본 원칙임을 지난 한 해 동안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박 부회장은 외부에서도 “투자 중 환경 안전 투자를 최우선으로 할 것”이라고 누차 강조해왔다.
제조업 강국의 반열에 올라선 우리나라에서 올해 들어 환경 안전 투자가 필수 과제로 떠올랐다. 지난해 각종 유해물질 누출 사고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진데다 환경 관련 규제 법도 제정됐기 때문이다. 특히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대표 첨단 제조업에서 각종 시설 투자를 통한 ‘예방’에 관심을 쏟고 있다.
5일 업계에 따르면 반도체·디스플레이·화학소재 등 주요 업종 대기업들이 올해 들어 환경 안전에 더 많은 투자를 집행하고 전담 조직을 대폭 강화하고 있다.
삼성은 전 계열사별로 올해 환경 안전 투자 계획을 새로 짜고 있다. 지난 1월 말 사장단 회의에서 환경 안전에 총 3조원을 투입한다고 밝힌 이후 기업별로 투자 대상 시설물과 기술 점검 작업을 펼치고 있다. 전체 사업 예산은 이미 확정된 상황이지만, 환경 안전 예산은 다시 조정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상 조짐이 있는 노후 시설은 모두 교체하고 있다. 심지어 화학물질 누출 위험이 있는 배관 이음새 부분에는 유출 여부를 검출할 수 있는 설비를 모두 부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파이프 배관만 해도 수만 포인트에 이르지만, 지난해 불산 누출사고가 일어난 원인도 깨진 파이프에 있었기 때문이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지난해 약 4000억원을 투입해 폐수처리시설, 배기시설, 유해물질관리시스템 등을 교체했다. 올해 예산은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지난해보다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LG화학은 화학물질 유출 예방을 위해 외부에 노출된 배관을 교체한다. 혹여 사고가 나더라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방폭 설비도 대폭 늘린다. 지난해 환경 안전 분야에 900억원을 투자한 이 회사는 올해 이보다 56%가 증가한 1400억원을 투자할 예정이다.
LG디스플레이는 지난해부터 약 67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유해화학물질 안전시설을 강화했다. 시설관리 외에도 수도권역 긴급구조 종합훈련, 협력사 상생 안전수칙 준수 결의대회 등을 통해 안전 활동을 강화했다. 이 회사는 “안전하지 않으면 작업하지 않는다”는 기본 원칙을 세우고 모든 작업 단계에서 유해물질의 사용을 사전 차단하기 위한 시스템을 수립, 운영에 들어갔다. 올해 예산은 약 800억원 규모로 책정했다.
환경 안전 조직도 강화하고 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전담 조직 임원을 종전 2명에서 3명으로 늘렸다. LG화학은 본사 조직을 임원급으로 격상시키고 안전 진단을 전담하는 팀도 신설했다. LG이노텍도 환경안전을 총괄할 임원급 전문위원을 발탁하고 전담 조직을 강화했다.
업계 관계자는 “사고가 많았던 지난해보다도 오히려 올해 투자가 더 많을 것”이라며 “환경 안전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진 증거”라고 말했다.
문보경기자 okm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