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은행장, 금융권 여성 유리천장을 깬 1호. 창조경제를 이끌 여성 리더….
권선주 기업은행장 취임 후 항상 따라다니는 수식어다. 박근혜정부 들어 여성 인재가 창조경제의 또 다른 동력으로 떠올랐다. 그 중심에 권선주 행장이 있다. 어쩌면 여성이라는 타이틀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정책보다는 개인에게 쏠리는 관심이 더 크기 때문이다.
기업은행은 대한민국 중소기업과 호흡을 같이한 공적 기관이다. 박근혜정부 들어 창조금융의 이음새 역할을 할 금융 허브인 셈이다.
조금 다른 시각에서 권선주 행장의 속마음을 들어봤다. 젊은 시절 영어교사와 기자, 중소기업은행 신입행원 세 가지 원서를 두고 고민했다는 권 행장, 결국 은행을 택했고 ‘최초 여성 은행장’이라는 역사를 썼다. ‘여성’이라는 타이틀을 잠시 내려놓고, 기업은행 수장으로 중소기업 부흥을 이끌어 나갈 전략가 ‘권선주’를 만났다.
◇맨발, 그리고 창조=권선주 행장은 차분하다. 사람의 말을 경청하는 습관을 가졌고 항상 반듯한 자세로 사람을 맞이한다. 이런 습관 탓인지 혹자는 권 행장에 대해 카리스마가 너무 부족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한다.
기자가 권 행장을 처음 만난건 기업은행 충주 연수원 체육대회에서였다. 조를 편성해 단체 줄넘기를 대항전 형태로 진행했다. 그때 권 행장은 홀로 신발을 벗고 참석했다. 당시 같은 조였던 기자들에게 “많이 넘는 게 이기는 게 아니다. 모두 함께 넘는 게 진정한 승리다”라고 주문했다.
차분하지만 도전정신과 현장에서 함께 호흡하는 걸 무엇보다 중시한다.
권 행장은 “이제 현장경험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대가 왔다”며 “그동안 쌓은 경험을 토대로 기술력 있는 중소우량기업의 지원을 늘리고, 현장의 목소리를 항상 들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최근 기업은행은 IB본부 내 기술평가팀을 별도로 구축했다. 자체 기술평가시스템도 개발해 특허나 기술력 보유 기업에 대해 보다 체계적인 지원 인프라를 갖췄다.
그는 “영업점에서도 우수 기술 보유 기업에 대해서 자체 평가를 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했다”며 “현장 전문가를 자문위원으로 영입해 산업별로 다양한 기술평가 지원과 컨설팅을 제공 중”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특허청과 연계한 문화콘텐츠, IP금융지원을 활성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겠다고 부연했다.
권 행장은 “비올 때 우산을 뺏지 않고 더 큰 우산이 되겠다는 신념은 변함없다”며 “올해 약 40조원을 중소기업 지원자금으로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실행방안이 모여 창조금융 지원이 되고, 선순환체계가 될 것이라고 그는 확신한다.
창조경제에 대해 그는 “창업부터 대기업이 될 때까지, 내수부터 해외진출까지 성장단계별로 체계적인 지원이 이뤄지는 기업 육성방안”이라고 정의했다. 보다 세밀한 창조금융 실현을 위해 지원시스템뿐 아니라 컨설팅을 무료화해 지원하는 방안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권 행장은 “특허에서 경영진단, 가업 승계 등 진정한 창조금융의 시발은 융자에서 육성으로 지원 패러다임을 확대하는 것”이라며 “이런 측면에서 기업은행의 컨설팅 지원제도는 상당히 의미 있는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권 행장은 “창조금융 핵심 사업으로 기술평가 역량강화와 IP금융활성화, 문화콘텐츠 육성, 창조기업 육성 사업을 선정했다”고 말했다.
◇우물 밖으로…=올해 권선주 행장이 취임 일성으로 강조한 것이 바로 ‘글로벌 사업’이다. 더 이상 좁은 국내에 머물지 않고 현지화를 통해 해외로 눈을 돌려야 한다는 것인데, 현지화에는 리스크를 어떻게 관리하느냐도 중요하다.
글로벌 전략에 대해 권 행장은 “외형적으로 지점을 늘리는 것보다 선행돼야 할 것이 그 지역 문화를 이해하고 전문 인력을 보유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중 은행의 해외 진출 전략은 국내 기업이 해외로 진출할 때 이를 지원해주는 형태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권 행장은 현지화를 통해 해외 리테일 사업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주 기업은행은 중국 베이징에 분행을 오픈했고 상하이에도 지점 오픈을 추진한다.
권 행장은 “해외 진출을 위해 현장을 둘러봤더니 기업은행에도 상당한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며 “업무 처리속도와 친절도 등이 현지 은행보다 더 발달돼 있고, 이 요소를 잘만 활용한다면 중국을 비롯 일본 등 현지화도 충분히 승산이 있는 현장”이라고 설명했다.
권 행장은 “해외의 경우 ATM기를 많이 사용하는데, 순익을 맞추려면 일평균 63건의 사용이 있어야 한다”며 “베이징 분행의 경우 하루 평균 50건의 거래가 이뤄지고 있고, 단순 은행업무뿐만 아니라 직불카드 등 현지인을 유입할 수 있는 다양한 융합 사업을 전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국가별로 다른 현지화 전략을 짜 맞춤형 해외진출 방안을 구상 중이라고 설명했다.
권 행장은 “기업은행은 6만8000여개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다”며 “현지 인재를 등용하고 오대양 육대주 글로벌 프로젝트를 통해 기업의 동반 은행으로 서겠다”고 강조했다.
◇여성 그리고 동반자=첫 여성 은행장의 탄생은 인구의 절반인 여성에게 꿈과 희망을 던져줬다. 권 행장 취임후 금융권 안팎에서 여성 임원이 배출되고 있다. 권선주 효과라는 말까지 나온다
권 행장은 “여성 은행장이란 타이틀이 매우 영광스럽지만 그만큼 막중한 책임이 따른다”며 “여성 대학 진학률이 75%에 이르는 등 한국 여성의 자질은 매우 우수해 앞으로 적극 활용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천(Fortune)이 선정한 전 세계 기업 부문 파워 여성 50인에 권선주 기업은행장이 한국인으로서 유일하게 포함됐다. 포천이 발표한 ‘기업부문 파워 여성 50인’에서 권 행장은 47위를 기록했다.
여성이라는 편견을 깨고 차분한 리더십을 공인받은 셈이다.
권 행장은 앞으로 여성인력 채용에 대해서도 문을 활짝열고 누구나 동등하게 경쟁하고 일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아울러 기업은행의 동반자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 외연을 넓히는 작업에도 착수했다.
권 행장은 “동반성장 지원 확대를 위해 대기업과 중견기업 대상으로 동반성장협약을 확대하겠다”며 “동반성장협력대출 펀드도 1조원 증액할 예정”이라고 귀띔했다.
이를 통해 2, 3차 협력기업에게 지원 문턱을 넓히고 협력기업 전용대출 상품 개발에 돌입했다.
◇희망(H.O.P.E)=권 행장은 요새 희망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한다. 취임 후 경영목표를 희망, 영어 앞자를 따서 H.O.P.E 전략을 마련했다.
H는 내실성장(Healthy IBK), O(Open IBK)는 열린소통, P(Pioneering IBK)는 시장선도, E(Empowering IBK)는 책임경영을 의미한다.
권 행장은 “금융은 사업의 성공이나 내집 마련 같은 서민의 꿈과 목표를 이루기 위해 존재해야 빛이 난다”며 “은행의 이익만을 고집하지 않고 고객에게 희망을 주는 금융사업을 펼치겠다”고 말했다.
권 행장은 소통 경영을 약속했다. 소통과 경청의 문화를 정착시켜 조직 창의성을 높이는 작업이다. 권 행장은 “은행 36년 동안 가장 잘해왔던 것이 경청을 통한 소통이었다”며 “직원 이야기를 경청하고 혼자 말하고 행동하는 CEO는 되지 않겠다”고 밝혔다.
중소기업 CEO와도 매달 조찬 미팅을 갖고 현장의 목소리를 통해 희망을 드리는 CEO가 되고 싶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산이 200조원을 넘고 임직원이 1만3000명에 이르는 조직에서 CEO가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없다”며 “직책에 맞는 자율권을 부여하되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는 꼼꼼한 체크를 통해 항상 긴장을 줄 수 있는 은행장이 되겠다”고 부연했다.
최근 현안에 대해서도 솔직한 답변을 내놨다.
카드 개인정보 유출 사고와 관련 권 행장은 “상당히 안타깝다”며 “정부와 금융권에서 이번 일을 계기로 보안부분을 상당히 강화했고, 기업은행 또한 물리적 망분리까지 지점을 포함해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스마트금융 전략에 대해 그는 “스마트뱅킹의 중독성이 상당하고 비대면 채널로 전이되고 있는것도 맞다”면서도 “아이러니하게 은행 대면 채널을 다시 찾는 고객도 늘고 있어 대면과 비대면 채널을 조화롭게 운용하는 데 주안점을 두겠다”고 강조했다.
기업은행의 민영화 가능성에 대해서는 “개인적 생각으로는 반드시 민영화해야 한다고 보지 않는다”면서 “기업은행이 해야 할 정책금융기관의 몫이 있고, 앞으로도 그 역할에 충실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한민국 1호 여성은행장 권선주는?
국내 첫 여성 은행장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권선주 기업은행장은 여성 최초라는 수식어를 늘 달고 다녔다.
경기여자고등학교(1974년)와 연세대 영문과(1978년)를 졸업하고 그해 기업은행에 입행해 방이역지점장과 역삼1동지점장, 서초남지점장 등을 거쳤다.
이후 CS센터장, PB 부사업단장, 여신·외환지원센터장, 외환사업부장, 중부지역본부장, 부행장(카드사업본부장)을 역임했고 리스크관리본부장 겸 금융소비자보호센터장을 지냈다.
기업은행에서 30년 넘게 일하면서 ‘첫 여성 1급 승진’ ‘첫 여성 지역본부장’이라는 여러 개의 ‘여성 최초’ 타이틀을 획득해 주목을 받았다.
직원들에게는 차분하고 온화한 성품의 부드러운 리더십을 보이지만, 업무에서는 꼼꼼하고 추진력이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리스크관리를 통한 은행의 건전성을 제고하면서 창조금융을 통한 실물경제의 활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적임자로 꼽힌다.
진행=정지연 경제금융부장 jyjung@etnews.com, 정리=길재식기자 osolgil@etnews.com
길재식기자 osolgi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