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훈의 디지털 확대경]日 이화학연구소가 주는 교훈

일본 과학계의 시선이 온통 한 여성 과학자에 쏠렸다. 그는 분화된 성체 세포를 약한 산성용액 자극만으로 원시세포로 되돌리는 역분화 연구에 성공했다. 원시세포는 신경, 근육, 장기 등 다양한 조직 세포로 분화할 수 있는 만능줄기세포다. 병들거나 손상된 신체 부위를 되살리는 데 쓰일 수 있어 난치병 치료에 획기적인 진전을 가져올 것이라는 평가다.

Photo Image

연구결과는 지난달 말 과학저널 네이처에 실리며 주목됐다. 일본은 물론 지구촌 반응은 뜨겁다. 그가 노벨생리의학상 후보로도 손색이 없다는 말도 나왔다. 일본 관방장관은 물론 총리까지 나서 ‘일본의 자존심’이라 치켜세웠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만능세포 개발 주역은 오보카타 하루코다. 연구성과도 성과지만 하버드대 연구진이 포함된 국제 연구팀을 총지휘한 그가 일본 여성이라는 점, 또 그의 나이가 일본 셈법으로 서른에 불과하다는 점에 일본 열도는 더 흥분했다.

그는 와세다대 응용과학과를 나와 하버드 의대에서 2011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나이가 젊다 보니 그의 경력은 일천하다. 현재 소속된 이화학연구소 발생·재생과학종합연구센터에서도 간부급이 아닌 연구주임 신분에 불과하다.

그의 인기 덕에 연구 산실(産室)이 된 이화학연구소가 관심사로 급부상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 사설은 다른 연구소도 여성의 활약을 보장하는 이화학연구소를 닮아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곳의 여성 연구원 근무환경이 어떻길래 그러는 걸까. 연구소 홈페이지엔 ‘남녀 공동참가’ 항목이 있다. 연구소가 밝힌 모토는 ‘여성도 남성도 각자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임신·출산·육아에 관한 단축근무, 근무시간 탄력조정, 휴직, 재택근무, 유아 및 초등학생 탁아, 아이 간호 유급휴가 등 각종 지원 조항이 눈에 띈다. 내용을 찬찬히 뜯어보면 남녀평등보다는 여성의 입장을 고려한 우대조항들이다.

미혼인 오보카타가 챙길 혜택은 거의 없었겠지만 출산 및 육아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연구소의 방침과 동료 연구원의 배려는 분명 여성 연구원의 마음을 가볍게 했을 것이다. 눈여겨 볼 대목은 그가 속한 발생·재생과학종합연구센터의 연구원 선발 기준이다. 인사위원회는 연구원이 5년과 10년 긴 호흡으로 어떤 아이디어를 어떻게 연구할 지를 선발 기준으로 삼는다. 그래서 20대 후반, 30대 초반 연구원도 많다는 설명이다.

언론이 여성의 연구 환경개선을 강조하고 나선 데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일본 연구원 중 여성 비율은 14% 수준에 불과하다. 미국이나 영국에 비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육아와 연구의 양립이 어려워 환경개선이 절실한 건 여성 연구원 비중이 13%인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일본이 나은 건 지난해 기준으로 여성 연구원 수가 3만4000명인 우리나라에 비해 일본은 11만7000명으로 월등히 많다는 점이다. 두 나라가 같은 문제를 고민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우리가 더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다.

우리 정부가 준비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기껏해야 여성 연구인력 확충 해법으로 주 15~30시간 근로 시간선택제 일자리 확대를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대책치곤 너무 소박하다. 시급한 게 연구환경 개선인데 멀찌감치에서 지켜보는 느긋함이 느껴진다. 노벨상 수상자를 다수 배출하며 세계적인 연구기관으로 부상한 이화학연구소를 벤치마킹해야 할 이유는 우리에게도 분명 있다.


최정훈 취재담당 부국장 jhchoi@etnews.com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