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4일부터 대기업의 편법적 일감 몰아주기를 규제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적용되는 가운데 재계가 바짝 움츠리고 있다.
규제 범위가 모호한 데다 자의적 해석이 가능하다는 인식이 적지 않다. 재계는 혹시나 규제 대상이 되는 일은 피해야 한다며 조심스러워 하는 분위기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오는 14일 대기업의 편법적 일감 몰아주기를 금지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의 효력이 발생한다. 전반적으로 재벌 총수가 계열사와의 부당거래로 사익을 편취하는 것을 막자는 취지에는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경제민주화의 일환이다. 하지만 재계는 규제 조항이 너무 포괄적이며 자의적 해석이 가능한 만큼 규제는 문제가 뚜렷한 부문으로 최소화돼야 한다는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대기업 A사 관계자는 “내부 시뮬레이션 결과 크게 문제될 것은 없어 보이지만 어떤 사안이 지적받을지 알 수 없어 조심스럽다”며 “동일 건을 놓고도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대기업 B사 관계자는 “누군가 신고를 하면 조사가 진행되는 구조인데 이를 소명하고 법적 대응을 하느라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14일부터 적용되는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놓고 재계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모호성`이다. 사전 예측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규제는 상당한 유리한 조건의 거래로 정상 가격보다 상당히 높거나 낮은 대가로 자금, 상품, 용역 등을 제공하는 행위를 대상으로 한다. 정상가격과 차이가 7% 미만이고 거래총액이 50억원(상품 용역은 200억원) 미만인 때는 규제를 적용하지 않는다. 직접 수행 시 상당한 이익이 되는 사업기회를 계열사 등에 제공하는 것, 합리적 비교·평가 없이 일방적으로 계열사와 큰 거래를 하는 행위도 규제 대상이다.
하지만 예외조항이 있다. △효율성(다른 자와 거래로 달성할 수 없는 비용절감·판매증대·품질 개선 기대) △보안성(다른 자와 거래 시 기술·정보의 유출로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 초래) △긴급성(경기급변·금융불안·천재지변 등 긴급한 사안) 세 가지다.
이를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일부에서 대기업이 면죄부를 받을 수 기회가 너무 폭넓게 제공됐다는 지적이 있는 한편 재계는 `회복하기 어려운 경제적 피해`를 주거나 `회사 외적 요인에만 긴급성 인정` 등의 조항은 과도한 제약이라며 불만이다.
규제 해석의 여지가 너무 폭넓다는 지적에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너무 많은 조항을 구체적으로 나열하면 편법 대응이 나오거나 표현되지 못한 다른 부분의 해석 격차를 더 키울 수 있다”며 “상대적으로 다른 공정거래법에 비해서는 세부 기준을 시행령에 많이 담았으며 규제를 시행하면서 정기적 보완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규제가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 시 나타났던 외국계 대기업만 수혜를 보는 일은 막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의 주 대상은 주로 대기업 계열의 광고, 건설, 시스템통합(SI) 등이 될 전망이다. 삼성·LG 등 대기업은 일감 몰아주기 규제 회피 차원에서 이미 광고와 건설 부문에서 사업자 선정 시 외부 기업까지 포함시킨 공개입찰제를 일부 도입하기 시작했다.
이를 놓고도 업계와 정부의 시각은 차이가 있다. 광고를 예로 들면 업계는 기업 이미지 광고는 일감 몰아주기의 예외 대상이 아닌 것으로 보지만 기술정보가 중요한 신제품 광고는 보안성을 감안해 예외로 봐야 한다고 해석하고 있다. 하지만 공정위는 공개입찰 자체가 `규제 회피`를 충족하는 것은 아니며 거래 금액의 적정성이 규제의 큰 기준이라고 밝혔다.
전경련 관계자는 “기업이 불확실성을 느끼는 만큼 모호하거나 문제 소지가 있는 부분에서는 정부에 수시로 건의하고 의견을 교환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대기업이 지분 정리와 자회사 합병 등으로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이미 많이 회피했다는 지적도 있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규제대상 122개사를 대상으로 개정안 입법예고 후(2013년 10월) 현황을 조사한 결과 이미 20개 회사가 합병이나 총수 일가의 지분 조정으로 규제대상에서 빠져 나갔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대주주로 있던 삼성SNS는 삼성SDS에 합병하면서,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대주주로 있던 현대엠코는 현대엔지니어링과 합병하면서 규제대상에서 제외됐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 주 내용 *자료: 공정위, 업계>
김승규기자 seu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