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의 정보통신부]<169>사상 첫 이통사 영업정지

정보통신부 11층 통신위원회 회의실 분위기는 여느 때와 달리 무거웠다. 회의실로 들어서는 통신위원들의 표정도 굳어 있었다. 회의실에는 팽팽한 긴장감마저 감돌았다.

2002년 10월 28일 오전 10시.

통신위원회는 이날 제83차 회의에서 SK텔레콤, KTF, LG텔레콤 이동통신 3사와 KT(별정)에 업체별로 10일부터 30일까지 신규 가입자 모집을 제한하는 영업정지라는 극약처방 조치를 결정했다. 통신위가 통신업체에 영업정지 조치를 내린 일은 사상 처음이자 역대 최고 수위 처벌이었다. 통신위의 이런 조치는 단말기 보조금 지급을 금지하고 있는 이동전화 약관을 이통사가 위반했기 때문이다.

이날 회의에는 윤승영 위원장(변호사)과 좌승희 위원(한국경제연구원장 역임, 현 KDI 국제정책대학원 초빙교수), 정갑영 위원(현 연세대 총장), 황금찬 위원(연세대교수, 한국통신학회장 역임), 박인례 위원(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사무총장 역임, 현 녹색소비자연대전국협의회 공동대표)과 정부 측 구영보 상임위원(우정사업본부장 역임, 현 한국항공우주산업 사외이사)이 참석했다.

회의는 사안의 중대성을 반영하듯 시간이 평소보다 길었다. 내부 이견이 쉽게 해소되지 않아 격론이 오갔다. 하지만 결론은 만장일치로 내렸다. 불법 앞에 입장이 다를 수 없었다.

통신위는 이들 업체가 전기통신사업법을 위반함에 따라 SK텔레콤에 30일의 영업정지를 내리고 KTF와 LG텔레콤에는 각각 20일의 영업정지 조치를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또 KTF의 휴대폰 가입자 모집을 대행하면서 보조금을 지급한 KT에도 10일간의 신규 가입자 모집정지 명령을 내렸다.

통신위는 그해 6월부터 9월까지 이들 4사에 대한 휴대폰 보조금 지급행위 조사에서 SK텔레콤 1978건, KTF 3185건, LG텔레콤 3865건, KT 994건을 각각 적발했다고 설명했다.

구영보 통신위 상임위원은 사상 첫 영업정지 조치에 대해 “통신위 사무국이 지난 3월 이통 3사에 휴대폰 보조금 지급행위가 재발될 경우 사업정지 등 강도 높은 조치를 취할 것임을 사전에 통보했고 지난 4월 회의에서도 재발 시 사업정지 명령을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휴대폰 보조금 지급행위가 계속돼 이 같은 조치를 취했다”고 밝혔다.

구 위원은 “통신위원들이 이통사들의 휴대폰 보조금 지급행위에 대한 제재 수단으로 과징금 부과와 영업정지 두 가지를 놓고 논의를 벌인 결과, 전문위원들의 검토의견을 받아들여 과징금은 부과하지 않고 영업정지 조치만 취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구영보 당시 상임위원의 증언.

“당시 회의에서도 영업정지 여부를 놓고 위원들 입장이 다소 달랐습니다. 너무 심하지 않느냐는 의견도 나왔고 더이상 단말기 보조금 문제를 이대로 놔두면 시장질서가 혼탁해지므로 강력한 조치를 내려야 한다는 강경론이 나와 회의가 평소보다 길어졌습니다. 당시 정부는 시장질서는 바로 잡아야 한다는 강경한 입장이었습니다. 일부 위원들이 이견을 보이기도 했습니다만 나중에 만장일치로 영업정지 조치를 의결했습니다. 대신 영업정지 외에 과징금은 부과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에 따라 국내 이동전화 사상 처음으로 이동전화사업자들의 신규 가입자 모집 행위가 중단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와 관련한 이상철 전 정보통신부 장관(현 LG유플러스 부회장)의 회고.

“정부가 영업정지 조치를 취하기로 결정하자 이통업체 모 CEO가 저한테 `이건 이통사들한테 죽으라는 이야기와 똑같다`고 하소연을 하더군요. 그래서 `이통사가 죽어야 다시 산다`고 말해 준 일이 있습니다.”

통신위 회의에서 이동통신업체들은 각기 다른 입장을 소명했다. SK텔레콤은 과징금 부과 쪽을 선호했고 KTF와 LG텔레콤은 영업정지는 감수하겠지만 영업정지 기간을 업체별로 달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KTF는 SK텔레콤에 비해 매출액의 절반 수준밖에 안 되니까 영업정지 기간도 절반으로 해달라고 말했다. LG텔레콤은 SK텔레콤에 비해 매출액이 4분의 1밖에 안되니까 영업정지 기간도 그 수준에서 해달라고 했다.

보조금은 예나 지금이나 이동통신 가입자 증가의 일등공신이다. 2002년 1월 SK텔레콤과 신세기통신의 합병으로 이통 3사의 가입자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면서 불법 보조금이 판을 쳤다. 이통사들은 정보통신부의 경고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정부의 경고나 처벌보다 가입자 증가가 우선이었다. 수차례에 걸친 과징금 부과 조치에도 이동통신업체들의 도를 넘는 경쟁은 그칠 줄 몰랐다. 이는 결국 영업정지라는 초유의 사태로 이어졌다.

이동형 당시 통신위 사무국장(현 미래창조과학부 이용자정책국장)의 말.

“당시 통신위 사무국은 50여명이 근무했습니다. 당시 단말기 시장 상황이 몹시 혼탁했습니다. 사무국 직원들이 상시 시장 모니터링을 했고 직접 대리점이나 업체에 나가 불법보조금 실태를 조사했어요. 그 결과 과징금으로는 혼탁해진 시장질서를 바로 잡을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사상 초유의 영업정지 조치여서 통신위 회의에서도 결론을 내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 것으로 기억합니다.”

영업정지 개시 시기는 정통부 장관 재량에 맡겼다. 정통부는 이에 따라 11월 21일부터 SK텔레콤을 시작으로 KTF, LG텔레콤, KT 순으로 각각 30일, 20일, 20일, 10일의 영업정지 처분을 내렸다.

이통사들은 영업정지 순서를 놓고도 신경전을 벌였다. 가장 먼저 영업정지 조치를 받는 업체가 최대 피해자가 될 것이란 판단 때문이다. 후발업체인 KTF와 LG텔레콤은 “시장지배적 사업자인 SK텔레콤이 `1번`이 돼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SK텔레콤은 “보조금 적발 건수가 가장 적은데 왜 우리가 먼저 영업정지를 당해야 하느냐”고 맞섰다.

구영보 상임위원은 이에 대해 “보조금을 지급해온 이동통신 3사에 대해 지배적사업자와 후발사업자의 차이를 감안, 영업정지 기간을 조정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부 강경 조치에도 이통사의 불법 단말기 보조금 경쟁은 멈추지 않았다. 정부가 영업정지 또는 과징금 부과라는 조치를 취하면 잠시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고개를 드는 악순환이 지속됐다.

2008년 이명박정부가 출범하면서 정통부 내 유일한 규제감독기구인 통신위원회는 방송통신위로 흡수됐다. 정통부 폐지에 따른 조치였다. 그렇다면 이후 이통사 불법 단말기 보조금은 감소했는가.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설날 연휴를 이틀 앞둔 2014년 1월 27일.

방송통신위원회는 이동통신사업자의 불법적 단말기 보조금 지급 여부에 대한 사실조사를 개시한다고 밝혔다. 방통위 시장모니터링 결과 1월 3일 7만6000건, 1월 23일 14만건이 적발됐다. 보조금도 위법성 판단기준인 27만원을 크게 넘어선 70만원 이상 지급되는 사례가 많았다. 방통위는 이통사가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으면 3개월 이하의 영업정지 조치를 미래창조과학부에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12년 전이나 지금이나 불법 단말기 보조금 상황은 변한 게 없다. 해마다 약 6조원에 달하는 마케팅 비용 상당액이 보조금으로 사용된다는 게 정부 측 분석이다.

방통위는 2013년 한 해에만 이통 업계에 과징금 1786억9000만원을 부과했다. 방통위 출범 이후 역대 최대 규모였다. 이에 앞서 2012년 12월 24일에는 보조금 전쟁을 벌인 이통 3사에 영업정지 조치를 취했다. 방통위는 2013년 1월 7일부터 3월 13일까지 LG유플러스, SK텔레콤, KT 순으로 영업정지를 내렸다. 방통위는 이어 7월 18일에는 KT에 7월 30일부터 8월 5일까지 영업정지를 또 내렸다.

이통사의 불법 보조금이 계속되자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 새누리당 간사인 조해진 의원은 2013년 5월 26일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 제정안(이하 단말기유통법. 의안번호 1905126)`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 법안에는 권은희, 남경필 등 새누리당 의원 10명이 참여했다. 이 법은 단말기 보조금의 시간과 장소에 따른 차별지급을 해결하고 이를 투명화하자는 것이 골자다.

단말기 보조금 법제화는 2002년 11월 정통부가 국회에 제출한 단말기 보조금 기준 법제화에 이어 두 번째다. 당시 법안은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해 무산되고 말았다.

이 단말기 유통법안이 발의되자 이해당사자 간 입장은 극명하게 갈렸다. 특히 제조사와 관련 협회는 이 법안에 반대했다. 미래부는 지난해 단말기유통법을 핵심 과제로 설정하고 이통사들과 제조사, 소비자, 정치권을 대상으로 폭넓은 설득작업에 나섰다.

지난해 12월 5일에는 미래부와 방통위 공동으로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 간담회`를 갖고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 처리와 관련한 의견을 수렴했다.

조해진 의원은 법안 발의 이유에 대해 “최근 이동통신 시장에서의 불투명하고 차별적인 보조금 지급은 소비자 후생 배분을 왜곡하고 이동통신 시장의 건전한 발전을 저해하는 등 문제점이 심각한 상황”이라며 “이동통신사업자의 과도한 보조금 경쟁 과열은 이용자의 빈번한 단말기 교체로 이어져 가계통신비 증가와 자원 낭비를 심화시키고 있어 불투명한 보조금 지급에 따른 문제점을 해소하고, 투명하고 합리적인 단말기 유통구조를 만들어 나감으로써 이용자의 편익을 증진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 법안은 지난해 12월 23일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한채 현재 소위에 계류 중이다. 이날 소위는 공영방송 관련 법안에 야당이 반발해 퇴장하는 바람에 여당 의원들로 심의를 했으나 정족수 미달로 의결하지 못했다. 조해진 의원실 측은 “현재 이 법안은 법안심사소위에 계류 중인데 2월 임시국회에서 처리 여부는 알 수 없다”고 밝혔다.

지난해 9월 이 법안 통과를 위해 뛰어다녔던 이동형 당시 미래창조과학부 통신정책국장(현 이용자보호국장)의 말.

“국회 통과를 위해 나름대로 관계부처 협의를 하고 업계 의견도 수렴했는데 여야가 공영방송 관련 법안으로 대립하는 바람에 의결을 하지 못해 국회에 계류 중입니다.”

이통 업계의 악습인 불법 단말기 보조금. 두더지 게임하듯 반복하는 정부와 이통사 간 불법 보조금 전쟁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이현덕기자 hd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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