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 조변석개 `TM정책`.. 원점으로 선회

금융당국이 사상 초유의 카드사 정보 유출로 전화 영업(TM)을 전면 금지했다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이를 다시 허용했다.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한 `탁상정책`의 시금석을 보여줬다는 지적이다. `각본 금융위, 연출 금감원` 이 몇 시간 만에 만든 `3류 덤앤더머(머저리 2인) 정책`이라는 원색적인 비난까지 나왔다.

4일 금융위원회는 긴급 브리핑을 열고 전면 중단됐던 보험사의 전화영업을 다음 주부터 허용한다고 밝혔다. 은행 등 다른 금융사 TM은 3월부터 전면 허용하겠다고 말을 바꿨다. 다만 문자메시지나 이메일을 이용한 영업이나 대출 모집·권유는 3월 말 이전에 가이드라인 시행과 함께 허용한다. 이에 따라 은행, 보험, 카드사 등 모든 금융사의 전화를 통한 비대면 영업이 한 달여 만에 재개된다.

카드사의 1억여건 고객 정보 유출 이후 초강경 규제 일변도로 나갔던 금융당국이 정책을 발표한 지 2주도 채 안 돼 금융업계의 논리에 백기를 든 셈이다. 우선 보험사는 기존 고객을 대상으로 보험 갱신뿐만 아니라 신규 상품 판매까지 이르면 다음 주 후반부터 허용하기로 했다. 신규 고객 유치를 위한 전화 영업은 2월 말 재개될 예정이다.

금융당국은 TM을 허용해주는 대신 최근 모든 보험사에 불필요한 개인 정보를 모두 정리했다는 확약서를 7일까지 제출하라고 통보했다. 최고경영자(CEO) 서명이 든 이 확인서를 받고 금융당국은 보험사의 전화 영업을 풀어주기로 한 것. 대신 CEO 확약 내용에 오류가 있으면 엄중 제재하기로 했다.

이 또한 책임 떠넘기기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한 보험사 고위 관계자는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며 “결국 TM 관련 문제가 발생하면 그 책임을 해당 기업에 떠넘기기 위한 꼼수”라고 비판했다.

카드사 등 나머지 금융사도 보안 체크리스트 점검 등을 거쳐 오는 14일까지 확인서를 제출해야 한다. 영업 규제를 풀어줬으니, 일종의 서약서를 제출해 책임소재를 명확하게 하겠다는 계산이다.

금융당국이 TM 제한 조치를 푼 데에는 여러 부작용이 있을 것이라는 판단을 아예 못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정치권까지 가세해 금융당국의 탁상정책을 강하게 비난하자 슬그머니 꼬리를 내린 형국이다.

TM 종사자들이 개인정보를 불법으로 활용한다고 간주해 이들을 `범죄자 집단`으로 취급한다는 비판에 직면했고, 특히 전화영업으로 생계유지를 하는 이들의 대량 실직 우려가 커지면서 사회 문제로까지 확대됐다. 정치권에서도 TM 영업 규제를 생존권 말살로 보고 금융위원장과 금융감독원장 사퇴를 촉구하는 등 역풍을 맞았다.

결국 한 달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금융당국은 백기를 들었다. 박 대통령이 이날 오전 국무회의에서 “금융회사 텔레마케팅에는 상당수 생계가 어려운 분들이 종사하고 있다”며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현재 진행 중인 금융사 고객정보 관리 실태 점검 결과를 감안해 적극적으로 보완할 방안을 찾아 달라”고 지시했다.

민주당도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의 TM 영업정지가 `책임 전가`라면서 책임자 사퇴를 촉구했다. 민주당 김기준·민병두·이종걸·은수미·진선미 의원은 4일 국회 정론관에서 주민등록번호와 신용등급이 포함된 1억건에 달하는 개인정보 유출 사건 발생과 관련, “신제윤 금융위원장,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은 즉각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길재식기자 osolgil@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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