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노벨상을 꿈꾸는 후배에게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의 주요 임무 중 하나인 측정과학 분야에 대해 소개할까합니다. 과학기술 발전의 원동력은 사람의 상상력과 창의력, 이를 실현하고자 하는 과학기술인의 도전정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새로운 과학지식을 얻어내고 우리가 원하는 것을 실현하는데 가장 큰 파급 효과를 주는 기술은 무엇일까요. 과학기술 발전 역사를 통해 그것은 바로 기존 측정 한계를 극복하거나 신개념의 측정을 가능케 하는 측정 기술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과학기술 발전 주체는 사람이므로 어떤 현상이건 사람이 알아차릴 수 있어야 이해도 할 수 있고 이용도 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어떤 현상을 사람이 인지할 수 있는 형태의 정보로 만들어 주는 측정 기술은 과학기술 발전의 근간이 됩니다.
사람이 자와 저울이라는 도구를 사용하면서부터 여러 개의 부품을 조립해 원하는 기능을 가진 기계 장치를 만들 수 있게 되었고 연금술이나 제약 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었습니다. 사람 눈으로는 볼 수 없었던 크기의 한계를 극복한 현미경이 나오면서 세포나 미생물 수준에서 생기는 현상을 이해할 수 있고 마이크로미터 수준의 정밀 측정이 가능해지면서 자동차나 비행기 등 정밀 기계의 대량생산도 가능해졌습니다.
원자, 분자 수준을 볼 수 있는 전자현미경 개발로 나노기술 시대가 열리고 반도체와 같은 정보전자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했으며, DNA도 관측할 수 있는 나노 수준의 측정기술이 접목되면서 현재 생명공학은 비약적인 발전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엑스레이나 초음파 혹은 MRI 영상기기를 통해 육안으로 볼 수 없었던 인체 내부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게 되고, 피검사, 소변검사 등 화학 분석 측정기술이 의료에 접목되면서, 촉진이나 경험적인 판단에 의지해야 했던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게 의료 수준이 높아졌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과학기술로 측정하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 많습니다. 그 양이 너무 크거나 작아서 혹은 너무 빨리 변해서 너무 멀리 있어서 등등 측정 범위가 우리 능력 밖인 경우도 있고, 측정해야 하는 대상이 고압이거나 진공 혹은 초고온처럼 극한 환경이어서 기존 측정 기술은 적용할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견고하게 둘러 싸여진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을 외부에서 측정할 수 있는 방법도 아주 제한적입니다. 생명체를 대상으로 한 측정은 측정 행위가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아야 하는 제약 조건이 있는데다 살아 움직이는 상태라 측정이 어렵습니다.
이렇게 측정 능력을 개선하고 측정 한계를 극복하는 것보다 더 파급력이 큰 것은 새로운 물리량에 대한 발견이나 이해를 가능하게 해주는 신개념 측정기술입니다.
1875년 17개국이 미터 국제 협약을 조인할 당시 국제 단위계로 도입한 기본 단위는 미터(m), 킬로그램(kg), 초(s) 세 가지뿐이었습니다. 지금은 당연하게 사용하고 있는 전기 분야 암페어(A)는 1946년에, 온도의 단위 캘빈(K)과 광도의 단위 칸델라(Cd)는 1954년에, 몰(mole)은 1971년에 국제기본단위로 추가돼 지금은 7개 기본단위가 사용되고 있지만 앞으로도 새로운 측정 기술을 통해 새로운 분야가 알려지고 새로운 단위가 추가될 수 있습니다.
현재 기술로 찾아낼 수 있는 크기보다 훨씬 더 작은 크기의 암세포까지 그 분포를 찾아낼 수 있는 측정 장비를 개발한다면 암 조기 진단이나 완치 확률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만일 세포 단위에서 암세포 발생 과정과 성장 과정을 자세하게 이해 할 수 있는 정보를 주는 신개념의 측정 기술을 가진다면 암 발생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게 돼 암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질병으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측정 과학이야 말로 창의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영역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분야라고 할 수 있지. 그래서 노벨상 수상자가 많이 나오는 분야입니다.
From. 신용현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