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4월 마이크로소프트(MS)의 윈도XP 지원 종료를 앞두고 국내 은행들이 현금자동입출기(CD/ATM) 업그레이드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기능상 전혀 문제가 없는데도 MS의 지원 종료 정책 때문에 새로운 운용체계(OS)와 기기까지 업그레이드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기기를 교체해야 하는 상황도 거론되고 있어 자칫하면 은행당 수천억원의 비용이 추가로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대다수 은행이 예산을 확보하지 못해 시한 내 업그레이드가 현실적으로 어려워 심각한 `ATM 대란`이 예고됐다.
21일 금융 및 ATM 업계 전문가에 따르면 국내 시중 은행에서 운영하는 ATM의 80% 이상이 윈도XP로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MS가 4월 8일 윈도XP 지원을 종료한 이후에도 이들 ATM을 운영하게 되면 각종 보안 위협에 노출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현 ATM은 단순 입출금, 송금뿐 아니라 공과금 납부, 티머니 충전, 인터넷 전화 기능까지 제공하고 있다.
지난해 5월 금융감독원이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전체 8만대 CD/ATM 가운데 97.6%인 7만8000대가 윈도XP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은행은 심지어 더 낮은 버전인 윈도2000과 윈도CE 6.0으로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시중은행의 한 ATM 담당자는 “OS를 교체해야 하는데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며 “기능적인 측면에서 윈도7이 특별한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닐 뿐더러 기기마다 일일이 SW를 교체하는 작업도 만만치 않고, 단순히 OS만 바꿔서 해결될 사안이 아니기 때문에 매우 고민스럽다”고 털어놨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는데도 많은 은행이 OS 업그레이드에 나서지 못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비용 문제다. ATM의 OS 업그레이드 비용만 수십억원이다. 기존 기기 대부분이 윈도7을 지원하기에는 역부족이라 기기까지 교체한다면 수천억원이 필요하다. 금감원에서 제시한 윈도XP 기반 ATM 7만8000대를 모두 새로운 OS 및 기기로 교체한다면 무려 1조1700억원이 넘는 비용이 드는 셈이다.
정기영 금감원 IT감독팀장은 “현 ATM에 상위버전 OS를 설치하면 하드웨어 인식에 여러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며 “하지만 비용 부담 탓에 오는 4월까지 OS와 ATM 모두를 한꺼번에 교체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 관계자는 “우선 윈도XP 기반 ATM의 보완 대책을 수립할 것을 권하고 있다”며 “조만간 구체적인 대응책을 별도로 발표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업그레이드를 해도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는다. 업그레이드하려는 윈도7 OS도 사실상 내년 1월이면 일반 지원 서비스가 끝난다. 향후 5년 동안 연장지원 서비스가 제공되지만 일부 주요 서비스는 유료로 전환된다.
업계 관계자는 “올해 윈도7로 업그레이드하더라도 앞으로 최장 5년밖에 사용하지 못하게 되는 셈”이라며 “ATM의 평균 수명이 7년인데, MS 정책 때문에 수십억원의 투자 손실을 봐야 할 판”이라며 MS의 무책임한 정책에 강력하게 반발했다.
해외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윈도XP 지원 종료 시점까지 미국 ATM 중 15%만이 윈도7으로 OS를 업그레이드할 것이라고 블룸버그 비즈니스 위크는 전했다. 세계 ATM 300만대의 95% 이상이 윈도XP를 쓰고 있어 `글로벌 ATM 대란`을 경고했다.
MS는 최근 궁여지책으로 일부 보안 서비스를 1년 더 지원해 주겠다고 밝혔지만 전체 서비스 중단 계획에는 변함이 없다는 점에서 업계의 비난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국MS 관계자는 “오는 4월 8일에 계획대로 지원 종료되며, ATM에 들어가는 윈도XP 프로도 지원 종료 대상에 포함돼 하루빨리 업그레이드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현희기자 sunghh@etnews.com
, 유효정기자 hjyo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