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TV방송은 1961년 12월 KBS가 개국하면서 시작했으나 TV수상기가 널리 보급되지 않았고 방송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1964년 7월 민영방송 TBC가 개국하고 1969년 8월 MBC가 문을 열면서 TV 방송이 활발해졌다.

[100대 사건_004] 글로벌 기업 첫 발걸음, 컬러TV 해외 생산 개시 <198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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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사는 국내 기업 중 처음으로 해외에 컬러TV 생산공장을 설립했다. 미국 헌츠빌 공장은 1982년 10월 7일 준공식을 갖고 본격적인 컬러TV 생산에 돌입했다. 사진은 헌츠빌 공장 전경.
[100대 사건_004] 글로벌 기업 첫 발걸음, 컬러TV 해외 생산 개시 <1982년 10월>

◇TV 제조 기술 확보에 온 힘=처음 흑백TV를 생산한 회사는 금성사(현 LG전자)다. 금성사는 1963년부터 TV 생산을 본격 추진했으며 일본 히타치제작소에 기술연수팀을 파견하고 TV 생산시설을 도입하는 등 활발히 움직였다. 이에 따라 1966년 7월 TV 생산을 시작했으며 8월 1일 국내 첫 흑백TV `DV-191`을 선보였다.

당시 흑백TV는 상당한 고가였지만 큰 인기를 얻어 1968년까지 DV-191은 4만635대가 생산됐다. 이 같은 인기는 동남전기, 삼양전기, 천우사, 대한전선, 삼성산요, 동신화학 등이 잇달아 TV 생산에 참여하는 계기가 됐다.

아남산업과 일본 내셔널전기가 합작한 한국나쇼날이 1974년 국내 최초로 컬러TV를 생산·수출했다. 삼성전자는 미국 RCA와 컬러TV 기본 특허계약을 하고 1977년 파나마로 수출을 시작했다.

금성사는 1976년에 컬러TV 시제품 `CT-807`을 선보이고 1977년 8월 미주지역 수출용으로 19인치 `CT-808`을 생산했다. 당시 우리나라는 컬러TV 방송 환경이 갖춰지지 않아 각 제조사 모두 생산 전량을 수출했다.

국내 업체들의 컬러TV 대미 수출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한국나쇼날, 아남전자, 금성사의 수출 규모는 1977년 1600만달러, 1978년 9370만달러로 급증했다.

이에 미국 정부는 국내 기업들의 컬러TV 수출 공세에 제동을 걸었다. 자국의 TV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우리 정부에 자율 수출규제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이 때문에 1979년 대미 컬러TV 수출액은 7200만달러 수준으로 떨어졌다.

국내 기업들은 선진국들의 보호무역주의 규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지 생산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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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는 1978년 5월 흑백TV 생산 400만대를 돌파해 세계 1위를 기록했다. 컬러TV는 1977년 4월부터 생산을 시작했으며 국내 생산 5년 만인 1982년 3월에 컬러TV 200만대 생산을 돌파했다. 이후 1989년 4월 컬러TV 2000만대 생산을 돌파해 7년만에 생산량을 약 10배 성장시켰다.

◇해외 현지 생산체계를 갖추다=가장 먼저 실행에 옮긴 것은 금성사다. 이 회사는 1981년 5월 미국 앨라배마주 헌츠빌에 국내 기업 중 처음으로 현지법인 GSAI(GoldStarAmerica Inc.)를 설립했다. 같은 해 9월 1일 헌츠빌 공장을 착공했으며 1982년 5월 제1 공장을 완공하고 설비 구축과 시험가동을 거쳐 10월 7일 본격 생산에 돌입했다. 100% 한국 민간기업 자본으로 투자된 최초의 해외 투자 사례다.

금성사는 헌츠빌 공장을 통해 무역 장벽 문제를 해소함으로써 미국 내 점유율 확대와 외화소득 증대 효과를 거뒀다. 헌츠빌 공장은 생산 6개월 만에 가동률 100%를 기록하며 손익분기점을 넘어섰다.

국내 시장에서 흑백TV로 금성사와 치열하게 경쟁하던 삼성전자도 1982년 9월 최초의 포르투갈 현지 합작 생산공장(SEP)을 준공하고 해외 컬러TV 생산 시대를 열었다. 삼성전자는 1978년부터 유럽이 연간 1200만대 규모로 세계 TV 시장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거대 지역임을 감안해 이 시장 진출을 다방면으로 타진했다. 하지만 EC 회원국들이 비회원국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면서도 회원국 간에는 자유롭게 교역하는 등 무역 장벽은 단단하고 높았다.

이에 삼성전자는 1985년 EC 회원국이 될 가능성이 제기되던 포르투갈을 기점으로 유럽시장에 우회 진출하는 전략을 세웠다. 포르투갈에 컬러TV 생산 공장을 설립해 EC의 무역 장벽을 뛰어넘을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삼성전자는 포르투갈의 2대 TV 조립업체인 에마세트, 영국 가전제품 판매사 PRI와 손잡고 TV 합작공장을 설립했다. 에스토릴시에 설립한 첫 컬러TV 생산 공장은 연산 15만대 규모로 영국, 네덜란드, 덴마크, 오스트리아 등 EC 지역과 아프리카 지역에 제품을 수출했다.

포르투갈 공장이 생산 호조를 띠면서 삼성전자는 본격적인 반도체 사업을 위해 1983년 미국 실리콘밸리에 현지법인(SSTI)을 설립했다. 1984년에는 TV 사업을 위한 미국 현지법인(SII)도 잇따라 세웠다.

컬러TV는 1979년 하반기 시작된 오일쇼크에 따른 마이너스 성장을 극복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특히 우여곡절 끝에 1980년 시작한 컬러TV 방송은 국내 전자산업이 재도약하는 데 결정적 전환점이 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실제로 당시 컬러TV 효과는 상당했다. 1981년 7월까지 국내 보급된 컬러TV는 100만대가 넘었다. 1981년 국내 전자산업 총생산 규모를 살펴보면 생산 37억9100만달러, 수출 22억1800만달러로 1980년 대비 각각 33%, 11% 성장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한국 기업들의 해외 TV 사업을 보고만 있지 않았다. 1983년 한국산 컬러TV에 반덤핑 제소를 하는 등 지속적으로 무역장벽이 높아졌다. 1980년대 중반에는 컬러TV뿐만 아니라 전자레인지, VCR, 비디오테이프 등 거의 모든 수출품에 반덤핑 제소를 했다. 이에 금성사와 삼성전자는 미국에 편중된 해외 생산기지를 유럽 등으로 다각화하기 위한 준비에 착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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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는 덤핑 규제를 피하기 위해 1983년 미국 뉴저지에 TV 조립공장을 세웠으며 이후 1988년 멕시코 티후아나로 이전했다. 이후 컬러TV, 컬러 모니터, 휴대폰 등에 걸쳐 부품 생산부터 완제품까지 일괄 생산하는 첨단 기지로 성장했다. 사진은 1990년대 멕시코 TV 생산라인 모습.

◇글로벌 기업의 토대를 마련하다=금성사는 1986년 10월 서독 라인란트팔츠주 보름스시에 생산법인 GSE(GoldStar Europe GmbH)를 설립했으며 1987년 11월 생산을 시작했다.

삼성전자는 1983년 미국에 컬러TV 생산 공장을 설립한 데 이어 1987년에는 영국에 전자오븐과 VCR 생산 공장을 세웠다. 1990년에는 국내 기업 최초로 헝가리에 컬러TV 공장을 설립했다. 이 공장은 현지 국영전자회사 파트너인 오리온과 50 대 50으로 합작했으며 연간 10만대 생산 규모로 건설됐다.

1988년 이후 금성과 삼성전자는 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와 폴란드, 헝가리 등 동구권 국가까지 생산기지를 확장했다.

양사의 유럽지역 생산과 판매거점 확보는 EC의 보호주의 장벽을 극복한 것으로 타 국내 기업들에 해외시장 개척 모델이 됐다. 또 미주지역에 편중된 수출 구조를 유럽, 아시아 등으로 다변화하는 토대가 됐다.


[표] 국산 TV 생산 수출 시판 현황 (단위: 천대, 천달러)


[표] 컬러TV의 수요 추이 (단위: 천대)

(자료: KIET, CTV와 VTR의 중장기 수요전망, 1983년 9월)


배옥진기자 witho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