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묘한` 공기업 개혁

혹한의 추위만큼이나 에너지 공기업들의 내부 온도가 스산하다. 정부가 부채감축을 추진하면서 이들은 살얼음판 위에 서 있다. 지난주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에너지 11개 공기업을 불러 경영정상화를 점검했다. 일부 계획안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퇴짜를 놓고, 못하겠다면 아예 사표를 내라고 호통을 쳤다. MB가 `기름값이 묘하다`라고 해서 탄생한 알뜰주유소는 현 정부의 `공기업이 묘하다`의 상황과 묘하게 닮아 있다.

지난주 방문한 한 공기업 분위기는 차갑고 무거웠다. 사장 주재로 4시간여에 걸친 비상경영전략 회의가 이어졌고 사업부별 혁신안을 내놓으라는 요구에 부서장들은 진땀이 흘렀다. 혁신안 자체가 인력조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어서다.

공기업의 방만 경영은 반드시 퇴출돼야 한다. 성과급 잔치에 지나친 복지혜택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하지만 옥석은 가려야 한다. 신의 직장으로 불리며 국민의 눈총을 받아 온 공기업을 개혁하자는 당위성을 부정하자는 게 아니다.

지난 정부를 복기해 보자. 공공기관 손보기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매번 `개혁식탁`에 오르는 단골메뉴다. 국민정서에 반하는 방만 경영은 과거 정권에서도 모두 수술하겠다고 했다. 노태우정부를 시작으로 MB정부까지 무려 25년간이다.

하지만 용두사미로 끝났다. 혁신을 주창하는 행군 나팔소리는 컸지만 결국은 그랬다. 이번 공기업 개혁 역시 요란한 빈수레만 되는 것 아니냐는 곱지 않은 시선이 나오는 이유다.

주목해야할 것이 있다. 해외자원개발 사업이다. MB정부 때 졸속 추진했다는 주장은 틀리지 않다. 정치적 이유도 컸다. 역겨운 냄새도 났다. 전략 없이 서두르는 바람에 부실도 키웠다. 하지만 이들 부실이 공기업만의 책임이었을까.

빚내서 사업하라고 했던 대통령과 공무원, 정치인들임을 우리는 모두 안다. `데모를 한 사람이 잘못이라면, 그 데모를 하게 만든 사람은?` 최근 극장가 화제작 변호인의 명대사다. 개혁하고 싶다면 정부 당국자들의 생각부터 개혁해야 한다. 공기업을 본인들의 치적과 명분을 위해 동원하는 수단쯤으로 생각하는 관행을 바꾸지 않는 한 `개혁 쳇바퀴`는 계속될 것이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민·관기업은 유동성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해외 유망자산을 매각했다. 결과는 에너지 해외 의존율 97%라는 정책실패로 돌아왔다. 지금의 공기업 개혁이 비싼 값 주고 사들인 자산을 헐값에 팔아버리는 상황을 재연할까 걱정된다.

다시 말하면 공기업 개혁이 단순히 현재의 부채나 경영부실을 털어내는 방향으로 진행돼서는 안 된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것은 조직의 생리다. 정치적 구호로 시작한 일이라면 시간이 흘러 정권이 바뀌면 같은 상황이 또다시 연출되리라는 걸 공기업 구성원들은 너무 잘 안다.

정책은 의지와 지원일 뿐 결정과 실행은 기업의 몫이다. 강압이 아닌 긴 안목의 정책적 혜안으로 그들을 품어야 한다. 어렵게 확보한 해외자산을 팔고 무리하게 임금을 통제해 봐야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안일한 태도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사람과 내용은 그대로인데 형식을 바꿨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게 없다는 얘기다. 공(公)기업 개혁하다 공(空)기업이 될 수 있다. 명장 밑에 사람이 붙는 법이다.


김동석 그린데일리부장 ds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