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의 정보통신부]<166>김태현 정통부 차관

2002년 2월 4일.

김대중 대통령은 이날 한승수 외교통상부 장관(국무총리 역임)을 경질하고 새 장관에 최성홍 차관을 임명했다. 김 대통령은 또 정보통신부 차관에 김태현 기획예산처 기획관리실장(정보통신진흥연구원장, 하나로텔레콤 회장 역임)을 승진 기용하는 등 15개 부처 차관 및 외청장을 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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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숙 청와대 대변인(환경부 차관, 18대 국회의원 역임)은 차관급 인사와 관련, “차관급 대폭 교체로 공직사회를 쇄신하고 내부에서 능력 있는 사람을 발탁, 기용함으로써 사기진작을 통한 조직 활성화를 기하고자 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김 대통령은 이튿날인 2월 5일 오전 청와대에서 신임 차관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 김 대통령은 이들과 다과를 함께하며 “국민의정부 경제 재도약에 최선을 다해 달라”고 당부했다.

김태현 차관은 이날 오전 11시 정통부 14층 대회의실에서 취임식을 갖고 업무를 시작했다.

김 차관은 취임식에서 “정통부는 우리 미래를 결정하는 핵심적인 일을 수행하고 있다”며 “지식정보화는 21세기에 살아남을 수 있는 필수 생존조건이며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4대 부문 개혁도 정보화와 접목될 때 진정한 성과를 나타낼 수 있다. 어떠한 산업도 정보화와 연결되지 않으면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그동안 경제정책의 입안과 조정·협의 업무를 수행해 온 경험을 최대한 살려 정보화, 정보통신산업, 전파관리, 우정금융 등 정보통신행정 전반의 업무가 원활하게 추진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김 차관은 전남 장성 출신으로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행정고시 13회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재정경제원 사회교육예산심의관, 예산청 경제예산국장, 기획예산처 기획관리실장 등을 두루 거친 경제통이다. 업무 방식은 꼼꼼하지만 성격이 소탈해 부하 직원들에게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 상관으로 신망이 높았다.

정통부 차관 임명과 관련해 양승택 정통부 장관(현 IST 회장)은 내부 승진인사를 강력히 요청했다. 하지만 청와대 측의 완강한 방침을 꺾지 못했다.

양 장관의 증언.

“차관 인사설이 나돌기에 전윤철 청와대 비서실장(재경부 장관, 감사원장 역임)을 만났어요. 차관은 내부 승진을 하도록 해달라고 부탁하러 간 것입니다. 전 실장과는 오래전부터 잘 아는 사이였습니다. 전 실장은 김태현 기획예산처 기획관리실장 카드를 제시했습니다. 저는 변재일 정통부 기획관리실장(정통부 차관 역임, 현 민주통합당 민주정책연구원장)을 차관으로 추천했습니다. 전 실장은 `김 실장이 변 실장보다 행시 선배`라면서 양보하지 않더군요. 몇 번이나 변 실장을 차관으로 추천했지만 청와대의 고집을 꺾지 못했습니다. 김 실장은 행시 13회고 변 실장은 16회였어요.”

전 실장이 기획예산처 장관 재임 시 김 차관은 기획관리실장으로 호흡을 맞춘 사이였다. 양 장관은 인사와 관련해 적재적소 원칙을 고수했다. 신임 장관들이 취임하면 인사를 하는 관행을 그는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그가 장관에 취임하자 부내에 인사설이 나돌았다.

양 장관의 계속된 회고.

“장관에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기호 청와대 경제수석(노동부 장관 역임, 현 헤리티지재단 최고위 연구원)이 전화를 했어요. `왜 차관을 바꾸지 않느냐`는 겁니다. `내가 외부에서 왔으니 당분간 내부 사정을 잘 아는 김동선 차관(현 한국정보기술협회 이사장)과 같이 일하겠다`고 말했어요. 그랬더니 `직원 인사는 왜 하지 않느냐`고 다시 묻더군요. `부 내 인사는 적재적소 원칙을 적용하겠다`고 말해 줬어요. 경제수석이 차관 인사에 개입하는 것이 못마땅했어요. 이 수석과는 전화로 격한 언쟁을 벌이기도 했어요.”

김동선 차관은 2월 4일 오후 이임식을 갖고 정통부를 떠났다.

김대중 대통령은 2월 21일 그를 새 방송위원으로 임명했다. 22일 방송위 전체회의에서 그는 부위원장으로 선출됐다. 이후 경원대 석좌교수를 역임했다.

이에 앞서 1월 23일 서울 코엑스에서 이동통신산업을 수출 주력사업으로 육성하기 위한 한국이동통신수출진흥센터(ICA)가 출범했다. 초대 원장에는 한국IBM에서 20여년 동안 마케팅사업을 담당한 조성갑 IBM 본부장(현 인천정보산업진흥원장)이 선임됐다.

조 원장은 “향후 ICA를 이동통신 수출 지원사업뿐만 아니라 10대 IT품목의 수출 지원사업에도 역점을 두고 추진해 우리나라가 IT 최강국이 되도록 하는 동시에 센터를 IT수출종합상사로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그해 3월 13일.

김대중 대통령은 이날 오전 10시 청와대 본관 세종실에서 양승택 장관으로부터 새해 정통부 업무계획을 보고받았다.

김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21세기는 지식, 창의력, 문화적 감각, 모험심이 경제를 좌우하고 있다”면서 “핵심 IT를 개발하기 위해 인적, 물적 기반을 강화하고 차세대 정보보호기술 등 신기술 개발에 노력해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김 대통령은 이어 “전통산업과 정보화를 접목시켜 경제 전반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도 한층 더 노력해 달라”면서 “월드컵과 부산아시안게임을 계기로 IT강국 코리아의 이미지를 전 세계에 분명하게 심어줄 수 있도록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 달라”고 강조했다.

양승택 장관은 이날 업무 보고에서 “지난 4년간의 성과를 바탕으로 올해 정보통신정책 방향을 세계 IT 분야를 선도할 수 있는 `글로벌 리더, e코리아` 건설과 4대 과업과 4대 행사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데 초점을 맞추겠다”면서 “누구나 시간과 장소의 제약을 받지 않고 초고속인터넷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세계 최초로 `초고속인터넷의 보편적 서비스화`에 힘을 쏟겠다”고 밝혔다.

양 장관은 이어 “세계 최고 수준의 초고속인터넷망을 무선망과 통합하는 유무선 통합을 추진하고 경기 활성화를 위해 국가 전체 설비투자의 30% 수준을 차지하는 IT 분야에 모두 12조7500억원을 투자하는 한편, CDMA·초고속인터넷·시스템통합(SI) 등 10대 전략품목을 발굴해 올해 수출 510억달러, 무역흑자 150억달러를 달성하겠다”고 보고했다.

김 대통령은 이어 참석자들과 일문일답을 했다.

△대통령=한국이 IT 분야에서 차지하는 세계적 위상은 어느 정도인가.

△양승택 장관=초고속인터넷 사용 인구는 2000만명을 돌파하는 등 우리 IT 분야는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고 있다. 초고속인터넷을 활용하면 정보통신 분야에 대한 과잉투자를 일거에 해소할 수 있다. 정부는 모든 사람이 언제 어디서든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초고속인터넷의 보편적 서비스를 실현하겠다.

△대통령=시스코 같은 기업의 입장에서 우리나라 IT산업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으며, 향후 발전 전망은.

△홍성원 시스코코리아 회장(작고)=한국은 무선통신 분야, 메모리반도체, CDMA 기술에서 세계 제일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초고속인터넷망은 한국이 유럽 전체보다 많다. 세계가 한국을 벤치마킹할 정도다. 과잉투자라는 의견이 있는데 이것은 너무 소극적인 사고라고 생각한다. 전자정부, 사이버대학, e비즈니스를 활성화시켜 한국을 정보사회의 브랜드로 만들어야 한다. 한국 하면 전자정부를 제일 잘하는 나라로 연상되게 해야 한다.

IT의 잠재 능력을 산업화하면 선진국이 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정보통신기술을 생활과 융합해 생활수준을 향상시켜야 한다. 한국이 가장 유리한 조건에 있다.

△대통령=개인정보나 통신비밀이 불법적으로 침해되는 사례가 있는데 대책은.

△유영환 정보보호심의관(정통부 장관 역임, 현 한국투자증권 부회장)=건전한 정보사회로 나가기 위해서는 개인정보가 보호되어야 한다. 지난해 정보통신관계법을 개정했다. 본인의 동의 없이 개인정보를 수집, 유통할 경우 처벌을 강화했다. 일반인이 사법적 구제를 받는 데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정보분쟁조정위원회를 설치해 구제절차를 간소화했다. 지난해 개인정보 침해 건수는 1만4000여건에 달했으며, 올해는 2만건을 상회할 것으로 예상된다. 온라인상거래업체가 관련 법규를 위반하면 과태료 부과, 형사고발 등의 조치를 취할 것이다.

△대통령=IT 동향을 보면 각국이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 개발, 기업 간의 제휴·합병 등을 통해 생존경쟁을 하고 있다. 이러한 환경변화에 대한 대응책은.

△조정남 SK텔레콤 부회장(KAIST 이사장 역임, 현 다산네트웍스 사외이사)=한국은 1996년 CDMA를 세계 최초로 상용화했으며 이제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새로운 시스템과 서비스를 국내 시장에 투입해 완성도를 높인 뒤 수출하도록 하자. 중국과 동남아에 이어 미국, 중동까지 수출이 가능하다. 올해 CDMA 수출이 15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음성과 데이터가 통합되고, 유무선 서비스가 복합화되며 통신과 방송이 융합되고 있다. 큰 무리가 없다면 기업의 제휴·합병을 활성화시켜 주어야 한다.

△대통령=앞으로 우리가 정보통신 분야에서 수출 주력상품으로 육성할 만한 경쟁력 있는 제품은 무엇인가.

△양준철 국제협력관(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부회장)=CDMA, 디지털TV, 초고속인터넷, 국세 시스템 및 관세 시스템 등 SI 분야, 온라인게임, TFT LCD, 위성방송 수신기 등이 이에 해당된다. 올해 중국, 인도, 베트남, 캄보디아와 정부 간 협력을 강화하고 민관 시장 개척단을 파견하겠다. 외국에서 IT 제품 로드쇼를 개최하고 IT코리아 이미지가 수출되도록 노력하겠다.

△대통령=우정사업이 경영효율화의 성과를 거두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시책을 추진했으며, 향후 발전방향은.

△김인식 우정사업본부 경영기획실장(현 한국스마트TV산업협회 부회장)=노사가 합심해 변신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했다. 그 결과 4년 연속 경상수지 흑자를 달성했다. 올해는 경영평가 시스템을 도입하겠다. 또 경상수지 흑자를 넘어 총수지 흑자가 달성되도록 노력하겠다. 무인우편금융 창구를 설치하고 인터넷우체국, 인터넷쇼핑몰을 확대해 나가겠다.

대통령과의 일문일답은 당사자들에겐 등에 진땀이 흐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대통령이 질문한 사항은 정책 추진에 엄청난 힘을 행사했다. 그해 대통령 관심사항이 된 까닭이다.


이현덕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