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정보통신기술(ICT) 장비산업이 좀처럼 돌파구를 찾지 못한다. 성장은 정체됐고 글로벌기업 공략은 더욱 거세졌다. ICT 인프라를 책임지는 장비산업은 국가 통신주권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분야로 평가되지만 우리나라 산업 경쟁력은 선진국에 비해 크게 뒤처진다.
정부와 산업계는 올 한해 머리를 맞대고 ICT 장비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대안을 모색했다. 공공기관을 토대로 한 성장전략과 통신사, 대기업 그리고 중소기업이 함께하는 생태계 전략도 마련했다.
하지만 근본적인 경쟁력 제고 방안이 나오지 않는 한 계속 헛바퀴만 돌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지난 26일 서울 팔래스호텔에서 정부, 학계, 중소기업, 통신사, 글로벌 통신장비업체 등 국내 ICT 장비산업 생태계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대안을 논의했다.
참석자
강성주 미래창조과학부 융합정책관
구교광 한국네트워크산업협회 전무
박진우 고려대 교수
박진효 SK텔레콤 네트워크기술원장
우경일 다산네트웍스 부사장
원재준 NSN코리아 사장
사회=장지영 전자신문 ICT방송산업부장
◇사회(장지영 전자신문 ICT방송산업부장)=ICT장비 생태계 취약함이 날로 더해간다. 현상과 원인을 분석해 보자.
◇우경일 다산네트웍스 부사장=국가와 대기업이 장비와 부품산업에서 사실상 철수했다는 것이 큰 타격이다. 메이저 회사들도 한 번에 성공하는 사례는 없다. 실패를 거듭하며 완성도 높은 솔루션이 나오는 것인데 우리는 실패하면 팀을 해체해버린다. 핵심 산업에 대한 투자는 실패를 거름 삼아 장기적인 관점에서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ICT장비의 주요 수요처인 통신사가 구매에서는 최저가 입찰을 유지하다보니 남아 있는 업체는 사업을 유지하기에만 급급하다. 유지보수 비용을 받는 것은 생각도 못하는 처지다 보니 신기술 투자 여력이 없다. 그런 상태가 너무 오래 유지됐다. 시험평가(BMT)에 참가했다 떨어지면 그 손실도 보전을 못 받는다. 산업이 활기를 잃으니 신규 인력도 충원이 안 된다. 국가적인 손실이 여기저기에서 일어나는 상황이다.
◇구교광 한국네트워크산업협회 전무=착시효과도 문제다. 우리나라는 ICT 서비스 강국이지 제조 강국이 아니다. 예산 지원도 안 되고 중소기업 위주 생태계다보니 R&D 경쟁력이 매우 약화됐다. 그런데 착시 현상 때문에 “이 정도면 된 것 아니냐”는 진단들이 나온다.
◇박진우 고려대 교수=돌이켜보면 과거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시점마다 좋은 정책이 있었다. 문제는 그것이 현실화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같은 국가 연구기관에서 기술이나 방향성은 잡고 있었는데 사업화하는 데서 겉돌았다.
우리가 손 놓고 있는 사이 중국이 치고 들어왔다. 차세대 주요 네트워크 기술로 이야기되는 소프트웨어정의네트워크(SDN) 같은 분야는 나오는 논문의 절반이 중국 것이다.
삼성전자 같은 대기업을 통한 착시 효과도 상당하다. 국가 ICT R&D 발전전략은 삼성전자와 달라야 한다. 대기업 하나에 국가 R&D가 포커스되면 잘못될 경우 리스크가 커진다.
통신사업자도 원인이 있다. 무조건 저가로 밀어붙이다보니 국내 장비 시장가와 통신사 구매가가 동시에 떨어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사회=“대기업은 역할을 못하고 국가는 좋은 기회를 놓쳤다”로 정리된다. 통신사나 글로벌 장비업체 입장은 어떤가.
◇박진효 SK텔레콤 네트워크기술원장=통신사들도 국내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다. 글로벌 메이저 기지국 공급사와 국내 중계기 업체들을 연결해 주요 장비 인터페이스도 개방했다. 그런데 사실 현장에서는 실제로 매칭이 잘 안 된 부분이 있다.
정부와 글로벌 벤더들도 조금 적극적으로 나섰으면 좋겠다. 노력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해외 동반 진출도 가능하고. 국내에 국한하지 않고 나갈 수 있는 부분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한다.
BMT 비용 상실 문제는 통신사 입장에서 장비를 선택할 때 한 업체만 선택하는 것이 부담돼서 그렇다. 중기의 기회비용 상실은 검토해 볼 수 있는 부분을 만들어야 할 것 같다.
◇원재준 NSN코리아 사장=유선 시장에서는 글로벌업체들의 파워가 강하다. 하지만 국내 무선 시장에서는 삼성 등 국내 업체가 헤게모니를 쥐고 있다. 분야별로 차이가 좀 있다.
NSN만하더라도 한해 연구개발(R&D)비 3조원 정도를 투자하는데 삼성전자 외에 국내 중기가 이에 맞대응할 수 있는 체력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앞서 글로벌업체와 국내 중기의 협력 문제가 논의됐는데 우리가 상생차원에서 기술을 개방하는 것과 결과물이 나오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실제로 적극적으로 협력을 해도 개발력, 언어 등 다양한 이유로 성과가 안 나오기도 한다.
국내 중기가 가진 장점을 극대화해야 한다. 일례로 무선 장비에 들어가 앰프, 필터는 우리나라 기업이 잘 만든다. 그런 부분들은 충분히 키워나가야 하는 종목이라고 생각하고 정부가 한 번 더 들여다봐야 한다.
◇강성주 미래창조과학부 융합정책관=1980년대, 1990년대에 TDX, CDMA 할 때까지는 상당히 경쟁력이 있었다. 4세대 이동통신으로 넘어가면서 상당한 어려움에 빠진 상태다. 와이브로까지만 해도 국내 업체들끼리 잠깐 시너지가 있었지만 글로벌 시장도 이미 LTE로 재편됐다.
전체적으로 보면 시장 대응이 좀 늦었다. 공공부문과 C(콘텐츠)-P(플랫폼)-N(네트워크)-D(디바이스)를 묶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다보니 인력 문제까지 연관되며 전체적으로 발전이 더딘 양상이다.
정부는 그동안 생태계가 건강하지 않은 부분에 다리를 놔주는 역할을 꽤 해왔다. 문제를 풀 수 있는 기회는 있다. 서비스, 시장이 남아 있어 비극적인 상황은 아니다. 계기를 만들어 가면서 과거 잃어버렸던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사회=난국을 헤쳐나갈 뚜렷한 대안이 있을까.
◇우경일 부사장=우리는 한번도 ICT장비 생태계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협력한 적이 없다. 토털 솔루션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무선 대기업과 유선 중견기업의 공동개발이 좋은 성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본다.
이를 기반으로 아프리카와 동남아 등 저개발 국가에 턴키 토털 솔루션을 공급하는 사업을 만들어가면 숨통이 좀 트일 수 있을 것 같다.
정부에는 타 산업과 융합을 적극적으로 추진해달라는 주문이다. 중소기업이 직접 현대자동차, 삼성중공업 쫓아다니며 제안하는 것이 쉽지 않다. 타 산업과 융합과제 발굴하는데 도움을 좀 주길 바란다.
◇구교광 전무=통신사가 주도하는 시스템통합(SI) 사업에서 국산 장비 마케팅을 강화하고 중기에는 수출 지원을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ICT장비 수출지원펀드를 만들고 통신사 등이 투자를 하면 좋은 결과가 기대된다.
◇박진우 교수=ICT장비 지원사업을 노골적으로 진행하면 기관 등에서 이를 다른 사업으로 포장해 발주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정부가 무엇보다 현상을 파악하기 위해 정확한 통계작업을 실시했으면 좋겠다. 정확한 통계를 기반으로 적절한 대책이 나올 수 있다.
◇강성주 국장=단기적으로 안행부, 기재부, 국방부, 교육부, 금융위원회 등과 협의회를 만들어서 1만7000개 공공기관에 네트워크 장비, 소프트웨어에 대한 도입 현황을 정리하고 있다
ICT특별법이 발효되면 전략위원회 아래 전문 추진단을 만드는 것도 고려한다. 육성과 국내 중기 역차별 등에 대해 전경련 등과 협조해 지원체제를 만들어 가겠다.
R&D에서는 실패를 용인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융합에 있어서는 최근 장관과 현대자동차 경영진이 만났다. 양측 모두 생태계 만들어야 한다는 것에 공감했다. 단시일에 안 되니 `트리거`를 만드는데 집중해야 한다.
미국도 직간접적으로 ICT 장비산업 지원한다. 우리는 특히 코어 장비 부분이 취약해 우려를 가지고 있다. 단기 과제는 빨리 처리하고 장기는 긴 호흡을 가지고 토대를 만들겠다.
◇사회=ICT 장비산업이 힘든 것은 구조적인 문제다. 이해 주체 간 간극이 굉장히 크다. 당장 해결이 안 되도 장기적으로 갈 수 있는 부분 만들어 하나씩 경쟁력을 쌓아가야 한다.
정리=
김시소기자 siso@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