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반도체 업계에는 기술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꾼 사건이 일어났다. 삼성전자가 업계 처음 3차원 적층구조 반도체 양산을 시작했다. 20나노미터(nm) 낸드플래시를 여러단 쌓은 뒤 수직으로 구멍을 뚫어 전극을 배치하는 형태다. 셀간 거리가 짧아져 읽고 쓰는 속도가 더욱 빨라지고 같은 패키지 크기에 대용량을 구현할 수 있다. 그동안 반도체 업체는 선폭 미세화를 통해 용량·성능을 개선하는 게 화두였다면 이제는 얼마나 많은 층을 얇게 쌓을 수 있는가가 관건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노광(리소그래피) 공정 중요성이 종전에 비해 떨어져 장비 투자 부담도 줄었다. 그동안 치킨게임 등으로 소모전을 벌여온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올해 세계적으로 호황을 누렸다. 반면 고부가가치 사업으로 여겨지던 시스템 반도체는 시장 경쟁이 심화되면서 전반적으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는 지난해에 비해 올해 109.2% 성장했다. 매출액 기준 업계 순위도 10위에서 4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SK하이닉스는 중국 우시 공장 화재로 D램 생산량의 약 25%가 급감했지만 지난해 7위에서 5위로 상승했다. 성장률은 48.7%에 달한다. 메모리 업계의 호황이 어느 정도였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주요 원인은 치킨게임 이후 메모리 업체 수가 3~4개로 정리되면서 시장 수급 조절 주도권을 메모리 업체가 쥐게 된 덕분이다. 지난 10월 SK하이닉스 화재 때문에 공급난이 심화된 것도 한 몫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시장은 삼성전자·퀄컴 양강 구도가 확립되는 듯했다. 하지만 지난 5월 출시된 삼성전자 `갤럭시S4` 스마트폰에 퀄컴 칩이 대폭 적용되고, 올해 중순을 넘기면서 미디어텍이 중국 보급형 스마트폰 시장에 빠르게 침투하면서 다시 난전(亂戰)이 됐다. 그 와중에 AP가 아날로그인 전력관리반도체(PMIC) 기능까지 흡수하는 등 시스템온칩(SoC) 경향이 강해지면서 시스템 반도체 시장 전반에서 경쟁이 심화 됐다.
각종 유독물질 안전사고가 발생한데다 반도체 사업장 근로자의 산업재해를 법원이 인정하는 판결을 내놓는 등 반도체 생산 공정의 유해성 문제가 본격 논의되기도 했다.
지난 1월과 5월 삼성전자 경기도 화성 반도체 공장에서 불산 누출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 3월에는 SK하이닉스 충북 청주 공장과 LG실트론 경북 구미 공장도 염소가스와 불산이 연달아 누출됐다. 반도체 공정 안전에 대한 경각심이 일면서 삼성전자는 기흥·화성단지 공장 운영을 관리하는 총괄 조직을 신설했다. SK하이닉스 역시 내년 정기인사에서 환경안전본부를 부사장급 조직으로 격상시켜 유독물질 관리를 강화했다.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려 사망한 공장 근로자에 대해 업무상 재해를 인정한 판결도 처음 나왔다. 삼성전자 기흥공장에서 근무하다 사망한 근로자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서울행정법원이 잇따라 원고 승소판결을 냈다. 유독물질 사고 여파는 올해 개정·제정된 화학물질의 등록과 평가 등에 관한법률(화평법)과 유해화학물질관리법률(화관법)에도 영향을 미쳐 업계의 뜨거운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오은지기자 onz@etnews.com